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7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든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정도경영'을 강조했다.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면 기업을 오래 이끌 수 없다'는 소신에서 나온 철학이다. 한편으로는 외환·금융위기 당시 LG그룹의 핵심 역량을 간파, 집중 투자한 승부사이기도 했다.

구 회장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1945년 2월 10일,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상경대 입학 후 미국 애슐랜드대학교에서 경영학 학사를, 미국 클리블랜드 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2016년 2월 열린 LG테크노콘퍼런스에 참가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오른쪽 두번째). / LG그룹 제공
2016년 2월 열린 LG테크노콘퍼런스에 참가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오른쪽 두번째). / LG그룹 제공
구 회장은 1975년 LG화학에 입사, 경영수업을 거쳐 1995년 LG그룹 3대 회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구 회장은 LG LCD를 설립한다. 이어 2003년에는 LG그룹을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지주회사로 탈바꿈한다.

2005년 구 회장은 LG그룹의 핵심 사업으로 전자·화학·통신을 꼽고 집중 육성에 나선다. 디스플레이, 전기차에 탑재될 2차전지와 LTE 통신 기술도 구 회장의 관심 분야였다. 이들 사업군은 모두 오늘날 LG전자의 실적을 이끌고 있다.

LG그룹의 매출은 구 회장 입사 당시인 1994년 30조원쯤에서 2017년 160조원쯤으로 5배 이상 늘었다. LG디스플레이의 디스플레이, LG화학의 2차전지는 세계 1위 규모로 성장했다.

구 회장은 그룹 경영진에게 항상 투명성과 도덕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에게는 매력을, 소비자에게는 신뢰를, 구성원에게는 열린 마음과 즐거운 분위기를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LG그룹의 독립운동가 후손·사회 의인 지원 역시 구 회장의 지시로 이뤄졌다.

구 회장은 인재 확보 및 R&D에도 많은 관심을 쏟았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소비자 가치 및 업계 변화를 주도하려면 연구개발과 혁신이 필수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대학 연구진 지원 프로그램, 대학생 탐방 프로그램 글로벌챌린저,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세워진 4조원 규모 R&D단지 'LG사이언스파크' 등이 R&D 강화를 꿈꾸던 구 회장의 작품이다.

구 회장 별세 이후, LG그룹 4대 회장직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LG전자 상무로 재직 중인 구광모씨가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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