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이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시장 점유율이 3%에 불과해 메모리 반도체 편중이 심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도체 업계는 2016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D램 호황이 2019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전망이다. 하지만, 시스템 반도체 시장 규모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2배 이상 크고, 향후 안정적인 성장세를 예고하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시스템 반도체 분야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 화성 파운드리 공장 전경.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화성 파운드리 공장 전경. / 삼성전자 제공
10일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인적 자본보다는 생산설비 확충 등 물적 자본 투자에 크게 의존하는 편이다"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은 오랫동안 제기돼 왔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용도에 따라 정보 저장 및 처리를 위한 메모리 반도체와 연산 및 논리 작업 등을 위한 시스템 반도체로 크게 구분한다. 메모리는 D램과 낸드플래시가 대표적이며, 시스템 반도체는 마이크로 컴포넌트, 로직 IC, 센서 등을 포함한다. 삼성전자는 D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모두 1위를 달리는 중이다.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 2위, 낸드플래시 시장에서는 4~5위를 오간다.

최근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등 IT 인프라 투자가 증가하면서 메모리 반도체가 높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2017년 들어 삼성전자가 미국 인텔을 꺾고 처음으로 전체 반도체 시장 1위 업체로 올라섰다. SK하이닉스도 한 계단 올라서 3위를 기록했다. 2016년 6위였던 마이크론도 4위에 이름을 올렸고, 3위였던 퀄컴은 5위로 내려앉았다. 2017은 전반적으로 메모리 반도체 업체의 약진에 시스템 반도체 업체가 주춤한 해로 기록된다.

다만, 시장 규모는 여전히 시스템 반도체가 메모리 반도체보다 두 배 이상 크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2017년 시스템 반도체 매출은 2882억달러(308조2300억원)로 전체 반도체 시장의 69.9%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메모리 반도체 매출은 1240억달러(132조6200억원)로 나머지 30.1%를 차지했다.

세계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는 나라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은 인텔, 퀄컴, 브로드컴, 텍사스인스트루먼트, AMD 등을 앞세워 시스템 반도체 시장 70%를 독식 중이다. 이어 유럽(9%), 대만(8%), 일본(6%), 중국(4%) 순이다. 한국의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3%로 현재 중국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메모리 반도체는 대규모 설비투자를 바탕으로 소품종 대량 생산이 관건인 장치 산업으로 분류되는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생산이 분업화된 다품종 소량 생산의 기술 집약 산업으로 통한다. 메모리 반도체 호황의 주역인 D램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의 과점 체제가 구축돼 있어 수요 대비 공급 상황에 따라 업황이 크게 요동친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다수 업체가 용도별 분업 환경에서 경쟁하고 있어 꾸준히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앞선 미세공정 기술력을 내세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대만 TSMC가 54.5%의 점유율로 독보적 1위를 달리는 가운데, 미국 글로벌파운드리(8.6%), 대만 UMC(8.5%), 삼성전자(6.9%), 중국 SMIC(5.4%) 순으로 경합 중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화성 공장에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들여 7나노 공정을 본격적으로 가동해 글로벌파운드리를 제치고 이 시장 2위 사업자로 올라설 계획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외에 글로벌 시장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는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체는 없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하고, 균형 있는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팹리스 및 파운드리 업체에 대해 지원을 강화한다는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했다. 이를 통해 2022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지금보다 2배 수준인 6%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경기 변동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고 안정적인 성장세가 점쳐진다"며 "국내 반도체 업계가 호황기 수익을 바탕으로 투자를 늘리고, 핵심 설계 기술 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