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후반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는 자동차 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대부분 미국 자동차 회사가 자금에 큰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이들이 소유한 브랜드 다수가 시장에 나온 것이다. 결국 사브 등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재규어랜드로버는 인도 자본에 팔려갔다. 볼보차 역시 중국 지리자동차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2010년의 일이었다.

. / 볼보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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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 당시 지리차의 볼보차 인수는 신의 한수가 됐다는 평가다. 안정된 자금 구조와 지원 속에서 신차 개발을 가속, 현재 탄탄한 제품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SUV 열풍이 분 점도 볼보차에게는 호재였다. 워낙 SUV, 왜건에 있어서는 기술적 노하우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2016년 내놓은 XC90은 볼보의 변화를 상징하는 차였고, 2017년 XC60, 2018년 XC40 등 매년 SUV 신차를 내놓으며, 시장에서 호평을 이끌어 냈다.

특히 XC90에서 XC40으로 이어지는 볼보의 ‘뉴(New) XC 레인지’는 볼보 역대 최고의 제품군으로 꼽힌다. 상품성에서 과거에 비해 몇 단계나 진일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급 브랜드로서의 정체성도 갖췄다. 때문에 현재의 볼보는 ‘스웨덴 프리미엄’ 브랜드로 평가 받는다.

국내 시장에서도 볼보차는 두각을 나타내는 중이다. 전통적으로 상위권을 형성하는 지표인 연간 1만대 판매에 가장 근접한 브랜드여서다. 더욱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적이라는 점이다. 올해 11월 누적 판매량은 7900여대로, 최종 성적은 8000대 이상, 내년에는 확실하게 1만대 판매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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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시승한 차는 XC90이다. 2016년에 등장, 환골탈태한 볼보를 상징하는 차다. 여기서 얻은 성과는 XC60과 XC40으로 이어진다. 성공적인 디자인 패밀리룩의 완성과 첨단 안전기술 등이 XC90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착된 4기통 2.0리터 디젤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는 최고출력 235마력, 최대토크 48.9㎏·m의 힘을 낸다. 압축공기를 탱크에 저장했다가 시동 직후나 가속 시 터보차저에 공급해 힘을 늘리는 ‘파워펄스’ 기술이 눈에 띈다. 터보엔진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굼뜬현상 ‘터보랙’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차는 비대하지만 그 움직임이 결코 뒤뚱거리지 않는다. 여전히 디젤엔진이 주는 장점이 고스란히 잘 녹아있다. 높은 토크를 바탕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SUV의 감성 그대로다.

플래그십 SUV여서 전반적으로 편안함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하체 세팅이 인상적이다. 반면 서스펜션을 조금 더 다부지게 세팅해 놓아 안정성을 살렸다. 실내가 꽤 조용하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두번째 시승 제품은 XC60이다. 새 플랫폼인 SPA를 기반으로, SUV의 비율을 재정의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인 디자이너가 전체 디자인을 그려내 더욱 화제를 모았다. 이전 세대와 비교해 90㎜ 늘어난 휠베이스는 실내공간의 상승을 이끌어 냈다.

실내에는 진짜 나무의 느낌이 나는 우드트림과 감촉과 착좌감 모두 부드러운 나파 가죽이 채용됐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발전한 스웨덴 가정의 인테리어 환경이 그대로 XC60으로 들어왔다는 느낌이다.

시승차로 준비된 XC60 T6 인스크립션은 4기통 2.0리터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린다. 최고출력 320마력, 최대 40.8㎏·m을 낸다. 연료효율은 복합 기준으로 L당 9.4㎞다. 가솔린 엔진이기 때문에 크게 떨어지는 수치는 아니다. 오히려 조금 더 부드러운 가속과 안정된 진동, 소음을 가지는 가솔린의 장점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SUV 만들기에 있어선 일가견이 있는 브랜드답게 주행을 하는 내내 큰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조작 감각 역시 알맞다. 급한 구석이나 지루한 느낌도 들지 않는다. XC60의 경쟁상대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여기에 있다.

막내 XC40 역시 국내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다. 작은 차지만, 볼보 감성이 잘 담겼고, 경쟁차보다 우위에 있는 편의 및 안전장치 등이 장점이다. 시승차에 얹은 2.0리터 가솔린 터보엔진은 최고출력 190마력, 최대토크 30.6㎏·m의 성능이다. 8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L당 10.3㎞의 복합효율을 낸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을 기본으로 적용해 도심 주행과 험로 주행을 동시에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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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움직임은 마치 날다람쥐 같다. 가솔린 엔진이 SUV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지만, 나름의 재미를 선사한다. 일상주행에서는 큰 무리가 없고, 험로에서는 반응이 좋다. 정통 오프로더의 감성을 기대할 순 없으나, 이가 없으면 잇몸 정도의 역할은 한다.

실내 구성은 신소재를 사용했으나, 국내 소비자에겐 ‘고급차’의 느낌을 주지 못해 한계다. 약간 부직포 같은 기분을 주는 것이 아쉽다. 소형 SUV지만 곳곳에 갖춰놓은 적재공간으로 실용성을 대폭 늘렸다. 그 중에서도 문짝에 달린 상당히 넉넉한 컵, 보틀 홀더가 꽤 마음에 든다.

볼보차 XC 레인지의 가장 큰 장점은 누가 뭐래도 ‘안전’이다. 차급에 관계없이 모든 트림에서 압도적인 수준의 안전기능을 선보인다. 부분자율주행 기능 역시 볼보가 특히 자랑하는 부분이다. 두각에는 이유가 있었다. 소비자는 만족하기 힘든 제품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