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출의 큰 축을 맡고 있는 전자 업계가 중국의 제조 굴기(倔起), 미·중 무역전쟁 등의 영향으로 위기를 맞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17년부터 이어진 반도체 특수는 아직 수출의 버팀목 역할을 하지만, 이마저도 착시효과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리며 일년 전과는 정반대의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인공지능(AI), 5G와 같은 분야에서 이렇다 할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IT조선은 불확실성이 큰 대내외 환경에서 한국 전자 산업이 당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살펴봤다. <편집자주>

중국이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시장에서 치킨게임(어느 한쪽이 살아남을 때까지 벌이는 출혈경쟁)에 가까운 물량 공세를 퍼부으면서 한국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한국은 이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에서 한국은 스마트폰용 중소형과 TV용 대형 패널을 모두 장악한 상태다.

하지만, 중국의 관심은 LCD에 그치지 않는다. 이미 OLED에도 손을 뻗기 시작했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OLED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가 크지만, 중국이 애초 예상보다 LCD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것처럼 OLED도 자칫 시간을 줬다가는 뒷덜미를 잡힐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스마트폰용 중소형 플렉시블(휘어지는) OLED 패널. /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삼성디스플레이의 스마트폰용 중소형 플렉시블(휘어지는) OLED 패널. / 삼성디스플레이 제공
24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중국이 우선 관심을 보이는 쪽은 스마트폰용 중소형 OLED다. 이 시장은 현재 삼성디스플레이가 전 세계 매출 95%를 독점하고 있다. 지난해 애플이 처음으로 OLED 패널을 도입한 아이폰텐(X)을 시작으로 올 가을 출시 예정인 신작 아이폰에도 삼성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이 쓰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휘어지는 플렉시블 OLED 패널을 넘어 접히는 폴더블, 늘어나는 스트레처블 패널까지 영역을 넓혔다.

중국도 중소형 OLED 패널을 생산하기는 하지만, 아직 애플과 같은 제조사의 눈높이를 충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중국 디스플레이 굴기의 상징인 징둥팡(BOE)은 최근 6세대(1850㎜×1500㎜) 플렉시블 OLED 패널 생산라인에서 60%의 수율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아직 황금수율로 불리는 80%에는 못 미치지만, 자국 내 스마트폰 제조사에 패널을 공급할 만한 수준에는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BOE는 2017년만 해도 플렉시블 OLED 패널 출하량이 10만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18년에는 전년 대비 300배 늘어난 3000만대를 출하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LG디스플레이의 플렉시블 OLED 패널 출하량이 2017년 120만대, 2018년 2500만대 목표인 것과 비교하면 BOE의 목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BOE 외에 에버디스플레이도 최근 6세대 플렉시블 OLED 패널 양산에 들어갔고 비전옥스, 티안마 등도 일제히 리지드(평판) 및 플렉시블 OLED 패널 생산량을 늘리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들 업체의 경우 BOE보다 수율이 떨어진다고 보면, 사실상 상품 가치가 크게 떨어지지만, 그럼에도 자국 내에서는 충분히 소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한편, TV용 대형 OLED 패널의 경우 상대적으로 중국의 경쟁력이 뒤쳐진다는 평가다. 대형 OLED 시장에서는 현재 LG디스플레이가 독보적이다. LG디스플레이는 애초 파주 P10 공장을 10.5세대(3400㎜×2900㎜) 초대형 LCD 생산라인으로 가동하다가 향후 OLED로 전환할 계획이었다가 최근 10.5세대 OLED로 직행하는 안을 고려 중이다. LG디스플레이의 하반기 투자 방향에 따라 대형 OLED 시장 판도가 또 한번 바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