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덕'(Otaku)은 해당 분야를 잘 아는 '마니아'를 뜻함과 동시에 팬덤 등 열정을 상징하는 말로도 통합니다. IT조선은 2018년 시작과 함께 애니메이션・만화・영화・게임 등 오덕 문화로 상징되는 '팝컬처(Pop Culture)'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합니다. 어린시절 열광했던 인기 콘텐츠부터 최신 팝컬처 분야 핫이슈까지 폭넓게 다루머 오덕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 줄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요즘 어린이와 달리 3040세대는 국산이 아닌 외산 만화·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꿈을 키우고 미래를 꿈꿨다. 3040 세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대부분의 만화와 애니메이션 명작은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었다.

1970~1990년대 문화 황금기 시절 제작된 만화·애니메이션·게임 콘텐츠를 만든 일본 크리에이터들은 현재 활동 중인 만화가, 영화 감독, 애니메이션 제작자에게 영감을 줬다. 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징가Z. / 토에이 애니메이션 제공
마징가Z. / 토에이 애니메이션 제공
3040세대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명작’이라 평가받는 콘텐츠는 크게 ‘공상과학(SF)’과 ‘판타지’로 나눌 수 있다. 공상과학은 ‘아톰’과 ‘마징가Z’를 필두로 한 로봇 메카닉 소재 만화·애니메이션이 주도했고, 판타지는 1980년대 ‘로도스도 전기’, 1990년대 ‘슬레이어즈’ 등이 있다.

SF와 판타지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모태가 된 SF거장 필립 K.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등 작품은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

판타지 역시 영국 소설가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의 ‘반지의 제왕’. 소설가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The Chronicles of Narnia)’, 미국 소설가 어슐러 K 르귄의 ‘어스시 연대기(Earthsea Cycle)’ 등 일본과는 거리가 있다.

◇ 3040세대 SF 명작 핵심은 ‘슈퍼로봇’

최근 국내 법원을 통해 태권브이가 마징가Z 디자인 모방 여부 논란이 재점화된 것으로 보더라도 3040세대 정신 세계와 마징가Z로 시작하는 ‘슈퍼로봇’ 콘텐츠는 서로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로 보인다.

슈퍼로봇은 ‘과학적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기술로 만들어지거나 인간이 알지 못하거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뜻한다.

슈퍼로봇의 초석이 된 마징가Z’는 ‘초합금Z’라는 철갑으로 몸뚱이가 만들어지고,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자파니움'이라는 원소의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빛 에너지인 ‘광자력’이라 불리는 에너지를 활용해 지구 위를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그레이트 마징가. / 야후재팬 갈무리
그레이트 마징가. / 야후재팬 갈무리
원작자인 만화가 ‘나가이 고(永井豪)’와 일본 만화·애니메이션 업계가 1970년대 지구 기술이 아닌 우주의 초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로봇을 움직였던 까닭은 과학에 입각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 이야기보다, 인류의 과학 상식을 뛰어 넘는 이야기가 어린이에게 꿈과 재미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른이 봐도 어려운 과학 기술보다 설명이 불가능한 미지의 기술과 에너지가 이야기를 쉽고 더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시각이다.

마징가Z,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로 이어진 슈퍼로봇 마징가 시리즈의 인기는 ‘변신합체 로봇’의 탄생을 불러왔다. 변신·합체 로봇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인물은 초합금 마징가Z 장난감을 만든 ‘무라카미 카츠시(村上克司)’다. 그는 1975년 변신 로봇 '라이딘'을 탄생시켰으며, 1976년 변신·합체로봇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브이(V)’를 만들어 냈다.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 / 토에이 애니메이션 제공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 / 토에이 애니메이션 제공
‘악을 무찌른다’는 권선징악 스토리 일색이던 1970년대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은 1976년 4월 일본에 방영된 ‘콤바트라V’로 큰 전환기를 맞이한다.

콤바트라V를 만든 나가하마 타다오(長浜忠夫)감독은 1970년대 중반까지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의 스토리 라인이던 권선징악에서 탈피해 적과 아군 캐릭터 속에 사랑과 갈등, 혈연과 숙명 등을 넣었다. 어른이 봐도 괜찮을 만큼의 깊이 있는 인간 드라마를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에 녹여낸 것이다.

