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근무가 화두입니다. 소프트웨어를 잘 활용하고 공장을 스마트하게 운영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면 주 52시간 근무에도 잘 대응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19일 서울 종로구 한국생산성본부빌딩 12층 집무실에서 만난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은 인터뷰 도중 ‘디지털'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말했다.

삶과 일의 균형, 저성장 등으로 변곡점을 맞은 한국 사회가 ‘디지털’을 활용해 각종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생산성본부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제로 매주 업무 보고를 하고 매월 강연회를 연다. 인사 제도에는 혁신, 변화, 도전 지표를 넣었다. 신입사원 채용 평가서에는 디지털 역량을 추가했다.

한국생산성본부는 그의 ‘친정’과도 같은 곳이다. 그는 1986년부터 2년간 생산성본부 연구원으로 일했다. 32년 만인 지난 2월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으로 돌아온 그는 직원들의 수동적인 태도와 자세가 능동적으로 바뀐 것을 디지털 포메이션 전략의 첫째 성과로 꼽았다. 그는 "내년이면 50억원 이상 순익도 증가할 것"이라면서 "이익이 나면 다시 디지털에 투자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한국생산성본부와 한국신용평가, 한국미래경영연구소를 거친 뒤 학계(선문대 경영학부 교수)에 20년 가량 있었다. 노 회장은 ‘경영정보 전공 1세대로 분류된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행정자치부 정부혁신관리위원회 위원으로, 2014년에는 서울시 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07년부터 10년 동안은 한국소프트웨어기술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노 회장은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제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 2분과 자문위원을 맡은 것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 4차 산업혁명위원회의 1기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생산성 향상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생산성본부는 블록체인경영협회가 발족하는 데도 힘을 보탰다. 노 회장은 이날 인터뷰 직전 생산성 본부 1층에서 열린 블록체인경영협회 발족식에도 참가해 "민·관·학이 블록체인 기술을 산업 발전에 발전 및 산업 도입을 위한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이 본부의 혁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촬영=노한호 PD·노창호 PD, 편집=노창호 PD

다음은 노규성 한국생산성본부 회장과의 1문1답.

―한국생산성본부는 1950년대 국내 최초의 산업 교육을 실시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때 한국생산성본부는 공공기관이었다. 역할도 막강했다. 나는 김익균씨와 함께 경영정보시스템(MIS) 교육과 컨설팅의 기초를 닦았다. 일본이 한참 잘 나가던 1986년 사무자동화(OA) 연수를 다녀온 뒤 관련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당시 한국생산성본부는 사무 자동화 분야에서 최고였다."

―친정으로 돌아온 셈이다. 회장 취임 이후에 바라본 한국생산성본부는 어떤가.

"경제가 어렵던 시절, 정부의 필요로 한국생산성본부가 탄생했다. 본부는 각 기업에 생산성을 어떻게 높여야 하는 지 각종 노하우를 전수해 한국경제가 압축 성장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 지원이 사라졌다. 10년 넘게 스스로 혁신해 현재 1500억원 규모의 자생 기관이 됐다.

취임 이후 8개월 동안 지켜본 한국생산성본부는 공공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약화돼 있다. 경쟁력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미래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능력도 부족해졌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양극화·저성장·일자리부족 등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주는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첫째는 기업 고객에게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에 관한 효과적인 방법론과 프레임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 스스로 고객경험, 운영 및 관리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세 가지 측면에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전략 과제를 수립 중이다. 전문가가 참여해 사업부서 단위별로 데이터를 구축하고 디지털 기반 업무혁신도 자체 과제 발굴하는가 하면, 정보화전략계획(ISP)도 수립 중이다. 데이터를 통합하고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기본이다.

둘째,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전략을 바탕으로 중소기업 컨설팅에 적극 나서겠다. 중소 기업 육성이야말로 우리와 잘 맞다. 중소기업 월급 10~20%만 올라도 경제가 달라진다.

마지막으로 해외 진출이다. 개발도상국, 중진국에서는 기업 생산성 컨설팅 수요가 크다. 한국 스마트 팩토리 사례 등 한국 모델은 아시아생산성기구(APO)에서도 인기가 많다.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 KPS(한국형제조혁신방법론), PMS(생산성경영체제), CS컨설팅 등을 중심으로 한국경제발전 경험과 노하우 전파 중이다. 3년 내에 아시아를 넘어서 세계 주요국에 거점 기반을 마련하고, 상시적으로 지식서비스를 수출할 계획이다."

