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3일은 비트코인이 탄생한 지 10주년 되는 날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008년 11월 ‘비트코인 : 개인 대 개인의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9페이지의 논문을 공개하고 3개월 후인 2009년 1월 3일 오후 6시 15분 첫 비트코인을 채굴했다. 그가 제네시스(0번째) 블록에 남긴 메시지는 ‘은행을 위한 두 번째 긴급 구제 방안 발표 임박'. 자본주의의 폐해를 전자화폐로 해결해보겠다는 그의 바람은 실현됐을까. 비트코인은 개당 2000만원 넘게 치솟았다가 최근 400만원으로 추락하며 탄생 10년 만에 다시 중대 고비를 맞았다. IT조선은 블록체인·암호화폐 현황을 긴급 점검하고 시장을 전망한다. 기획 시리즈는 정답이 아니라 발제문이다. itchosun@chosunbiz.com으로 의견도 받는다. IT조선은 오프라인 세미나도 기획 중이다. [편집자주]

2019년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부정적이다. 하지만 유독 긍정적인 시선을 받는 경우가 있다. 바로 증권형토큰(STO, Security Token Offering)이다.해외에서는 STO가 유틸리티 토큰 중심 구조를 바꾸고 활성화되면서 급락한 암호화폐 가치를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하지만 국내서는 녹록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STO는 부동산, 채권, 지식재산권, 그림 등 실물자산을 토큰과 연동해 일종의 주식처럼 배당과 이자, 의결권, 지분 등을 토큰 소유자가 취득할 수 있도록 설계한 서비스다. 분야별로는 ▲부동산, 담보 등과 연결된 토큰(Debt Token) ▲회사 지분과 연결된 토큰(Equity Token) ▲파생상품과 연결된 토큰(Deliverative Token) 등이 있다. 자본조달을 위해 암호화폐를 증권으로 정의한 암호화폐 공개(ICO)의 한 형태라고 보면 된다.

◇ STO로 쏠리는 관심

국내외에서는 STO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STO가 기존 ICO를 대체할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면서 전통적 금융시스템과 블록체인·암호화폐 생태계를 연결해 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서는 STO가 암호화폐 시장 주류로 급속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세계 거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등은 STO 거래소를 준비 중이다.

포브스는 "유틸리티 토큰 등을 이용한 암호화폐 공개(ICO)는 지금까지 회사 지분을 사는 것에 익숙했던 이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며 "STO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이점을 결합했다"고 평가했다.

국내서도 STO를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국내 대표 거래소 중 하나인 빗썸은 STO 발행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빗썸은 최근 미국 핀테크 기업과 STO 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빗썸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는 김병건 BXA 대표는 지난 해 말 기자들과 만나 "증권형 거래소가 가장 큰 시장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STO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미국 증권형 토큰시장을 가장 중시한다"고 말했다.

국내 금융법을 준수하는 STO를 준비하는 연합도 탄생했다. 핀테크·블록체인 마케팅 기업 팀위와 네오위즈 계열사로 블록체인 프로젝트에 투자를 확대하는 네오플라이 등이 STO 플랫폼 ‘STOK’를 설립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권단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도 힘을 합친다.

권단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STOK 프로젝트는 세계 최초 한국 자본시장법 규정을 준수한 이오스 블록체인 기반 STO 프로토콜 플랫폼으로 개발된다"고 설명했다.

관련업계는 STO 관심이 높아진 이유를 최근 암호화폐, 블록체인 업계 위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ICO를 이용한 각종 사기 행각, 자금 세탁 등의 문제로 인해 세계적으로 강화되는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비트코인을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 가치 하락도 한 몫을 했다.

한대훈 체인파트너스 리서치 센터장은 "허술한 방식의 ICO는 이제 그 수명이 다했다"며 "앞으로 발행될 토큰 대부분이 증권으로 취급되며 STO가 점차 확산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과도한 기대는 위험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과도한 기대보다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인원 리서치센터는 STO 자체는 잠재력에 주목하면서도 자산 유동성 관점에서 이를 맹신할 경우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필적하는 공포가 닥쳐올 것이라 경고했다.

코인원 리서치센터는 14일 보고서를 통해 "STO는 유동성이 부족한 자산(부동산, 비상장기업 주식, VC 등)을 비용 효율적으로 무수히 많은 조각으로 나눠 토큰화하고 접근성과 유동성을 향상시켜 새로운 투자시장을 개척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 개념은 12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라고 밝혔다.

이어 "자산 유동화를 위한 STO는 핵심이 아니며 이 부분에만 집중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레몬마켓(시고 맛없는 레몬만 있는 시장과 같이 저급품만 유통되는 시장)이 형성될 수 있고 이로 인해 과도한 금융기법 활용의 폐해가 발생해 2007년 금융위기의 구성요소가 또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CP리서치)는 "STO가 급격히 성장해 이를 취급하는 디지털 자산 관련 신생기업이 단숨에 전통 금융 기관을 위협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기 어렵다"며 "STO가 본격적으로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관 자금이 유입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명료한 규제확립, 국제적 표준, 인프라 성숙, 신뢰도 높은 전통 금융 기관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전통 금융 기관 참여없이는 STO 시장의 유의미한 수준으로 성장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유동성에 대해서는 코인원 측과 의견을 달리 했다. 체인파트너스 리서치센터는 "STO는 이론적으로 24/7(무중단) 거래, 자산의 부분 소유권, 운영비용 절감, 거래 효율성 증가, 컴플라이언스 자동화, 글로벌 자본 시장의 높은 접근성 등 장점이 흠잡을 데 없이 이상적으로 좋다"며 "다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활성화되고 유동성이 풍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STO가 유동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기관 자금 유입 및 시장 확대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특히 유동성으로 인해 제2 금융위기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나친 기우라고 밝혔다.

혁신과 탈중앙화 등 기존 전통적 금융과 다르다는 점을 외치던 블록체인·암호화폐가 다시금 제도권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대훈 센터장은 "STO는 탈중앙화를 지향하던 블록체인 생태계를 중앙화하는데 일조할 것이다"라며 "중앙화와 사업 효율성은 정비례하는 측면이 있어 탈중앙화를 지향하던 블록체인 기업들은 사업이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설명했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는 "STO는 증권 속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기존 규제 틀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다"며 "STO는 기존 자본조달과 거의 같다는 점은 암호화폐가 버블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