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연구진은 이화여대 유영민 교수(화학신소재공학부) 연구팀과 함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청색 소자의 수명 저하를 일으키는 열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25일 밝혔습니다. 이로써 OLED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는 번인(burn-in) 현상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 설계 방법이 등장할 것인지에 관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됩니다.
번인이란 디스플레이에 장시간 표시된 장면이 마치 얼룩처럼 남아 다른 장면으로 전환해도 잔상처럼 계속 남아있는 현상을 말합니다. 번인 현상이 비단 OLED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닙니다. 현재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액정표시장치(LCD)는 물론, 과거 육중한 크기를 자랑하던 음극관(CRT) 디스플레이에서도 번인 현상은 있었습니다. 실제로 PC방 모니터의 경우 바탕화면에 온종일 떠 있는 관리용 프로그램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주기적으로 화면 보호기를 작동시키는 정도로만 신경 써줘도 해결되기 때문에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OLED의 번인 문제는 다릅니다. OLED는 빛의 삼원색인 적색·녹색·청색(RGB)으로 각각 발광하는 유기물을 이용한 디스플레이입니다. 아무 빛이 없는 검정에서부터 적색·녹색·청색이 중첩될 때의 흰색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다채로운 색상은 이 삼원색의 비율에 따라 결정됩니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빛이 부족하거나, 혼자서만 지나치게 강하면 흰 색을 표현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적색과 녹색처럼 안정된 수명의 청색 유기물 소재를 개발하기 힘든 걸까요. 디스플레이는 빛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빛은 내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면 '온도 방사'와 '발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온도 방사는 물체를 고온으로 가열하면 빛이 방출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때 빛의 색을 통해 온도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붉은 불꽃보다 푸른 불꽃이 더 뜨겁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한편, 발광은 외부에서 공급된 에너지가 빛 에너지로 변환되는 과정을 말합니다. 외부에서 어떤 에너지가 공급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발광이 구분되는데, OLED의 경우 발광 물질에 전기 에너지를 가해 빛을 내는 '전계발광'으로 분류합니다.
전계발광의 원리는 이렇습니다. 원자는 중앙에 있는 핵 주위를 도는 전자로 구성되는데, 전자가 핵과 가까운 궤도에 있으면 에너지가 낮은 안정된 상태로 보고 이를 '바닥 상태'라고 부릅니다. 반면, 전자가 핵과 먼 궤도에 있으면 에너지가 높은 불안정한 상태로 보고 이를 '들뜬 상태'라고 부릅니다. 바닥 상태의 전자를 들뜬 상태로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반대로 들뜬 상태의 전자가 바닥 상태가 되면 줄어든 만큼의 에너지를 내놓게 됩니다. 이렇게 내놓는 에너지가 빛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전계발광입니다.
OLED는 이렇듯 특정 유기물 소재가 갖는 고유의 에너지 값을 조절해 적색·녹색·청색을 내는 셈입니다. 문제는 적색에서 녹색, 청색으로 갈수록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전자가 들뜬 상태에서 바닥 상태로 가기 위해 적색은 궤도 하나, 녹색은 궤도 두 개, 청색은 궤도 세 개를 통과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색의 경우 유기물 분자에 약간의 에너지만 가해도 빛이 나기 때문에 계속 발광해도 수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반면, 청색은 많은 에너지가 투입되면서 유기물 분자가 받는 스트레스도 높고, 결국 수명이 빠르게 줄어드는 것입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전 세계 OLED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신뢰성을 크게 높여 한국이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 모두 안정적인 청색 유기물 소재 확보를 위해 차세대 열활성화지연형광(TADF) 소재 등에 매년 수백억원씩 투자를 아끼지 않는 만큼 후발주자와 격차를 더욱 벌릴 수 있는 연구 성과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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