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적용 중인 새 배출가스 규제에 가솔린은 빠져있어 의구심을 자아낸다. 일각에서는 가솔린차를 더 우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가솔린과 디젤의 배출가스 규제가 각각 다른 기준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다.

WLTP와 RDE 제도를 통해 배출가스와 연비를 측정 중인 시트로엥 C4 피카소. / 유럽 운송환경 협회 제공
WLTP와 RDE 제도를 통해 배출가스와 연비를 측정 중인 시트로엥 C4 피카소. / 유럽 운송환경 협회 제공
지난 9월 1일부터 국내 판매 중인 디젤차는 새로운 배출가스와 연료효율 측정 규정인 WLTP(국제표준배출가스시험)를 적용한다. 새로 인증을 받는 차 뿐 아니라 기존 판매차를 포함한 포괄적인 규제다. 기존의 유럽측정방식(NEDC)과 비교해 배출가스 허용 기준은 같으나, 측정 시험주행시간(1180초→1800초)과 거리(11㎞→23.3㎞), 평균속도(33.6㎞/h→46.5㎞/h)를 모두 늘렸다. 조건을 가혹하게 만들어 연비와 배출가스를 실제와 비슷하게 만든 것이 이 제도의 특징이다.

당초 WLTP는 2017년 9월 도입될 예정이었다. 유럽 역시 그 시점에서 이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를 만족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쉽지 않았던 업계의 반발로 1년간의 유예기간을 뒀고, 2018년 9월부터 본격 적용되기 시작했다.

유럽은 WLTP를 도입하면서 가솔린 엔진의 배출가스 측정방법도 개정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가솔린차의 배출가스 규제를 특별히 바꾸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내 산업 경쟁력이 있는 가솔린차를 보호하고, 디젤차를 중심으로 성장한 수입차를 견제하기 위한 ‘꼼수’라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는 완전히 틀린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가솔린차는 미국의 제도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 FTA에 의한 것이다. 디젤차의 경우 2011년 7월에 발효된 한-EU FTA에 영향을 받는다.

현재 유럽 가솔린차의 배출가스 규제는 미국의 그것과 비교해 더 엄격하다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미국 규제가 유지되고 있는 동안 느슨한 유럽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실제 미세먼지의 원인물질이라고 알려진 입자상물질(PM)의 경우 한국과 미국은 ㎞당 0.0002g, 유럽은 0.0045g이다. 질소산화물(NOx)은 한국과 미국이 ㎞당 0.044g, 유럽은 0.060g이다.

또 가솔린차는 실도로 주행 시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크게 증가하는 현상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WLTP 도입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환경부 관계자는 "자동차의 경우 예전부터 가솔린은 미국 규제, 디젤은 유럽 규제를 따라왔다"며 "2018년 9월 현재 디젤차에 유럽의 배출가스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미국과 한국의 가솔린 배출가스 규제의 경우 유럽의 것보다 엄격해 특별히 손볼 곳이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