그는 적군인 외계인에게도 지구를 침략해야만 하는 정당한 명분을 부여했고, 캐릭터 시점에 따라 선과 악이 달라지는 등 당시 어린이가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운 면도 추가했다. 하지만 그의 참신했던 도전은 이미 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졸업한 당시 일본의 20대 젊은이를 애니메이션 팬으로 돌아오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허구를 버리고 사실성을 추구한 ‘리얼로봇’

1979년 등장한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은 과거 슈퍼로봇 애니메이션에서 다루지 않던 보다 사실적인 전쟁을 그려 ‘리얼로봇’ 애니메이션의 초석을 세웠다.

리얼로봇은 슈퍼로봇과 달리 현재의 과학 기술과 상식 범위 속에서 만들어지고 움직이는 로봇이다. 애니메이션 속 리얼로봇은 슈퍼로봇처럼 유일무이의 존재가 아니라 공장에서 생산되며, 액체 연료 등의 에너지로 가동 된다. 파일럿도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훈련 과정을 거쳐 양성된다.

건담으로 시작된 리얼로봇의 대표주자는 1981년작 '태양의 이빨 다그람'과 1983년작 '장갑기병 보톰즈'으로 평가받는다.

장갑기병 보톰즈. / 선라이즈 제공
장갑기병 보톰즈. / 선라이즈 제공
다그람과 보톰즈를 만든 타카하시 료스케(高橋良輔) 감독은 보톰즈를 남자 냄새가 물씬 묻어난 하드보일드한 작품으로 완성시켰다. 애니메이션 속 로봇 ‘아머드 트루퍼(AT)’는 앞서 등장한 다그람보다 더 사실적인 하나의 무기처럼 그려졌다. 로봇 병기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것이다.

길가메스군 상사이자 주인공인 ‘키리코 큐비’도 자신이 타는 로봇 ‘스코프독’을 소모품처럼 대한다. 키리코는 작품 속 전투에서 로봇이 부서지면 적의 스코프독을 탈취해 탑승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 이런 전개는 1950년대부터 이어져 왔던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 콘텐츠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것으로, 로봇이 주인공 행세를 하던 기존 슈퍼로봇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모양새다.

1988년 출간된 책 ‘TV애니메이션 25년사(史)’는 보톰즈 애니메이션을 리얼 로봇 작품의 ‘정점’이라 극찬했다.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 선라이즈 제공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 선라이즈 제공
보톰즈 이후 일본의 로봇 애니메이션은 기존 시청자인 어린이를 몰아냈다. 토미노 요시유키(富野由悠季) 감독의 1988년작 극장 애니메이션 '역습의 샤아(機動戦士ガンダム 逆襲のシャア)'는 건담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스토리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인간의 내면 세계를 다뤘던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로봇 애니메이션을 성인향 콘텐츠로 안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한 로봇 애니메이션 팬에 맞춰 내용을 기획한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만큼 그들을 만족시켜줄 내용은 더 치밀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꾸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사이버 펑크 SF의 금자탑이라 평가받는 ‘공각기동대’, ‘아키라’

사이버 펑크 SF 명작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는 제4차대전으로 폐허화된 2029년의 패러랠월드를 무대로 사이보그의 몸을 가진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와 공안9와의 이야기를 그렸다.

공각기동대는 일본 만화가 시로마사무네(士郎正宗)가 1989년 공개한 만화책이 원작이다. 이 작품이 세계적인 히트 콘텐츠로 떠오른 것은 오시이 마모루(押井守) 감독이 만든 1995년작 극장판 애니메이션 덕분이다.

공각기동대 포스터 이미지. / 야후재팬 갈무리
공각기동대 포스터 이미지. / 야후재팬 갈무리
공각기동대가 그린 세상에는 '전뇌'라 불리는 뇌의 일부를 컴퓨터화하는 기술이 일반화돼 있다. 이 세상 속 사람들은 뇌를 직접 네트워크에 연결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공각기동대 작품 속에는 뇌와 뇌가 연결된 광대한 네트워크가 존재하며 사이보그·안드로이드·바이오로이드가 인간과 함께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극에서는 반사회 테러가 빈번히 발생하며, 정치인의 부패, 뇌를 해킹하는 등의 각종 범죄가 나온다.

‘사이버 펑크(Cyberpunk)’는 1980년대 영화·만화·애니메이션에 자주 사용됐던 사이언스픽션(SF)의 하위 장르 중 하나로, 가까운 미래를 무대로 철학적인 의미와 반사회적인 운동 등을 담은 것이 특징이다.

사이버 펑크 SF 대표작은 1984년 출판된 소설 ‘뉴로맨서(Neuromancer)’다. 이 작품은 사람의 뇌가 연결되는 거대한 네트워크 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블레이드 러너’, 애니메이션에서는 ‘공각기동대’, ‘아키라’ 등이 있다.

