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정 이슈로 촉발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간 대립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로 번졌다. 과방위는 여기에 KT청문회 개최 여부를 둘러싼 대립 여파로 주요 법안 논의마저 순연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는 모습을 보인다.

14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 류은주 기자
14일 국회 본관에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 류은주 기자
국회 과방위는 21일 오전 법안소위를 열고 쟁점 법안을 협의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전날 여야 간사간 합의가 불발돼며 예정됐던 법안 1소위(과학기술원자력법안), 2소위(정보방송통신법안) 모두 취소됐다.

KT청문회 일정 역시 확정하지 못했다. 14일 전체회의에서 4월 4일 KT청문회를 열겠다고 합의했지만, 6일 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22일 예정된 법안 2소위에서 다뤄질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논의 역시 연기됐다. 합산규제는 유료방송 사업자 시장 점유율이 3분의1(33.3%)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규제다. 업계의 인수합병(M&A)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안건이다.

과방위는 2월 14일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한국당 보이콧에 따라 2월 25일로 일정을 변경했다. 이어 국회 파행으로 3월 22일로 일정을 재합의 했지만, 이마저도 재차 순연됐다.

◇ 한국당 "민주당 측이 합의 깨고 무리하게 요구했다"

한국당 측은 민주당이 이전 합의를 어기고 무리한 요구를 했기 때문에 법안소위 개최를 취소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국당 과방위 관계자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설치법은 당론이 정해지지 않아 차후에 논의하기로 합의했다"며 "그래놓고 논란이 있는 또 다른 쟁점 법안(이철희 의원의 원자력안전법)을 제출했기에 수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법안 2소위 역시 갑자기 당초 합의와 달리 ‘합산규제 논의 이후에 KT청문회를 하는게 맞지 않다’며 청문회 이후 논의하자고 요구해 왔다"며 "우리는 2소위에서 합산규제를 우선 순위에 두고 나머지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자고 했지만, 민주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법안소위는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 2시간 동안 열리는 회의인데, 이 시간 동안 민주당이 요구한 7개의 법안 모두를 논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며 "법안 소위 연기하니 지난 합의 사항을 모두 연기하자고 한 것인데, 야당이 KT청문회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라고 강조했다.

◇ 민주당 "한국당의 KT청문회 무산 위한 억지 논리"

하지만 민주당 측 입장은 한국당의 주장과 전혀 다르다. 민주당은 한국당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며 비판을 했다.

노웅래 과방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KT화재 관련 청문회 개최에 동의하고 있다. / 국회인터넷의사중계 갈무리
노웅래 과방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KT화재 관련 청문회 개최에 동의하고 있다. / 국회인터넷의사중계 갈무리
과방위 여당 위원 일동은 21일 오전 ‘한국당, KT청문회 무산 시도 즉각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냈다.

성명서에 따르면 여당은 "KT가 청문회를 무산시키려고 국회를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KT 채용비리 의혹이 김성태 전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황교안 당대표로까지 번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저의가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법안 소위 운영에 대해서도 한국당이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원안위설치법 논의를 거부하면서 결격사유가 드러난 자기당 추천 원안위원들의 임명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여당 측은 "법 개정 후 한국당 추천 원안위원의 결격사유가 해소된다"며 "법 개정 논의를 가로막는 것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위해 원자력 전문가를 배격한다는 식의 거짓 프레임을 씌우는데, 이는 불순한 의도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이 쟁점이 없는 법안만 다루자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원안위설치법 개정안을 다룰 수 없다는 한국당의 입장을 받아들여 원안위 소관 법안 5건만 심사하기로 합의했지만, 한국당은 이마저 1개 법안에 이견이 있다며 뒤늦게 4건만 다루자고 해 합의가 깨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민주당 과방위 관계자는 "법안 소위랑 청문회는 별개의 문제인데, 같이 엮어서 취소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간사 간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 여야 싸움에 KT, 딜라이브만 발동동

국회 과방위의 파행에 합산규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KT와 딜라이브의 속이 타들어간다.

KT는 케이블TV 사업자인 딜라이브 인수를 추진할 생각이 있다. 하지만 합산규제 도입 가능 여부에 따라 인수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어 미지근한 반응을 이어가고 있다. KT스카이라이프 역시 합산규제의 향방을 지켜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인수합병(M&A) 이슈가 얽혀있는 딜라이브 역시 사정은 매한가지다. 딜라이브는 7월 채권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합산규제 논의가 더 시급히 매듭지어져야 한다. 인수를 당하든 아니면 독자생존을 하든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유료방송 업계 한 관계자는 "정치적인 이해로 기업과 관련한 중요 현안 논의가 계속 늦춰지는 것은 착잡한 일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