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에서 손꼽히는 기업인 애플과 엔비디아가 최근들어 여러모로 닮은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을 통해 혁신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이후 IT 업계에서 그러한 애플을 롤모델로 삼거나 벤치마킹한 기업들이 적지 않지만, 엔비디아만큼 애플을 닮은 행보를 보이는 곳도 많지 않다. 특히 두 회사는 성공사례는 물론, 최근 닥친 위기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모습까지 닮아 관심을 모은다.

애플과 엔비디아 로고. / IT조선 DB
애플과 엔비디아 로고. / IT조선 DB
◇ IT 혁신의 상징으로 떠오른 애플과 엔비디아

요즘 들어 그 위상이 예전만 못하긴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은 피처폰 중심의 휴대폰 시장에 본격적인 스마트폰 붐을 일으킨 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이전에도 PDA, 핸드헬드 PC 등 스마트폰 등장 이전에도 ‘손 안의 컴퓨터’를 표방한 제품들이 있었지만,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아이폰은 맥(Mac) 시리즈에서부터 다져온 사용자 친화형 GUI(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직관적인 터치 조작을 적극 도입하고 누구나 쉽게 접근 및 사용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 ‘스마트폰’의 개념을 정립하고 오늘날 거대해진 스마트폰 시장의 기본적인 토대를 쌓는 데 성공했다. 아이폰의 상업적인 성공으로 인해 애플은 머지않아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 기준으로 손꼽히는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분야는 좀 다르지만 엔비디아도 IT 업계에 상당한 족적을 새겼다. 3D 그래픽의 처리에만 사용하던 GPU(그래픽 프로세서 유닛)를 각종 반복 병렬 연산의 가속장치로 재발견하고 이를 업계에 전면적으로 도입함으로써 고성능 컴퓨팅 분야에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특히 이러한 GPU 연산 가속 기능이 빛을 발한 것은 딥러닝, 머신러닝에 기반을 둔 차세대 인공지능(AI) 분야였다. 2016년 3월 GPU 기술을 활용한 AI 바둑기사가 인간 기사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를 통해 전 세계에 AI 붐이 일기 시작했고, IT업계에선 너도나도 GPU를 통한 새로운 인공지능의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AI 및 관련 시장이 급성장함에 따라 2016년 기준 30달러 선에 불과하던 엔비디아의 주가도 지난해 280달러 선까지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발표하는 스타일도 두 회사는 매우 비슷하다. 과거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검은색 터틀넥+청바지 스타일로 절제된 무대에서 ‘원 모어 띵(One more thing)’을 중심으로 그만의 독특한 발표 스타일로 유명했다. 엔비디아 역시 젠슨 황 창업자 겸 CEO가 애플과 비슷한 분위기의 무대에서 특유의 가죽점퍼를 입고 자사의 가장 중요한 제품과 기술 발표에 나선다.

애플과 엔비디아는 신제품 발표 스타일도 비슷하다. / 유튜브 갈무리
애플과 엔비디아는 신제품 발표 스타일도 비슷하다. / 유튜브 갈무리
◇ 최신 제품 ‘미지근한 반응’과 그에 따른 실적 하락

잘 나가던 애플과 엔비디아는 최근 들어 동반 부진을 겪고 있다. 애플이 지난해 말 선보인 차세대 아이폰 XS 시리즈는 비싸기만 하고 혁신은 없었다는 혹평을 받으며 예전처럼 기록적인 판매량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 이는 당연히 애플의 실적 전망에 악영향을 끼쳤고, 그에 대한 우려는 주가 하락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220달러 선에 달했던 애플의 주가는 올해 1월 초 기준으로 15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이는 충성도가 높은 애플 제품 사용자들이 가격 상승에도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라는 팀 쿡 CEO와 애플 수뇌진의 자신감이 보기 좋게 빗나가고, 천하의 애플이라도 더는 혁신이 없으면 언제든 고꾸라질 위험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엔비디아도 지난해 8월 차세대 튜링(Turing) 아키텍처와 이에 기반을 둔 ‘지포스 RTX 20시리즈’를 발표했다. 자사의 장기인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적용한 튜링 아키텍처는 그동안 전문가용 워크스테이션에서도 구현이 어려웠던 ‘실시간 레이트레이싱’ 같은 고급 그래픽 기술을 일반 개인용 PC에서 실현할 방법을 제시해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엔비디아는 자사가 현재 전 세계 외장형 그래픽카드 시장의 80%가량을 독점하고 있고, 경쟁사인 AMD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차세대 그래픽 기술을 먼저 선점해 우위를 이어가겠다는 계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포스 RTX 20시리즈는 정식 출시 이후 전전 세대인 ‘맥스웰’ 기반 지포스 900시리즈, 직전 세대인 ‘파스칼’ 기반 지포스 10시리즈만큼의 반향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엔비디아 그래픽카드의 핵심 수요층인 ‘게이머’들은 거의 2년 만에 등장한 차세대 그래픽카드에서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4K UHD(2160p) 게이밍 환경의 보편화를 기대했다. 그런데, 엔비디아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새로운 그래픽 기술만 강조하고 가격을 평균 30%가량 인상했으니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결국 애플처럼 비즈니스 전략만 우선하고 소비자를 헤아리지 않은 상황에서의 신제품 출시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엔비디아는 지포스 RTX 20시리즈의 부진을 비롯해 일부 RTX 20시리즈 그래픽카드 먹통 증상, 미·중 간 무역분쟁, 암호화폐 채굴 시장 하락세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실적 전망을 하향 조정했고, 그로 인해 주가도 반 토막 난 상황이다.

애플 아이폰 XS 시리즈(왼쪽)와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80 Ti 파운더스 에디션. / 애플, 엔비디아 제공
애플 아이폰 XS 시리즈(왼쪽)와 엔비디아 지포스 RTX 2080 Ti 파운더스 에디션. / 애플, 엔비디아 제공
◇ 상황 타개를 위한 저가형 제품의 조기 출시

상황을 타개하려는 움직임도 애플과 엔비디아는 닮은 꼴이다. 애플의 경우 신형 아이폰 XS 시리즈에 전에 없던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면서 판매를 독려하는 동시에 새로운 실속형 저가형 제품인 ‘아이폰 SE2(가칭)’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역시 신형 지포스 그래픽카드 가격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인 실시간 레이트레이싱 및 DLSS 등의 기술을 뺀 튜링 아키텍처 기반 염가형(?) 그래픽카드 ‘지포스 GTX 1660’, ‘1650’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이러한 염가형 라인업은 언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초기 부진 만회를 위해 애초 계획 보다 서둘러서 출시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하지만 이미 싸늘해진 소비자들의 맘을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각각 스마트폰 시장 매출 1위, 외장형 그래픽카드 시장 점유율 1위를 오랜 시간 고수하며 오만해진 애플과 엔비디아에 대해 소비자들도 더는 휘둘리지만은 않겠다는 모양새다. 과연 닮은꼴인 두 회사가 2019년 초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