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상화폐(암호화폐)업계가 극심한 부진을 겪는다. 업계는 2019년 비트코인 ETF(인덱스펀드 거래, Exchange Traded Fund)와 STO(증권형 토큰공개, Security Token Offering)를 화두이자 희망으로 앞세운다.

ETF는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심사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필자는 양국 모두 비트코인 ETF를 허락할 확률이 극단적으로 낮다고 본다.

일본은 암호화폐 관련 모든 이슈에 부정적으로 대응한하다. 이미 여러모로 힘든 상황을 많이 겪어서다. 미국 또한 몇몇 개인을 제외하면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가 버블(거품)이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필자는 2년쯤 이전인 20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IT조선에 ‘세계 3대 버블과 가상화폐 버블을 비교하는 칼럼’을 시리즈로 썼다.

(IT조선 2017년 11월 2일 ‘[홍기훈의 블록체인과 핀테크] 네덜란드 튤립 버블과 가상화폐’, 11월 15일 ‘[홍기훈의 블록체인과 핀테크] 네덜란드 튤립 버블과 가상화폐 버블, 결론’, 11월 29일 ‘[홍기훈의 블록체인과 핀테크] 가상통화 폭등과 유사하다고 알려진 '남해회사 버블' 뒷배경’, 12월 13일 ‘[홍기훈의 블록체인과 핀테크] 비트코인 폭등락·ICO, 남해회사 버블과 비교한 결론은’ 칼럼 참조)

이 때 늘 강조하던 "모든 버블은 사후에만 인지 가능하다."는 말을 다시 한번 독자에게 상기시키고 싶다. 암호화폐 가격이 버블이었음은 이제 확인됐다.

‘비트코인 ETF가 허락되면 기관투자자가 물밀듯 암호화폐에 투자할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비트코인 선물 거래량이 적은 점을 보면, 이 또한 사실이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확률 자체가 매우 적지만, 아주 만약 어느 나라에선가 비트코인 ETF를 허가한다 하더라도 기관 투자로 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과열될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2019년 암호화폐 업계가 또다른 화두로 제시한 STO도 실망스럽기는 매한가지다. 다음 칼럼을 통해 STO의 정의와 전후좌우를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STO는 자본조달을 위해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정의한 ICO의 한 형태’다.

증권의 속성을 가졌다면, 암호화폐 발행이라 해도 기존 규제의 틀 안에 완전히 들어가 버린다. 전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건 마찬가지다. 금융 입장에서 보면 STO와 기존 자본조달은 거의 같다.

왜 기존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자본조달을 구태여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로 해야 하는가?

왜 암호화폐는 스스로 혁신이라 주장하면서 ‘기존 금융제도의 틀’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모순을 보이는 것인가?

필자는 ETF와 STO가 2019년 암호화폐 업계의 화두인 것에 크게 실망했다. 활황기였던 2017년, 암호화폐 업계는 ‘암호화폐는 우리의 미래이자, 인류의 기존 화폐경제와 금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혁신’이라 주장했다.

물론 필자를 비롯한 수많은 경제학자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우리의 조언은 단지 ‘기성세력의 저항’으로만 치부됐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암호화폐 업계는 ‘암호화폐는 화폐가 아니라 전자금융자산이다’라며 이야기를 바꿨다. 이는 금융자산의 정의를 잘 모르고 한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암호화폐 업계는 ‘기존 금융투자업계를 뒤흔들 혁신’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 주장을 바꾸면서도 포장 기법(?)은 그대로였던 셈이다.

만약 암호화폐가 인류에 거시적인, 불가항력적인 변화를 일으킬 혁신이라고 치자. 기존 경제와 금융을 바꿀 혁신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2019년 암호화폐 업계는 말로는 혁신을 외치며 왜 기존 경제와 금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일까? 이들이 화두로 제시한 ETF는 기존의 기관투자 방식과, STO는 기존의 자본조달 방식과 사실상 동일하다.

별안간, 필자가 2018년 12월 TV 프로그램 ‘SBS 스페셜’의 암호화폐 기획 ‘고스트 머니’ 자문역을 맡을 때 PD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비트코인(암호화폐)이 화폐를 대체할 것이라 주장했던 사람들을 다시 한번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또 뭐라고 이야기를 바꿀지."

만약 암호화폐가 진정한 혁신이라면, 구태여 기존의 경제·금융을 답습할 이유가 없다. 이는 블록체인 업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진정한 혁신은 기존 요소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다.

필자는 2019년 암호화폐 업계가 ‘완전히 새로운 혁신’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혁신이란 그들의 주장처럼 ▲신뢰할 수 없고 비효율적이며 ▲중앙집권화돼 불투명한데다 ▲소수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문제투성이 구조인 ‘기존의 금융·화폐경제’를 개혁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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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훈 교수(PhD, CFA, FRM)는 홍익대 경영대 재무전공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학계에 오기 전 대학자산운용펀드, 투자은행, 중앙은행 등에 근무하며 금융 실무경력을 쌓았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박사를 마치고 자본시장연구원과 시드니공과대(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경영대에서 근무했습니다.

주 연구분야는 자산운용, 위험관리, 대체투자입니다. 현재는 중소기업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우베멘토의 리서치 자문과 금융위원회 테크자문단을 포함하여 현업 및 정책적으로 다양한 자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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