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한 지 벌써 두 달이 조금 지났습니다. 업무를 해보니 정말 힘들면서도 보람도 있고 재밌습니다. 신청 기업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모두 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갖고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으셨던 만큼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진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인터넷제도혁신과 과장은 21일 경기 과천시 정부 과천청사에서 IT조선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규제 샌드박스를 담당하고 있는 과기정통부 인터넷제도혁신과를 이끄는 인물이다.

이진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 / 류은주 기자
이진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 / 류은주 기자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유예시켜주는 제도를 말한다. 신기술‧서비스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저해되지 않을 경우 기존 법령이나 규제에도 불구하고, 실증(실증특례) 또는 시장출시(임시허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 발로 뛰는 규제 샌드박스 실무진

1998년 정보통신부(현 과기정통부)로 입사해 20년 넘게 공직에 몸담은 그는 ITC 관련 업무만 줄곧 맡아왔다. 2018년 초까지는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실에서 일하다 최근 과기정통부로 돌아와 실무를 맡고 있다.

그는 2018년 9월 규제 샌드박스 관련 4개 법(정보통신융합법·산업융합법·금융혁신법·지역특구법)이 통과된 이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터넷제도혁신과 사무실을 찾은 날도 규제 샌드박스를 담당하는 다른 직원들은 관련 부처와 협의를 하기 위해 세종시로 출장을 가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과장은 "통상 법이 통과되더라도 발효되는 데 6개월은 걸리지만 정부에서 속도감 있게 추진하며 4개월 만에 제도를 시행하게 됐다"며 "‘신청기업이 별로 없으면 어쩌지'했던 걱정과 달리 시행 첫날 부터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 샌드박스를 전담으로 맡은 사무관의 경우 다른 직원들이 도와줘도 설 연휴 당일 빼고 쉬는 날에도 나와 일을 할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다'며 "규제 샌드박스 인력 충원이 곧 예정돼 있어 기다리는 중이다"고 말했다.

◇ "O2O 분야 많다보니 기존 사업자들과 싸워야"

규제 샌드박스 업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장벽은 크게 두 가지다. 규제와 관련있는 부처, 그리고 새로운 사업에 영향을 받는 기존 사업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이다.

6일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열린 제2차 신기술 서비스 심의위원회 모습.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6일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열린 제2차 신기술 서비스 심의위원회 모습.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이 과장은 "(법) 규제라는 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시대에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만들어졌을 때는 나름의 논리와 이유가 다 있었기 때문에 어설프게 접근해서는 설득 자체가 어렵다"며 "관련 제도에 대해 공부도 많이 해야하고, 아직은 공무원들 분위기 상 규제를 전부 풀어주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최근에는 부처들이 많이 전향적으로 바뀌었다"며 "예전에는 ‘무조건 안된다'는 태도였다면 지금은 ‘얘기는 들어보자'로 누그러져 설득이 조금은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신기술·신사업으로 매출이나 수입에 영향을 받는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도 만만찮다. 카풀 서비스를 택시 업계가 반대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과장은 "새로운 사업자와 기존 사업자들의 입장을 듣고 중재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며 "최근 통과된 조인스오토의 온라인 폐차견적서비스도 통과되기 직전까지 폐차협회에서 철회 공문을 보내는 등의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근본적인 문제는 신기술·신산업에 온오프라인연계(O2O) 분야가 많다보니 그동안 공들여온 오프라인 시장에 신생업체가 가볍게 들어온다는 것에 기존 업체들의 반발이 있다는 것이다"며 "그나마 그동안 통과됐던 안건들 모두 처음에는 반대가 있었지만, 무조건적인 반대가 아니라 더디더라도 서로의 얘기를 들어주면서 풀어나갔다는 점에서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규제 샌드박스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나름 잘하고 있다"

그는 제 샌드박스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점도 강조했다.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제한된 선 안에서 혁신활동을 해보자는 차원에서 나온 제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진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 / 류은주 기자
이진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터넷제도혁신과장. / 류은주 기자
이 과장은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가야하는 것은 맞지만, 한국 법체계는 네거티브로 가기에 쉽지 않기 때문에 결국 중간 단계인 규제 샌드박스를 활용하게 된 것이다"며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동안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던 기업들, 특히 영세한 기업들이 사업을 시도할 수 있고, 시험할 수 있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정기간이 최장 4년이니 그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는 얘기를 하지만, 그 기간에 샌드박스가 길을 열어주고, 장벽이 됐던 제도나 규제를 푸는 데 목적이 있다"며 "일부만 바라보면 한계가 있는 제도지만, 불필요한 규제가 해소되는 사후관리로 이어진다면 상당히 의미 있는 제도다"고 말했다.

또 한국의 규제 샌드박스가 해외 여느 국가에서 시행된 것보다 여러 면에서 앞서간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과장은 "영국에서 제일 먼저 시작됐지만 핀테크 분야에만 특화됐으며, 여전히 핀테크 위주로 하고 있다"며 "한국은 영국의 제도를 차용했지만 전 산업 분야에 전면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규제 샌드박스 1호인 모바일 전자고지가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서비스란 점에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안건의 처리속도 역시 빠르다고 자부했다. 경기연구원이 2월 발표한 ‘규제 샌드박스 성공적 안착을 위한 제언’에 따르면 영국은 2016년 7월부터 2018년 7월까지 4차례에 걸쳐 89개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두 달 기준으로 5개씩 통과된 셈이다.

이 과장은 "왜 이렇게 처리가 더디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긴 하지만 처음 제도를 도입한 영국보다 안건의 처리 속도가 빠른 편이다"며 "두 달도 채 안 돼서 양 부처(과기정통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총 17개의 안건이 통과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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