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계가 회로를 90단 이상 쌓아올린 5세대 3D 낸드플래시 양산 속도전에 돌입한다. 이 시장 선두주자인 삼성전자가 첫 포성을 울리자 후발주자도 일제히 바통을 이어받아 양산 경쟁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는 5월부터 평택 캠퍼스에서 5세대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양산 한 달 뒤인 6월부터는 5세대 3D 낸드플래시 기반으로 컴퓨터, 서버 시스템 등에 탑재할 수 있는 완제품 형태의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양산에 성공했다.

삼성전자의 256기가비트(Gb) 5세대 3D V낸드.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의 256기가비트(Gb) 5세대 3D V낸드. / 삼성전자 제공
반도체 업계는 애초 삼성전자의 5세대 3D V낸드 양산 시점을 3분기 이후로 봤다. 삼성전자도 올 4월 진행한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5세대 3D V낸드 로드맵에 대한 질문에 ‘연내 양산을 목표로 한다’며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삼성전자는 5세대 3D V낸드 양산을 업계 예상보다 최대 반년쯤 앞당긴 셈이 됐다.

삼성전자의 5세대 3D 낸드플래시는 데이터가 저장되는 3D 셀을 90단 이상으로 쌓아올린 첫 상용화 제품이다. 64~72단 적층 제품이었던 기존 4세대 3D V낸드와 비교해 성능과 용량, 생산성을 30%쯤 높였다. 2017년 말 기준으로 3D V낸드 생산 비중이 80%를 넘어선 삼성전자는 5세대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기점으로 이 시장 장악력을 더욱 높일 수 있게 됐다.

기존 평면(2D) 낸드플래시의 집적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층 구조를 채택한 3D 낸드플래시의 역사는 삼성전자의 역사와도 같다. 삼성전자는 ▲2013년 7월 1세대(24단) 3D V낸드를 처음 양산한 데 이어 ▲2014년 8월 2세대(32단) 3D V낸드 양산 ▲2015년 8월 3세대(48단) 3D V낸드 양산 ▲2017년 1월 4세대(64단) 3D V낸드 양산에 이르는 최초 기록을 써내려왔다.

후발 업체도 일제히 5세대 3D 낸드플래시 양산에 뛰어들었지만, 이제 막 걸음마 단계다. 이 시장 2위인 도시바메모리는 9월 들어 웨스턴디지털과 함께 준공한 미에현 욧카이치 소재 신공장 ‘팹6’ 가동을 시작했다. 도시바메모리는 다분히 삼성전자를 의식한 듯 지난해 6월 5세대 3D 낸드플래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지만, 1년 넘게 양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이번 팹6 준공으로 5세대 3D 낸드플래시 양산 계획이 허언이 아님은 증명했지만, 세계 최초 양산 타이틀은 이번에도 삼성전자에 내줘야 했다.

SK하이닉스는 9월 말 청주 M15 공장 준공을 마무리하고 차세대 낸드플래시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자체 개발한 5세대 낸드플래시에서 기존 3D 낸드플래시의 구조를 대폭 개선했다는 의미에서 4D 낸드플래시라는 이름을 붙였다. 청주 M15 공장에서는 우선 기존 4세대 72단 3D 낸드플래시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내년 초부터는 차세대 낸드플래시를 본격 양산할 예정이다.

이같은 낸드플래시 시장 선두권 업체의 차세대 3D 낸드플래시 양산 경쟁은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 칭화유니그룹 자회사 YMTC가 연내 32단 3D 낸드플래시의 양산 계획을 밝힌 가운데, 내년에는 중국이 64단 3D 낸드플래시를 내놓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는 중국의 3D 낸드플래시가 아직은 시제품 단계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의 수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 이상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본다.

김기남 삼성전자 DS사업부문 사장도 최근 열린 삼성 AI 포럼에서 "중국과의 낸드플래시 기술 격차가 3년은 있다고 본다"고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