사이버 펑크라는 단어는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에서 가져왔다. 사이버네틱스는 미국 수학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가 만든 것으로 통신·제어·기계·시스템 공학과 생리학 등을 융합한 학문을 지칭한다. 사이버네틱스로 탄생된 발상이 SF소설에 활용되면서 하나의 문학 장르로 자리잡은 셈이다.

사이버 펑크 SF는 컴퓨터가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 붐을 일으켰다. 사람들에게 생소했던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개념을 다룬 소설이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소재였다.

아키라. / 야후재팬 갈무리
아키라. / 야후재팬 갈무리
오오토모 가츠히로(大友克洋) 원작 만화·애니메이션 ‘아키라(AKIRA)’는 초능력이 가져다주는 공포와 사회 붕괴를 그린 사이버 펑크 SF 작품이다. 1988년 극장가에 개봉된 이 작품은 아직도 많은 SF 마니아의 입에 오르는 명작이다.

아키라 주인공 ‘시마 테츠오’는 평범한 폭주족이었지만 초능력자를 연구하는 아키라 프로젝트 실험체(26호)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군 직할 연구소로 연행된다. 테츠오는 연구소에서 자신의 초능력을 발굴해 사회를 초토화시키는 초능력 괴물로 성장한다.

◇ 3040세대 판타지 명작으로 손꼽히는 ‘로도스도 전기’, ‘슬레이어즈’

국내 3040세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판타지 작품은 ‘로도스도 전기’와 ‘슬레이어즈’다.

소설가 미즈노 료(水野良)가 1988년 공개한 소설 '로도스도 전기'는 일본을 대표하는 정통파 판타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로도스도 전기가 대중과 후대에 등장하는 판타지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은 누가봐도 명백하며, 국내에서도 이 작품을 소재로 한 온라인 게임이 제작될 정도로 국내 팬층 또한 두텁다.

로도스도 전기. / 아마존재팬 갈무리
로도스도 전기. / 아마존재팬 갈무리
‘로도스도 전기’는 1990년 13편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면서 전 세계에 그 이름이 알려졌다. 애니메이션의 성공은 로도스도 전기를 소재로 한 게임, 만화책, 라디오 드라마 제작으로 이어졌다.

로도스도 전기 애니메이션은 마신전쟁 종전 이후 주인공 기사 '판'과 하이엘프 여주인공 '디드리트'의 모험 이야기를 다뤘다. 애니메이션은 미모의 여주인공 '디드리트' 팬을 양산했다. 애니메이션 탄생 28년을 맞이한 지금도 그녀의 인기는 변함이 없다.

슬레이어즈. / 아마존재팬 갈무리
슬레이어즈. / 아마존재팬 갈무리
3040세대에게 큰 웃음을 안겨준 판타지 작품 ‘슬레이어즈’는 소설가 칸자카 하지메가 1990년 소설로 대중에게 처음 선보였다. 소설이 인기를 끌자 1995년부터 슬레이어즈 소재 애니메이션과 만화책이 쏟아져 나왔다.

슬레이어즈는 소설 책보다 애니메이션과 게임 등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1980~1990년대 일본의 글로벌 히트작과 마찬가지로 만화나 소설이 아닌 TV애니메이션이 일본 국외로 수출되면서 더 많은 팬을 확보한 것이다.

슬레이어즈 시리즈 주인공은 자칭 미소녀 천재 마도사(魔道士) '리나 인버스'다.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슬레이어즈 세상 속 최강마법인 '드래곤 슬레이브'를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기가 슬레이브', '라그나 블레이드' 등 마법도 만들어 낼 만큼 마법에 있어서 달인이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미모(?)에 걸맞지 않은 성격과 존재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빈약한 가슴에 있다. 리나의 빨래판 가슴은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언급되며, 이로 인해 분노를 폭발시키는 장면을 여럿 연출한다.

슬레이어즈는 원작 소설을 기준으로 제법 무겁고 살벌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곳곳에서 터지는 개그 코드는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재미 넘치는 판타지’로 바꿔준다.

원작자 칸자카는 작품 이름인 슬레이어즈 속에 ‘독자들의 배꼽을 빼놓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소설책 8권에서 밝힌 바 있다. 원작자에 따르면 영어 단어 슬레이(Slay)는 ‘죽이다’, ‘멸종시키다’는 의미가 앞서지만 ‘농담으로 사람을 웃기게 하다’란 의미도 포함한다.

‘라이트노벨 금자탑’이라 평가 받는 원작 슬레이어즈 소설 책은 일본에서만 2000만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