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른 LG화학 vs 물러서지 않겠다는 SK이노베이션

최용석 기자
입력 2019.04.30 17:05 수정 2019.04.30 17:06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제소한 것은 표면상 특허와 영업비밀 보호이지만 자사 고급인력 유출과 관련해 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을 견제하겠다는 다목적용으로 보인다. 일격을 당한 SK이노베이션도 투명하게 인력을 채용했다고 밝혀 인재 영입과 관련한 소송으로 해석하는 눈치다. 그러면서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된 데 대한 유감을 표시함으로써 국익 논란으로 논쟁의 장을 옮겨가려는 의도도 언뜻 내비쳤다.

두 회사 소송전의 발단은 인력 유출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2017년부터 2년 동안 자사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대거 빼갔다고 주장했다. 특정 자동차 업체와 추진 중인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의 핵심인력들이 다수 포함했다고 밝혔다.

LG화학이 공개한 SK이노베이션 입사서류의 프로젝트 동료명 기입 사례. / LG화학 제공
LG화학은 나아가 SK이노베이션이 조직적으로 자사 인력과 함께 자사의 선행기술, 핵심 공정기술 등을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이직자들이 자사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여건에서 1900여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했다는 것.

2017년은 공교롭게도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를 새로운 육성산업으로 선정한 해다. 이후 폭스바겐을 비롯해 다수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와 전기차용 배터리 납품 계약을 맺었다. 이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미국 조지아주에 1조원을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는 중이다.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로선 기술력과 경쟁력을 단기간에 빠르게 끌어올릴 방법은 실무 능력을 갖춘 고급 경력자의 영입밖에 없다. 실제 핵심 인력을 대거 영입한 후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량은 2016년말 30GWh(기가와트시)에서 올해 1분기 430GWh로 약 14배 급증했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법무팀을 중심으로 LG화학이 소송을 걸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가 아닌 미국 법원에 직접 제소할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LG화학은 지난해부터 인재 유출 및 핵심 기술 유출이 의심되는 정황 자료를 꾸준히 모았다. 두 번의 내용 증명을 통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의 인재 빼가기가 계속되자 칼을 빼들었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소송을 미국에서 먼저 건 것은 목적인 단순히 인력과 기술 유출만이 아님을 시사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이다. SK이노베이션이 현지공장까지 지으면서 한참 공들이는 시장이기도 하다. LG화학이 미국 시장내 SK 행보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미국에서 승소할 경우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에서의 비슷한 소송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미국을 발판으로 세를 불리려는 후발주자를 견제하는 동시에 소송으로 인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번 소송을 활용한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LG화학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nternational Trade Commission, ITC)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셀, 배터리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금지를 요청했다. 5월 중 조사가 시작되면 내년 상반기에 예비판결, 하반기에 최종판결이 나온다. 미국 현지 공장 완공 이전에 부족한 공급 물량을 한국과 중국 등 공장에서 생산해 납품하려던 SK이노베이션의 전략에 차질이 생긴다.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소송 내용을 보면 LG화학이 상당히 오랜 기간 벼르고 있었다는 게 보인다"며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을 확실하게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담은 셈"이라고 말했다.

인력 유출 논란과 관련해 SK이노베이션은 "채용과정이 투명했으며 좋은 처우와 미래 발전 가능성을 본 당사자들의 의사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력이동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이슈를 외국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 우려를 표명했다. 주 수요처인 미국에서 피소된 것에 대해 적잖이 당황한 분위기가 읽힌다. 이를 두고 업계에는 "국익 훼손 논란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SK이노베이션은 정작 LG화학이 제기한 기술 유출 사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박하지 않았다. "LG화학이 제기한 이슈들을 명확하게 파악, 필요한 법적인 절차대로 확실하게 소명하겠다"고만 밝혔다.

두 회사의 싸움은 감정까지 얽혔다. 지리한 법정 공방과 장외 여론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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