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마다 CEO가 교체된 KT의 수난사가 이번에 막을 내릴까? 임기가 11개월 남은 황창규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을 주인공에 관심이 쏠린다.

KT는 2002년 민영화 됐지만, 그동안 CEO 인선 때마다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CEO 중 재임에 성공한 인물로는 남중수, 이석채 사장 등이 있지만, 이들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각종 비리에 연루됐다는 대내외적인 이슈에 휘말렸고, 결국 정부가 바뀐 후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KT CEO 자리가 정치권의 빚을 갚는 ‘보은’ 자리로 전략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하지만, 황창규 회장 이후 CEO는 현직 KT 출신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신임 CEO 선임과 관련한 정관 수정, 3단계에 걸친 검증 시스템 등을 통해 예전의 CEO 인선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황창규 KT 회장이 2월 25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에서 5G 이동통신으로 인한 산업변화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KT 제공
황창규 KT 회장이 2월 25일(현지 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9에서 5G 이동통신으로 인한 산업변화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KT 제공
◇ 5G 선도한 KT, 포스트 황창규 시대 준비 돌입

KT는 2018년 12월 31일 기준 총 40개의 관계사를 둔 ‘그룹’ 회사다. 2018년 연결 기준으로 매출 23조4601억원, 영업이익 1조2615억원, 당기순이익 7623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신용평가사의 회사채 및 기업 어음에 대한 평가에서 최우수등급(AAA, A1)을 받는 등 탄탄한 구조를 가졌다.

4월 3일 경쟁 이통사와 함께 세계 최초 5G 상용화의 타이틀을 가져왔고, 이통업체 중 가장 빨리 5G 5만 가입자를 확보하는 성과도 냈다. 1년 전인 2018년 2월에는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서 가장 먼저 5G 시범서비스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뽐내기도 했다. 세계 속의 KT로 발돋움하는 기초를 다졌다.

그동안 KT의 발목을 잡은 것은 ‘지배구조’ 였다. 8일 기준 KT 최대주주는 11.94%(3116만8363주)를 보유한 국민연금이며, 외국계 기업의 지분율이 높다. 다른 기업은 ‘총수 일가’가 있어 인사권 등을 휘두르지만, KT는 눈에 띄는 대주주가 없다 보니 CEO를 선임할 때 정치권 등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외풍으로 선임된 CEO는 부임 후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보은성 요구를 칼로 무자르듯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 들어주기도 난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한 관계자는 "과거 KT CEO 중 일부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인사 청탁 등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자주 봤다"라고 말했다.

◇ 확 바뀐 KT 정관, 이래도 외부 출신 CEO?

하지만 KT는 2018년 정관 개정을 통해 CEO 후보의 자격 부분에 기존 ‘경영 경험’ 대신 ‘기업 경영 경험’을 넣었다. 일반 정치인이나 공무원 출신 인사의 CEO 후보 절차를 더 까다롭게 했다. 이와 함께 내부 출신 인사의 CEO 등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CEO가 직접 사내이사를 대표로 선임하는 ‘복수 대표이사제’도 도입했다.

KT의 투명한 지배구조와 관련한 안내문. / KT 홈페이지 갈무리
KT의 투명한 지배구조와 관련한 안내문. / KT 홈페이지 갈무리
KT는 기존 ‘CEO추천위원회→주주총회’의 2단계 회장 선임 절차를 ‘지배구조위원회→회장후보심사위원회→이사회→주주총회’ 등 4단계로 강화했다. 지배구조위원회를 통해 내부의 경쟁력 있는 CEO 후보를 내세우기 위한 장치다. 바뀐 체계에서는 충분한 검증을 거친 KT 내부 인사의 회장 선임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KT 이사회는 12일 차기 회장 선임을 위한 공식 절차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이사회 내 지배구조위원회는 KT와 그룹 계열사에서 2년 이상 재직한 부사장(KT 직급기준) 이상을 대상으로 회장 후보자군을 찾는다. 이어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사외 회장 후보자군을 공모한다. 회장후보심사위원회는 이들 중에서 회장 후보를 선발하고, 이사회에서 이를 확정한다. 주주총회는 차기 회장을 최종 선임한다.

지배구조위원회는 정관 및 규정에 따라 사외이사 4명과 사내이사 1명으로 구성된다. 12일 발표된 지배구조위원으로는 김인회 사장과 이사회 간사인 박종욱 부사장이 있다. 지배구조위원회에 포함된 김 사장과 박 부사장은 사내 회장 후보자군에서 빠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동면·김인회 사장이 황창규 회장의 뒤를 이어 KT CEO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김 사장이 레이스에서 조기 이탈했다. 2018년 말까지 사내 이사에 이름을 올렸던 구현모 컨슈머&미디어부문장(사장)과 오성목 네트워크부문장(사장) 등도 후보군에 속한다.

외부 회장 후보군으로는 임헌문 전 KT 사장, KT 출신인 최도환 포스데이타 사장, 유영환 전 정보통신부 장관, 홍원표 삼성SDS 사장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과거처럼 정부 출신 고위 관료나 외부 인사가 유력 후보로 선정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줄을 잇는다.

고위 관료 출신 한 관계자는 "차기 KT CEO로 김인회 사장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상당히 많았지만, 스스로 지배구조위원으로 들어간 것은 KT 지배구조를 고려했을 때 의미하는 바가 크다"며 "황창규 회장을 잇는 CEO가 누가될 것인지 예상이 어렵지만, 이번에는 현직 KT 출신이 CEO가 되는 것이 그림이 좋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예전처럼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 인물들도 KT CEO 자리에 관심이 높겠지만, 분위기를 보면 과거와 다른 것으로 보인다"며 " 예전처럼 외부 인사가 KT CEO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