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의 채용 비리 혐의와 관련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은행권 채용 비리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초기 금융당국은 금융권 채용 비리 검증에 확신을 하고 조사를 강행했지만, 함 행장의 영장 신청 기각으로 향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됐다.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 곽형섭 영장전담판사는 6월 1일 함 행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심리한 후, 오후 11시 20분쯤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곽 판사는 “피의사실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현재까지 확보된 증거자료,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등 모든 사정을 고려하면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결과가 금융권 CEO를 상대로 무리한 조사를 강행한 금융당국이 핵심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또한 더 나아가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려 한 것으로 금감당국의 책임론을 지적해야 한다고 견해를 보이고 있다.

함영주 은행장도 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지법에 출두할 당시 “(채용비리와 관련해) 김 회장의 지시를 받은 적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없다”고 일축했다. 최근 확인된 바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5월에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으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채용 비리의 관련성 여부를 조사했다. 함 행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만큼, 김정태 회장과 윤종규 회장이 채용 비리와 연관됐다는 고리를 찾기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정영학)는 5월 24일 최흥식 전 금융감독원장을 불러 조사했고, 다음날인, 25일에는 함영주 하나은행장을, 29일에는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을 불러 각각 업무방해·남녀평등고용법 위반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했다. 검찰은 이 중 함 행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피의사실을 다툴 여지가 있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함 행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타 금융권 수사도 급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금감원은 2017년 말 우리은행 채용 비리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 모든 금융지주와 은행권으로 채용 비리 수사를 확대했다. 올해 2월 채용 비리 조사 결과 하나은행 13건, 국민은행 3건, 대구은행 3건, 부산은행 2건, 광주은행 1건 등을 적발하고 검찰에 자료를 이관했다.

반면, 국민은행은 ‘VIP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면서 최고경영진의 친인척이 입사 시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했다.

금감원은 채용 비리 과정에서 이들 CEO가 연루됐다고 보고 책임을 묻겠다고 나섰지만, 오히려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하나은행 사장 시절 채용 비리에 연관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리에 물러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배구조 문제의 허점을 이용해 셀프 연임을 시도한 금융기관 CEO를 제지하려던 금융당국이 무리한 수사의 허점을 노출해 역공을 당한 것이다.

함 행장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조급해진 곳은 금융당국 쪽이다. 2017년 11월 초 ‘채용 비리 근절 방안’을 발표하고 금융권 전반에 확산한 채용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두 명의 금감원장이 불명예 퇴진을 거듭하면서 금융권을 상대로 한 ‘권위'가 떨어져 통제력이 약해졌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이유로 금감원도 당분간 시중은행을 상대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윤 금감원장은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제1회의실에서 금융협회장과 간담회를 진행한 후, 제2금융권 채용 비리 검사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계획 없다”고 답했다.

윤 금감원장은 “과거 채용과정에서는 고학력자와 남성을 우대했거나, 임직원 추천제도를 운영하는 행위가 개별 회사 재량 범위에 속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이제는 이 같은 관행을 모두 떨쳐버리고 공정하고 투명한 금융권 채용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금융권 CEO와의 만남을 추진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아직 확정된 계획은 없다”고 말한 후, 만남을 주선한다 해도 선거 이후나 6월 말쯤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