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IT스타트업 리걸인사이트 정재훈 대표 변호사의 리걸톡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리걸톡은 IT관련 분야의 법률 이슈를 내용으로 월 2회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규제 샌드박스(Regulatory Sandbox)'란 익히 알려져 있듯이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에 대하여 기존의 법령 등에 의한 규제를 면제 내지 유예시켜주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아이들이 다칠 걱정 없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모래 놀이터와 같이 기업들이 기존 규제에 대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자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과거 금융산업의 중심지였던 영국이 점차 금융산업의 메카로서의 위상을 잃어가자 핀테크 산업을 육성해 관련 산업을 부흥시키고자 2016년 6월 정식으로 도입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아랍에미리트연합, 오스트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도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는 추세이다.

위와 같은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 정부도 1월 22일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신산업이나 신기술 관련 분야에서의 '규제 샌드박스'를 언급한 이후,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골자로 한 다섯 가지 법안이 의원입법의 형태로 국회에 입안됐다.

다섯 가지 법안은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 개정안,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 금융혁신지원 특별법안, 정보통신 진흥 및 융합 활성화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및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 등을 담고 있다.

당초 단일 통합법안으로 '규제 샌드박스'를 운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각 법안이 적용되는 제품·서비스의 주요 기능 및 업종에 따라 분리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및 국무총리실 등 소관부처에서 개별 입법을 통해 '규제 샌드박스'의 도입이 시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규제 샌드박스'의 도입 및 시행은 처음 논의가 이뤄진 이후 점차 더디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 등 규제를 혁신한다는 명목으로 운영중인 기관들은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는 이유로 신사업 시행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 해결에 미온적이다. 앞서 본 '규제 샌드박스' 도입 법안도 대표발의한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사퇴로 동력을 일부 상실한 듯한 모습이다. 또한 정치인들도 두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와 개헌안에 온 관심을 쏟고 있을 뿐, 야심차게 준비한 '규제혁신 관련 5법'은 우선순위에서 밀어낸 것 같은 모습이다.

게다가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규제혁신을 외치면서도 규제혁신의 과실(果實)이 사실상 대기업에게 집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고 있었고, 그 결과 겉으로는 규제혁신을 주장하면서도 속으로는 규제혁신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이후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성장지원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규제혁신에 대해 다소나마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려는 것으로도 보이지만, 정부와 여당은 여전히 '규제혁신 = 대기업 수혜'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예로 산업통상자원부 작성의 2018. 2. 12.자 "규제혁신 관련 5법, 당·정·청 회의 참고자료"를 보면, '규제 샌드박스 입법 관련 주요 쟁점 및 조정사항' 중 하나로 '대기업 배제조항 필요'가 선정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의 취지가 기존 기업들이 (어쩌면 기존 규제 하에서의 사고방식에 따라) 생각해내지 못한 아이디어를 신생 기업들과 창업가들이 기존 규제에 의한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사업과 수익활동으로 구현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고, 사실상 상당수의 아이디어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 사업화에 성공했거나, 지금 당장이라도 사업화가 가능한 것이므로 '규제 샌드박스'의 도입 및 시행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다.

또한 '규제혁신 = 대기업 수혜'가 되는 것은 공정거래법, 저작권법, 특허법 또는 부정경쟁방지법 등 기존 법제도 하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지, 규제혁신으로 대기업들이 수혜를 입게 될 것을 우려해서 규제혁신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야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규제 천국이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새 아이디어로 신사업을 하고자 하는 창업가나 기업인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그 아이디어 중에는 놀랍고 번뜩이는 것들도 많이 있는데, 막상 창업가들이 사업시행을 위해 준비를 하다 보면 사업화를 가로막는 매우 다양한 규제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규제해소나 완화가 어렵다는 사실에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신사업 추진에 규제가 하루빨리 해소되거나 완화되기를 바라고 있는데, '규제 샌드박스'가 규제완화의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갈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안이 조속히 통과되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도입, 시행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IT조선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재훈 리걸인사이트 대표 변호사는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제41회 사법시험 합격 및 31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했습니다. 법무법인(유)태평양(2005~2011)에 재직했으며, 플로리다 대학교 SJD in Taxation 과정을 수료하고 현재는 법무법인 리걸인사이트 대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 스타트업규제특별위원회 위원,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든 지금,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조화를 고민하며 기술을 통해 효과적인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