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대표이사직으로 선임하기로 한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미국계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양사 주식을 보유 중인 엘리엇은 주당 2만원대의 고배당을 요구하고 각사에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등 압박에 나섰다.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 현대자동차 제공
서울 양재동 현대차 본사. / 현대자동차 제공
26일 현대차 등에 따르면 엘리엇이 다음달 22일 예정된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후보 5명(현대차 3명, 현대모비스 2명)을 추천하고 주당 2만원대의 배당을 요구했다. 현대차에는 기말배당으로 보통주 1주당 2만1976원(총 4조5000억원)의 배당을 제안했다. 현대모비스에는 보통주 1주당 2만6399원, 우선주 1주당 2만6449원 등 총 2조5000억원의 배당을 요구했다.

현대차는 즉각 참고자료를 내고 반박에 나섰다. 현대차에 따르면 주당 2만원을 상회하는 배당안건은 현 시점에서 회사의 투자 확대 필요성 등을 감안하지 않은 안건으로 반대한다는 설명을 내놨다. 엘리엇이 요구하는 배당 총액이 약 4조5000억원으로, 대규모 현금유출이 중장기적으로 기업 및 주주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우선주 배당금까지 고려할 경우 배당 총액이 약 5조8000억원으로 증가,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큰 폭으로 넘어설 것이라고 회사측은 강조했다.

현대모비스 역시 엘리엇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주 배당으로 2조5000억원의 현금이 유출될 경우 주주에게 기업이익을 환원하는 게 아니라 기업가치와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크다는 것. 또 회사는 자동차 부품 공급망 안전을 위해 약 3조5000억원의 안전현금 보유가 필수적이고, 미래차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3년간 4조원 이상의 투자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고배당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로 꼽았다.

이날 현대차는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1주당 기말배당 3000원을 주주총회 목적 사항으로 상정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지난해 중간배당 1000원을 포함하면 보통주 1주당 총 4000원의 배당이 이뤄진다. 현대모비스 역시 이날 이사회에서 지난해 주당 3500원이었던 배당금을 4000원으로 상향 조정하기로 의결했다. 양사는 주주들에게 이사회가 결정한 배당금액을 지지해줄 것을 촉구하고 나선 상황이다.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에 공개적으로 고배당 압박을 가한 건 이번이 네 번째다. 2018년 4월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 주주자격으로 배당금 지급 정책을 순이익 기준 40~50%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같은 해 9월과 11월에도 주주 배당 확대를 촉구했다. 이 같은 압박은 엘리엇이 투자 수익구조 개선과 함께 현대차 지배구조 변경을 저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업계에선 분석했다. 같은해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 처리를 위한 주주총회를 예고했으나 엘리엇 등의 반대로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속 가능한 성장기반 수립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가 궁극적으로 주주가치 제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엘리엇이 추천한)사외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건은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요소가 인정될 여지는 있으나, 각 후보자들의 경력 전문성이 특정 산업에 치우쳐 있고 이해 상충 등의 우려가 있어 반대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