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의 SK이노베이션 미국 법인 제소로 시작한 양사의 감정싸움이 치달았다. 상대편의 주장에 반박과 재반박을 반복하며 본격적인 법정 대결에 앞선 여론몰이에 나섰다. 업계는 그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을 두고 누적된 두 회사의 앙금이 이번 이슈로 재점화한 것으로 본다. 더욱이 두 회사는 차분히 법정대결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발끈하게 만드는 장외 여론전에 골몰했다. 갈등을 단기간에 해소하기 힘들 전망이다.

◇ ‘대규모 인력 흡수를 통한 급성장’ vs ‘자발적이고 정당한 이직’

발단은 LG화학의 대규모 인력 이탈이다. 2017년부터 2년 동안 총 76명의 직원이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했다. 그중에는 LG화학이 추진 중인 핵심 프로젝트 참가 인원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산업 규모를 봤을 때 적지 않은 수라는 것이 업계의 평이다.

공교롭게도 2017년부터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용 배터리 수주량은 급증했다. 2016년 말 배터리 수주 잔고는 30GWh에 불과했지만, 올해 1분기 기준 430GWh로 대폭 증가했다. 금액 기준으로는 약 50조원 규모다. 같은 기간 약 110조원 규모의 수주 잔고를 보유한 LG화학의 거의 절반에 달한다.

LG화학은 처음 소송 제기 사실을 공개한 지난달 30일 자료에서 "SK이노베이션이 핵심인력 채용과정에서 유출된 영업비밀 등을 2차전지 개발 및 수주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대규모 인력 유출과 SK이노베이션의 급성장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LG화학 제품이 탑재된 쉐보레 볼트의 배터리팩. / GM 제공
LG화학 제품이 탑재된 쉐보레 볼트의 배터리팩. / GM 제공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대해 지난달 30일과 이달 2일 두 차례에 걸쳐 ‘빼 오기 식’ 채용이 아니라 공개채용을 통한 정당한 채용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직원들은 일체의 사전 접촉 없이 자발적으로 자사의 공채에 지원해 입사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SK이노베이션은 "모든 경력직원의 이직 사유는 SK의 우수한 기업문화와 회사와 본인의 미래 성장 가능성이며, 경쟁사에서 온 직원들의 사유도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의 인력 관리와 대우에 허점이 있었으며, 그 핑계를 자사에게 돌리고 있다는 것을 돌려 말한 셈이다.

◇"핵심 기술유출 했다" vs "이미 아는 내용으로 필요없다"

LG화학은 이번 미국에서 소송을 건 이유로 1990년대 초부터 30여년간 개발해온 자사의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특히 연구개발 비용과 보유 특허 수에서 자사가 훨씬 앞서 있다고 강조했다.

LG화학은 자사의 지난해 기준 2차전지 부문 연구개발 비용만 3000억원을 넘는데, SK이노베이션은 석유화학 부분과 배터리 부분을 합쳐도 연구개발비가 2300억원 밖에 안된다고 밝혔다. 또 보유한 관련 특허에서도 올해 3월 말 기준 자사가 1만6685건인데, SK이노베이션은 10분의1 수준인 1135건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양사간 개발비 및 기술 격차를 SK이노베이션이 유출 인력과 핵심 기술, 영업 비밀로 극복했다는 주장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에 대해 "배터리 개발기술 및 생산방식이 다르고 핵심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경쟁사의 기술이나 영업비밀이 필요 없다"고 일축했다. 자사 역시 1996년부터 2차전지 기술을 개발해왔고, 독자적인 특허와 기술을 보유한 만큼 경쟁사 기술을 빼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자사와 LG화학의 2차전지가 핵심 소재와 제조 기술 등이 전혀 다른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국내에서 개발한 것을 사용하고, 리튬이온배터리 분리막(LiBS)도 업계에서 유일한 독자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생산 방식도 경쟁사는 전극을 쌓아 붙여 접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자사는 전극을 분리막과 번갈아가면서 쌓는 방식으로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직자들이 작성해 제출한 ‘참여 프로젝트 내용 및 참가자 목록’의 내용도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지원자들이 경력 소개를 위해 작성한 내용이라는 것.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다 알고 있는 기술이고, 적용할 데도 없어 모두 파기했다는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부지와 조감도 모습. /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부지와 조감도 모습. / SK이노베이션 제공
◇ "미국에서 해결하는게 당연" vs "국내에서 해결할 일"

SK이노베이션은 미국 현지에서 먼저 소송을 건 LG화학에 대해 "국내 이슈를 외국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이 우려된다"고 유감을 표했다. 국내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의미다. 한편으로 업체간 이슈를 ‘국익 문제’로 연결해 일을 키웠다는 지적도 받는다.

LG화학은 "자동차용 전지 사업은 미국 등 해외시장 비중이 월등히 높아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법적 대응도 미국에서 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며 맞대응했다. 떠오르는 미국 시장에서 SK이노베이션에 대해 명백한 견제 의도가 담겨있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양사 모두에게 최대의 시장으로 떠올랐다. LG화학은 이미 2010년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에 배터리 공장을 세웠다. 2013년부터 배터리를 양산해 GM 등 현지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도 미국 조지아 주에 약 1조원을 들여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이미 폭스바겐을 비롯해 다수의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 납품 계약을 맺었다. 사업을 키우고 있는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 영향력이 큰 미국 현지 소송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에서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LG화학 역시 미국에서 시작한 소송전을 국내에도 이어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양사는 지난 2011년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세라믹 코팅 분리막’ 제조 기술로 3년간 소송전을 치른 바 있다. 양사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만큼 이번에 벌어질 ‘2차 소송전’도 그에 못지 않은 장기전이 예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