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프라모델 취미는 실물에 대한 역사를 더 많이 알수록 재미있고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는 말은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그래서 독일 공군 프로펠러기 프라모델에 취미를 붙일 수 있도록 이번 회와 다음 회에서는 2차대전 독일 공군의 ‘격추왕’ 이야기를 좀 해보기로 하자.
요즘 ‘에이스(Ace)’라는 말은 흔히 스포츠팀의 가장 주축이 되는 선수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원래 이 에이스라는 단어는 공중전에서 적기를 5대 이상 격추한 파일럿에 대해 붙이는 말이기도 하다.
역으로 말하면 자기는 격추되지 않고 적기 5대를 격추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것인데, 2차대전 독일 공군에는 참 대단한 에이스들이 많았다.
이런 엄청난 격추 기록은 훗날 마치 스포츠처럼 기록이 집계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순위들이 매겨졌다. 주간 격추순위, 동부전선 격추순위, 서부전선 격추순위, 아프리카 전선 격추순위, 4발 중폭격기 격추순위, 야간격추순위 등등 여러 가지 순위가 소개되고 있다.
◇ 세계대전 초기 3인의 격추왕
제1차대전 당시 최고의 격추왕은 역시 독일군 파일럿인 ‘붉은 남작’ 리히트 호펜이었다. 그는 적기 80대를 격추시킨 뒤 전사했는데, 앞으로 이 기록은 절대로 깨어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차대전이 발발한 뒤 약소국가의 공군기들을 손쉽게 격추시키면서 워밍업을 한 독일 공군은 숙적 영국 공군을 상대로도 수많은 격추기록을 올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영국본토항공전(Battle of Britain)에서 독일군은 패배했지만 전투기만의 공중전을 놓고 생각한다면 영국 공군은 독일군의 우수한 파일럿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영국본토항공전이 절정에 달할 무렵, 독일군의 격추왕 삼두마차는 베르너 묄더스, 아돌프 갈란트, 헬무트 뷔크의 3인이었다. 매일매일 엎치락뒤치락 하며 격추 스코어를 올려가는 이 세 사람은 독일 국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전 자료였고 독일 국민들은 마치 스포츠 스타에게 열광하듯이 이들에게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그는 2대 편대를 구성하면서 한 대는 앞에서, 또 한 대는 측면 후방을 날면서 서로 사주경계를 해 주는 편대대형을 창안했고, 이런 2대 편대(로테)를 두개 붙여 4대 편대가 마치 네 손가락의 끝부분 같은 역 V자 형태로 비행하는 대형(슈밤)을 창안했다.
하지만 1941년 11월 22일 묄더스는 권총 자살한 독일 공군 기술국장인 에른스트 우데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선에서 베를린으로 향하던 도중 탑승한 폭격기의 엔진 고장으로 추락, 허무한 최후를 맞게 된다. 그의 총 격추기록은 115대였다.
묄더스의 죽음은 독일국민 전체에 엄청난 슬픔이었으며, 그의 장례는 국장으로 치뤄졌다. 또한 대전당시 독일공군의 제51전투항공단(JG51)과 현대 독일 연방군 제74전투항공단(JG74)의 항공단 명칭을 ‘묄더스’로 칭함으로써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항공단 사령관임에도 불구하고 ‘한대라도 더 많은 적기를 친구삼아 전장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싸움에만 열중했다. 이러던 중 1940년 11월 28일 임무를 마치고 귀환한 아돌프 갈란트로부터 그가 격추 전과를 올렸다는 전화를 받자 오기가 발동했다.
이 당시에는 조종사들이 임의로 출격해 전투를 벌이는 ‘도버 해협 상공에서의 자유전투’라는 별난 미션이 있었는데 뷔크는 격추 스코어 선두를 지키기 위해 출동했으나 영국군 스피트파이어와의 공중전 끝에 격추당해 전사하고 만다.
그의 총 전과는 56대였다. 56대의 전과는 대전 전 기간을 통해 본다면 ‘겨우’ 284위에 해당하는 순위였다.
◇ 엄청난 격추전과에 대한 논란
1941년 6월부터 시작된 바바롯사 작전, 즉 대소련 전투에서 독일 공군은 기량이 형편없고 기체도 구식이 대부분인 소련기들을 일방적으로 격추시키기 시작했다. 훗날 ‘공중 대학살’이라고도 불렸던 독일 공군의 일방적인 전투였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묄더스도 어렵지 않게 100대 격추를 달성할 수 있었다.
전투가 진행되자 묄더스뿐만 아니라 100대 이상을 격추하는 에이스 파일럿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유로 동부전선에서 100대를 격추시킨 파일럿은 최고 등급의 기사 철십자 훈장은 커녕 제일 아래등급의 기사철십자장을 받기도 힘든 지경이 된다.
훗날 독일 공군 파일럿의 격추기록의 신빙성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발생했는데, 신빙성이 높다는 쪽의 주장 중 하나가 바로 소련 공군과의 전과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사실 대전 중반 이후 서부전선에서 기량이 높고 전투기 성능이 우수한 미군과 영국군 전투기를 상대할 경우 100대 격추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은 또 있다. 독일군은 항상 자국 또는 점령지역의 상공에서 전투를 벌였으므로 설사 격추된다고 해도 낙하산 탈출을 통해 다시 귀환하여 전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을 종합해 보아도 독일 공군의 격추기록 사정은 아주 엄격했고, 훈장 수여도 그 희소성을 유지하기 위해 수여기준을 계속 상향 조정했다는 것이다.
아무튼 결론적 본다면 ‘신빙성이 있다’는 쪽이 더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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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식 현직 공인회계사(우덕회계법인)는 군사 무기 및 밀리터리 프라모델 전문가로, '21세기의 주력병기', 'M1A1 에이브람스 주력전차', '독일 공군의 에이스', 'D 데이', '타미야 프라모델 기본가이드' 등 다수의 책을저술하였으며, 과거 군사잡지 '밀리터리 월드' 등을 발간한 경력이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동 대학원 경영학과를 졸업한 유승식씨는 현재 월간 '디펜스타임즈'등 군사잡지에 기사를 기고하고 있으며, 국내 프라모델 관련 활동도 활발하게 벌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