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철인28호'로 출발한 로봇 만화·애니메이션은 지구의 '범죄조직', '미치광이 과학자', '부활한 고대문명', '세계정복을 꿈꾸는 악의 무리'와 맞서 싸워나갔다. 1960년대까지 이어진 지구 악당과의 대결 구도는 1970년대에 들어서 식상한 내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70년대 애니메이션 업계는 새로운 적을 '우주'에서 찾았던 것이다. 인류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문명을 가진 우주로부터 온 지구 침략자는 만화 및 애니메이션 이야기의 구도를 크게 넓히는 계기가 됐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토에이(東映) 로봇 애니메이션 작품 중 최초로 우주의 적에 맞서 싸운 그랜다이저는 지구인도 아닌 우주에서 온 영웅이 외계인에 맞서 싸운다는 당시로서는 참신한 내용 덕에 어린이는 물론 성인층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그랜다이저의 탄생 배경에는 1970년대 대중의 관심사였던 미확인 비행물체 'UFO'의 존재도 크게 작용했다. 당시 토에이는 UFO 붐에 따라 '우주원반대전쟁(宇宙円盤大戦争)'이란 30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바 있는데, 이 우주원반대전쟁이 그랜다이저의 토대가 됐다.
그랜다이저의 성공은 로봇 애니메이션 스토리의 '외계인의 지구침략' 구도를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1976년작 '대공마룡 가이킹'과 '콤바트라 브이', '볼테스 파이브(V)' 등의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이 그랜다이저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한다.
◆ 어떤 로봇이 우주에서 날아왔나?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과학적인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술로 만들어지거나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슈퍼로봇'이라고 부른다.
1976년작 '그로이저 X(엑스)'는 외계행성 가이라(게르돈 제국)에서 온 로봇이다. 가이라 별의 평화주의자인 얀 박사가 자신의 딸인 리타에게 그로이저X를 맡기고 지구로 탈출시키는 것으로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지구 기술이 아닌 우주의 초과학 기술이어야만 했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인류의 과학 상식을 뛰어 넘는 이야기가 어린이에게 꿈과 재미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현실적인 이유로는 어른이 봐도 어려운 과학 기술보다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기술과 에너지가 이야기를 쉽고 더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지금은 누구에 맞서 싸우나?
1979년작 TV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으로 시작해 1981년작 '태양의 이빨 다그람', 1983년작 '장갑기병 보톰즈' 등의 작품은 로봇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더 현실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갔다.
1995년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감독의 메가 히트작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인류말살이 목적인 '사도(使徒)'보다 인간의 내면과 고뇌와의 싸움이 주목받기도 했다.
2018년 현재, 로봇 애니메이션 팬은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극장가에는 마징가Z 최신 극장 애니메이션과 1970~1980년대 거대로봇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할리우드 영화 '퍼시픽림' 최신작이 마니아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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