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플래그십 EQ900은 개발 당시 현대차 에쿠스의 후속을 염두에 둔 제품이었다. 그러다 현대차가 고급 브랜드를 대중 브랜드와 분리하면서 제네시스 브랜드의 최상급 차종으로 자리를 옮긴다. 하지만 제품명에 ‘G’를 넣는 다른 제네시스 제품과 달리, ‘에쿠스(EQUUS)’의 인지도를 이용하기 위해 ‘EQ900’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이름을 붙였다.

제네시스 브랜드의 정체성이 하나둘씩 강화되면서 EQ900을 유지해야 하느냐는 내부 고민과 외부 평가가 있었다. 결국 제네시스는 플래그십 이름을 수출명인 G90으로 바꿨다. 새 G90은 기본적으로는 EQ900의 부분변경 모델이지만, 디자인과 상품성에서 이전의 EQ900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 장점이다. 새로운 제네시스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장 기대감이 있다.

◇ 잘 팔릴까?…이견없는 호평, 제네시스 정체성 살아난 진짜 플래그십

지난 11월 8일 제네시스는 G90의 미디어 프리뷰를 사진과 영상 촬영이 모두 금지된 비공개로 치렀다. 이 자리에서 참가한 많은 국내 언론 매체는 달라진 G90의 모습에 엄지를 들어올렸다. 디자인적으로 과하게 표현된 부분이 없진 않으나, 새 G90은 이전 에쿠스(EQ900)의 그림자를 일단 모두 거둔 것처럼 보였다.

제네시스 G90 티저 이미지. / 제네시스 제공
제네시스 G90 티저 이미지. / 제네시스 제공
제네시스 정체성으로 새롭게 표현된 부분은 가로선으로 위아래가 나뉜 쿼터 헤드램프다. 또 차량 측면의 턴시그널(방향지시등)이 헤드램프와 일체감을 이루며 뒤쪽으로 흐르는 모습 역시 새로운 디자인 기조로 유지됐다. 방패 형태의 제네시스 크레스트 그릴은 플래그십에 걸맞게 웅장한 모습을 뽐낸다. 수평 디자인 속에 요소요소의 존재감을 살렸다는 평가다. 휠 역시 완전히 새로운 변모를 보였다.

실내는 고급스러움에 초점을 맞췄다. 이전 EQ900의 디자인을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으니, 소재 질감은 두어단계 급을 높였다. 기존 플라스틱을 사용했던 곳을 가죽으로 감싸 촉감을 살렸다. 크러쉬패드에서 도어까지 이어지는 수평 상단은 가죽 두 조각을 한땀한땀 바느질로 이어 고급스럽게 연결한 파이핑 공법이 사용됐다. 실제 수작업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센터페시아를 비롯한 각종 조작부의 버튼을 새롭게 디자인하고 앞뒤 자리의 각종 요소도 통일감을 줬다.

세계 최초로 ‘내비게이션 자동 무선 업데이트(OTA·Over The Air Update)’가 들어갔다. 서비스센터를 찾을 일 없이 주행 중 내비게이션 백그라운드 업데이트가 이뤄진다. 또 머신러닝 기법을 활용해, 차량에 기록되는 유의미한 정보로 차량 운행 습관을 분석, 배터리와 브레이크 패드 관리 등의 운전자 맞춤형 차량 관리 가이드를 제공하는 ‘지능형 차량 관리 서비스’를 도입했다.

정숙성 역시 크게 개선됐다는 게 제네시스 설명이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NC·Active Noise Control)’로 엔진 소음을 줄였다. 제네시스 전용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으로 주행상황별 진동을 최소화하고, 앞바퀴와 뒷바퀴의 감쇠력을 적절히 배분해 목표 방향대로 제대로 주행할 수 있도록 돕는 점도 특징이다. 공기저항계수는 벤츠 S클래스(0.24cd)에 버금가는 0.25cd에 달한다.

가격은 3.8 가솔린 7706만원, 3.3 터보 가솔린 8099만원, 5.0 가솔린 1억1878만원부터다. 최저 트림 기준으로 기본형은 가격이 약간 올랐으나, 최고급형은 100만원 정도 내렸다. 물론 동급 수입 플래그십 세단에 비해 가격 대비 가치가 높다는 분석이다. 유지 보수 면에 있어서도 국산 플래그십의 장점이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 안 팔릴까?…장애물이 많지 않다, 하지만 해외는?

현재까지 제네시스 G90이 실패할 것이라는 징후는 크지 않다. 플래그십인데다 부분변경 모델이어서 완성도 면에서 허술하지 않은 덕분이다.

디자인과 제품명을 바꾸고, 완전히 제네시스 DNA를 심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이상엽 현대차 디자인센터장은 "제네시스 G90을 통해 브랜드 디자인 정체성을 완성해 나갈 생각"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나오는 제네시스 신차의 디자인 단초를 G90을 통해 볼 수 있는 셈이다.

내수에서는 법인 판매가 압도적으로 많을 전망이다. 공무상 수입차를 타기 어려운 소비자를 공략해 안정적인 시장 수요를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사전계약이 시작된 첫날(12일) 계약대수가 2700대를 넘었다. 현재 G90의 내수 판매목표가 월 4000대라는 점을 떠올린다면 만족할만한 성적이다.

하지만 G90은 내수에 머물러선 안되는 제품이다. 수출에서도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이다. 경쟁차로 삼고 있는 벤츠 S클래스와 BMW 7시리즈, 렉서스 LS 등과 해외에서는 시장 환경조건이 같다. 진짜로 시장에서 인정받으려면 이들을 이겨야 하는데, 브랜드 인지도에서 떨어지는 G90이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