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영상기기 제조업체 휴맥스의 위기감이 고조된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적자를 이어가고 있고, 성장 동력이었던 셋톱박스 시장 규모가 축소되며 돌파구 마련이 시급하다.

16일 업계 등에 따르면 상반기에는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최근에는 사업부가 분사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등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IBC 2014에 참가한 휴맥스 전시장. / 휴맥스 홈페이지 갈무리
IBC 2014에 참가한 휴맥스 전시장. / 휴맥스 홈페이지 갈무리
◇ LG도 접은 셋톱박스…시장 정체 속 고꾸라지는 실적

1989년 설립된 휴맥스는 대표적인 벤처 1세대 기업 중 하나다. 유료방송 시장 성장과 함께 셋톱박스 사업만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휴맥스는 2010년 매출 1조 클럽에 가입하며 강소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최근 휴맥스의 성장 가도에 비상이 걸렸다. 2000년대 초반 유료방송의 성장, 디지털전환, 디지털 카메라·HDTV·IPTV 보급 등 영향으로 성장세를 보였던 셋톱박스 시장이 성숙기로 접어든 이후 정체된 탓이다.

경쟁사 가온미디어는 새롭게 뜨는 인공지능(A) 기술 기반 스피커·셋톱박스 시장을 선점했는데, 휴맥스가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휴맥스 셋톱박스(왼쪽), 차량용인포테인먼트. / 휴맥스 홈페이지 갈무리
휴맥스 셋톱박스(왼쪽), 차량용인포테인먼트. / 휴맥스 홈페이지 갈무리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세계 셋톱박스 출하량은 2015년 2억9000만대로 정점을 찍은 후 2016년 2억7600만대, 2017년 2억7100만대로 시장 규모 자체가 꾸준히 축소된다.

시장 변화는 휴맥스의 실적에도 영향을 준다. 2018년 3분기 휴맥스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3분기 휴맥스는 매출 1조715억원, 영업손실 173억원, 당기순손실 149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3분기와 비교하면 매출은 2.1% 감소했으며, 영업이익은 2017년 3분기 18억원에서 적자전환, 당기순손실은 75억원에서 149억원으로 적자폭이 두배쯤 커졌다.

셋톱박스 사업 전망이 밝지 않자 아예 손을 뗀 기업도 여럿 있다. LG전자가 대표적인 예다. LG전자는 2017년 6월 프랑스 영상업체에 셋톱박스 사업부를 570억원에 매각했다. 셋톱박스를 버린 LG전자는 글로벌 차량용 조명업체 ZKW를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수하는 등 전장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육성 중이다.

◇ 셋톱박스 사업 축소에 직원들도 ‘수군수군’…조직개편 단행, 신사업 힘싣기

휴맥스도 LG전자와 비슷하게 미래먹거리로 전장을 택했다. 휴맥스는 2018년 2월 카셰어링 개발사 디지파츠를 270억원에 인수했으며, 앞서 2017년 12월 차량용 안테나 제조·판매업체 위너콤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하지만 셋톱박스는 휴맥스의 주력 사업이기 때문에 우선은 안고 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아직 매출 대부분이 셋톱박스 사업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3분기 기준 게이트웨이(셋톱박스) 부문 매출은 8560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79.9%에 달한다.

휴맥스 조직도. / 금융감독원전자공시시스템 갈무리
휴맥스 조직도. / 금융감독원전자공시시스템 갈무리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선 셋톱박스 사업 일부를 떼어내 다른 기업에 매각한다는 소문이 계속해서 돈다. 2018년 상반기 희망퇴직과 조직 통폐합을 단행했는데, 이것이 사업축소의 사전작업이라는 것이다.

희망퇴직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퇴직을 원치 않는 일부 직원의 반발이 나오는 등 진통이 있었지만, 사측의 의지는 완고하다. 그 결과, 2018년 6월 30일 기준 842명이었던 휴맥스 직원은 3달 만인 9월 30일 기준 785명으로 줄었다.

휴맥스는 인원 감축과 함께 최근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14일 발표된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2분기까지 있었던 SM사업그룹이 미디어사업부로 통합되고, 모빌리티(Mobility) 사업그룹이 새로 생겼다. 품질, 영업, 구매 중 구매부문 조직은 SMC부문에 통합됐다.

모빌리티 사업그룹을 추가한 것은 신사업(카셰어링)을 본격적으로 키우겠다는 휴맥스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셋톱박스 인력은 줄였지만, 반대로 전장 사업과 신사업 관련 인력을 충원하려는 의지 역시 강하다. 10월 휴맥스는 전장사업(SW개발)과 신사업(Mobility리서치) 부문 인원을 채용하겠다는 채용 공고를 올렸다.

휴맥스 한 관계자는 "셋톱박스 사업부를 매각한다거나 축소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셋톱박스 시장이 고성장을 이루는 부분이 아니므로, 현재는 신사업을 통한 성장을 모색하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 "희망퇴직자 중 셋톱박스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셋톱박스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많아서 였다"며 "모빌리티부는 올 초 인수한 디지파츠의 카셰어링 사업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