―지난 7월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됐다. 생산성보다는 생산량과 직결된 이슈다. 사회적으로도 찬반 양론이 뜨겁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보통 ‘차고(garage)’에서 창업을 한다. 절박하게 일하는 스타트업까지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하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예외가 돼야 한다. 하지만, 스타트업을 제외한 부분은 광범위하게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자원 없는 한국에서 주 52시간 근로제를 정착시키기는 어렵지만, 방법은 있다. 바로 소프트웨어를 도입하는 것이다. 계산기를 두드리고 손으로 기록했던 회계를 소프트웨어로 처리하면 회계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하면 생산성이 낮은 편인데, 소프트웨어 활용률이 극히 낮기 때문이다."

―디지털,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이 일자리를 줄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일자리 정부와 맞는 방향인가.

"전문가들조차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진다는 식이다. 스마트 팩토리가 도입될 경우 지능화,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자리 공포가 현실화 됐나 돌이켜봐야 한다.

예전에는 공장에서 공정이 끝나고 제품이 나온 걸 본 이후에야 ‘불량이다 아니다’를 판단했다. 납기 지연이 발생하고 생산성을 떨어졌다. 이제는 공정 중간에 데이터를 뽑아내니 품질 좋은 완성품을 만들 수 있다. 품질 관리가 잘 되니 납기를 맞출 수 있다. 거래처와의 신뢰도 쌓인다. 데이터가 쌓이면 협력사와 협업하기도 쉽다. 결국, 공장 제조 인력은 줄지만 데이터 관리 인력 등이 추가로 필요해진다. 4차 산업혁명을 잘 준비하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 한국은 IT 인프라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뒤처진다.

"노동, 과학기술 분야에서 ‘가치 보장’이 이뤄져야 한다.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가치 보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약, A라는 것을 만드는데 1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고 할 경우 기획재정부에서는 ‘80억원이면 될 거 같은데’라고 한다. 과업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국회로 가면 또다시 예산이 60억원으로 내려간다. 보통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하청을 준다. 결국 A사업을 실제로 수행하는 중소기업은 50억원에 사업을 끝내야 한다. 중소기업에 기술이 축적되지 않는 이유다. 가치 보장은 매우 중요한 이슈다. 가치 보장이 잘 되면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노동 대가도 오르고, 청년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한국생산성본부만해도 컨설팅, 경연의 플랫폼 역할만 하고 강사 분들이 자신의 가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더 좋은 강사들이 모인다. 한국생산성본부와 각종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프리랜서 컨설턴트에 대한 대우도 잘 줘야 한다. 한국생산성본부는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통해 생산성을 배가해 쓸데 없는 낭비를 줄이고 외부 협력자들과 공생 구조를 갖춰 나갈 예정이다 "

― 지난 10월 한국생산성본부에서 블록체인경영협회식이 열렸다. 블록체인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나.

"블록체인 기술은 인터넷 이후 차세대 플랫폼의 핵심 기술이다. 금융, 유통, 의료 등 산업에 적용하는 것은 물론 정치, 제도, 문화 등 사회 전반에 큰 변화 가져 올 것이라 본다. 블록체인기술은 모두에게 기록을 공개함으로써 투명한 사회를 가능하게 하고 모두가 정보를 검증할 수 있어 신뢰 높은 거래를 가능하게 하며 중앙관리자가 없는 거래 방식으로 인해 자원집중, 정보집중 현상을 해소하고 거래비용도 절감시킨다.

결론적으로 블록체인기술은 모든 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문제해결에도 기여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블록체인 기술을 미래 전략 산업으로, 또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기반 기술로 시급히 육성해야 한다. 빅데이터, 인공지능은 선진국이 선점했다. 블록체인 분야는 기회가 아직 많다."

―문재인 정부와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부총재 시절 지인인 선배를 통해 마주할 기회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IT 비전문가였지만, 프로그램도 잘 짤 정도로 실력이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과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가 대통령에 출마할 때 우연히 대선 캠프의 정보통신정책 포럼 ‘현장포럼’에 참여하게 됐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폐지된 정보통신부의 복원 운동을 펼쳤다. 문 대통령 대선 후보 시절에는 국민성장연구소에서 정보통신미디어 팀장을 한 계기로 선거캠프의 일자리 위원회에서 IT정책을 담당했다."

―한국생산성본부가 벤치마킹을 하는 곳이 있나.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를 다녀온 후 충격을 받았다. 부회장에게 바로 전화를 해서 ‘늘 하던대로 하면 우리는 다 죽는다’고 말했다. 매년 직원 20명을 일주일씩 해외 연수를 보낼 예정이다. 변화에 도전하는 사람을 뽑아서 말이다. 연수를 보내려면 1인당 500만~700만원이 든다. 그런데 돈만 버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인적 자원이 변해야 조직 역량이 강화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회장 임기는.

"회장 임기는 3년이다. 연임할 수 있다. 연임에도 도전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