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경쟁적으로 협력사를 챙긴다. 너나 할 것 없이 상생 및 동반 성장을 부르짖는다. 협력사 쥐어짜기로 자사 이익만 높이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 2위이나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급변하는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두 회사는 기술력 있고 유망한 중소기업들의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메모리 반도체에 의존한 업계 체질을 개선하려 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 국내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장기적인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올해 첫 개최한 ‘비즈 기술 설명회’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지난 29일 올해 첫 개최한 ‘비즈 기술 설명회’에 참가한 업체 관계자들이 상담을 받고 있다. /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기술과 인프라 공유로 협력사 경쟁력 업그레이드

삼성전자는 지난 24일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다. 2030년까지 연구개발 및 시설 확충에 총 133조원을 투자하고 유망 팹리스(자체 제조 공장이 없는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지원을 강화한다는 것이 골자다.

팹리스 업체들을 주목한 것은 삼성전자가 앙산 기술 인프라 공유 계획이다. 삼성은 중소 펩리스 업체들이 자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 부문)를 통해 생산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다. 반도체 제품 개발과 디자인, 제조 과정에도 국내 중소 업체들과의 협력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이대로만 되면 팹리스업체들이 대만을 비롯한 해외 파운드리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과 어려움을 크게 해소하게 된다.

삼성의 상생 의지는 지난 29일에도 확인됐다. 첫 ‘비즈 기술 설명회’를 통해 반도체∙모바일∙가전 등의 분야 특허 총 1만2083건을 무료로 공개했다. 이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기술 이전 상담도 진행했다. 자사 협력사뿐 아니라 비거래 업체에게도 특허와 기술을 공유해 관련 산업 전체의 성장을 노린다.

◇SK하이닉스, 우수 협력업체와 반도체 제조 기술·장비 공동 개발

SK하이닉스도 같은날 국내 협력업체 디지털프론티어, 펨빅스, 에이스나노켐 3개사를 올해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했다. 반도체 테스트 장비, 장비 부품 코팅, 반도체 연마 소재 등과 관련된 기업이다. 향후 2년간 SK하이닉스가 기술과 금융, 경영 등 다방면에 걸쳐 지원한다.

SK하이닉스는 29일 협력사인 디지털프론티어, 에이스나노켐, 펨빅스 3개사를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했다.( 왼쪽부터 오성구 디지털프론티어 대표, 이석희 SK하이닉스 CEO, 이종훈 에이스나노켐 대표, 김옥률 펨빅스 대표) /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는 29일 협력사인 디지털프론티어, 에이스나노켐, 펨빅스 3개사를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했다.( 왼쪽부터 오성구 디지털프론티어 대표, 이석희 SK하이닉스 CEO, 이종훈 에이스나노켐 대표, 김옥률 펨빅스 대표) / SK하이닉스 제공
SK하이닉스는 2017년부터 매년 기술 잠재력이 높은 업체를 ‘기술혁신기업’을 선정, 지원했다. 반도체 관련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한다. 반도체 제조 전 공정 분야 기업만 대상이었지만 올해 후공정 분야로 확대했다.

특히 선정 업체가 개발한 제품이나 기술을 SK하이닉스 생산 라인을 통해 시범 적용 및 성능 평가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돋보인다. 세계적인 규모의 검증된 라인에서 테스트를 진행하면 더욱 정확하고 수준 높은 테스트 결과를 얻는다. ‘신뢰성’ 및 ‘안정성’이 중요한 반도체 관련 장비 및 제품의 품질과 완성도를 높이기가 유리하고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업계에 이보다 더 좋은 혜택은 흔치 않다.

개발 제품의 일정 물량을 SK하이닉스가 구매한다. 초기 판로 확보에 어려운 중소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 효과는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된 에이피티씨와 오로스테크놀로지는 전년 대비 매출이 각각 60%, 145% 성장했다. 2018년 선정 업체인 티이엠씨와 유비머트리얼즈, 미코는 SK하이닉스와 함께 공동 개발한 제품을 2020년 양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