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슈퍼컴퓨터의 성능 지표인 세계 500대 슈퍼컴퓨터 순위가 발표됐다. 미국은 성능 면에서 중국에 뺏겼던 1위 자리를 되찾았으며, 중국은 총 206대의 슈퍼컴퓨터 시스템을 톱 500위 안에 등록해 강자임을 과시했다.

하지만 한국은 단 7대의 슈퍼컴퓨터만 톱500위 안에 올렸을 뿐 아니라 가장 좋은 성능을 보인 슈퍼컴퓨터는 톱10 안에 들지 못했다. 30년간의 슈퍼컴퓨터 연구개발 노력이 무색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KISTI 연구원이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서비스를 앞두고 시스템 점검을 하고 있다. / KISTI 제공
KISTI 연구원이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서비스를 앞두고 시스템 점검을 하고 있다. / KISTI 제공
국제슈퍼컴퓨터학회(ISC)는 25일슈퍼컴퓨터 글로벌 톱500 순위를 발표했다. ISC는 매년 6월과 11월 두 차례 전세계 슈퍼컴퓨터의 계산 속도와 전력 효율을 평가해 성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 명단을 발표한다.

이번 순위 발표에서 미국은 중국에 뺏겼던 1위 자리를 되찾았다. 또 미국은 톱 500 시스템 중 38.2%를 차지하며 HPC 성능 분야에서 강한 면모를 뽐냈다. 중국은 가장 많은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총 206대를 보유해 미국(124대)을 크게 앞질렀다. 일본 역시 톱 500에 36개의 슈퍼컴퓨터를 등록했다.

반면 한국의 가장 좋은 성능을 갖춘 슈퍼컴퓨터 순위는 11위에 불과하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구축해 2018년 6월부터 운영에 들어간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 덕분에 그나마 체면치레를 했다.

◇ 세계 1위 슈퍼컴, 누리온보다 성능 10배 뛰어나

누리온은 연산 속도가 실측 성능 기준 13.9페타플롭스(PF)다. 계산노드는 8304개다. 1위를 차지한 미국 서밋의 실측 성능이 122.3PF인 점과 비교하면 10배쯤 차이가 난다. 1PF는 1초에 1000조번 연산이 가능한 수준이다. 70억명이 40년 걸려 마칠 계산을 1시간 만에 끝낼 수 있다. 미국 슈퍼컴 기업인 크레이가 주사업자이며, 한국은 이를 위해 540억원을 투자했다.

누리온은 그나마 가장 최근에 개발된 슈퍼컴퓨터라 순위가 높지만, 다른 제품은 순위권에서 한참 떨어진다. 기상청이 보유한 슈퍼컴퓨터 미리와 누리는 각각 76위와 77위다. 2017년 11월 발표 당시 57위와 58위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20계단쯤 하락했다.

또 한국은 단 7대의 슈퍼컴퓨터만 톱500 순위에 들었다. 이는 2017년 하반기 발표한 것과 동일한 결과다. 중국과 미국 등과 비교하면 현저히 저조한 성적표다. 1988년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후 30년간 슈퍼컴퓨터를 운영하고 연구해 왔던 것을 감안하면 노력 자체가 무색해진 셈이다.

◇ 매번 바뀌는 슈퍼컴 정책이 경쟁력 약화 가져와

한국의 슈퍼컴퓨터 수준이 다른 주요국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다 슈퍼컴퓨터 활성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있다.

슈퍼컴퓨터는 차세대 반도체와 자율주행차, 드론, 신약 개발 등 방대하고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4차산업혁명시대에 핵심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를 이유로 ISC에서 발표하는 톱 500 순위는 국가 미래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세계 각국이 슈퍼컴퓨터 성능을 끌어올리는 연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다.

정부가 2022년까지 페타스케일(1초당 1000조번 연산)급 초고성능 컴퓨터를 국산화할 계획이라고 2017년 말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앞서 2016년 4월에는 2025년까지 10년간 매년 100억원을 투입해 총 1000억원으로 30PF 성능 이상의 슈퍼컴퓨터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말만 무성할 뿐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이지수 사우디 킹 압둘라 과학기술대학교(KAUST) 슈퍼컴센터장은 “한국은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지 않고 3~5년마다 정책을 바뀐다”며 “슈퍼컴 산업이 자리잡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기업뿐 아니라 사용자 그룹, 인프라 기관 등 전체적인 생태계가 함께 발전하도록 생태계 육성 기간동안 일관된 정책이 유지되어야 한다”고말했다

그는 또 구체적 방향성의 미흡을 지적하며 한국의 슈퍼컴 계획성 문제를 지적했다. 국가별 전략을 살펴보면, 미국은 슈퍼컴 1위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중국은 미국의 견제를 피할 수 있는 독자기술 개발을, 유럽은 소프트웨어 및 요소기술 개발을 중시한다.

이 센터장은 “각 나라 상황에 따라 정책 방향성은 다르다”며 “구체적 방향이 미흡하면 두리뭉실하게 모든 것을 하겠다는 계획이 나오기 쉬운데, 초점없는 계획은 성공이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