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감사만 6번을 받는 등 여러 사태를 겪으며 학생들까지 위축이 됐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비전을 보여주기 보다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아 취임 후 한달 반 동안 굉장히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 해야하는 것은 요란한 비전 제시가 아닌 디지스트의 내실을 키우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동안의 휘청거림을 빨리 바로잡아 가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 총장은 17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출입기자단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국 총장은 차분하면서도 중간에 유머있는 농담을 건네는 등 격의없는 모습을 보였다.

보통 산하기관장은 취임후 3개월 동안 업무를 파악하고 경영계획서를 만드는 데 집중한다. 그 전에 기자들과 만남을 갖는 것은 빠른 행보다. DGIST 측은 국 총장이 업무 파악 전 기자들과 만나 인사를 하고 얼굴을 익히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경영계획서를 제출하는 하반기 기자간담회에서는 미래 비전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디지스트는 2018년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손상혁 전 총장의 직권남용, 연구비 부당집행 등의 혐의를 파악하고 강도높은 조사를 실시했다. 손 총장은 11월 사의를 표했다. 이후 신성철 전 총장(현 카이스트 총장)의 연구비 부당집행 문제까지 불거져 과기정통부가 신 총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 DGIST 제공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 DGIST 제공
국 총장은 4월 1일 제4대 디지스트 총장으로 선임됐고, 이후 한 달 반 만에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영 방안과 주요 현안 및 발전 방향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 손상혁 전 총장이 징계 요구를 받고 사임한 후 5개월쯤 디지스트의 수장 자리는 공백이었다.

국 총장은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부 교수 출신이다. 27년 가까이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14년부터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주변 지인의 권유로 디지스트 총장직에 지원했다.

국 총장은 "서울대 연구총장과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는 중 실제 연구 현장에서 어떻게 연구를 하고, 연구자를 어떻게 지원하고 격려해야 하는지 나름의 포부가 생겼다"며 "캘텍(캘리포니아 공대) UC샌디에이고와 같이 규모는 작지만 세계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대학의 모형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해외 기술이전 확대 및 우수 연구인력 확보 의지

2018년 집중된 감사의 경우 연구원과 교수 간 갈등이 발단이 됐다는 분석도 내놨다. 예산은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직종간 이를 나눠먹다 보니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국 총장은 "작게 주어진 파이를 나눠 먹으면 불화가 생기지만, 파이가 확장되면 그런 문제는 없다"며 "앞으로 디지스트는 10년간 확장하는 기관이라 생각하며, 대학생 수는 그대로 두더라고 대학원생과 교수, 연구원 수는 현재의 2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2019년 연구원을 밖에서 더 뛰어 다니게 할 생각이다"며 "기술 시장도 한국은 물론 실리콘밸리 등 해외로 더 넓혀 나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국 총장은 우수한 연구 인력확충에 대한 의지와 함께 환경적 어려움도 언급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우수한 소프트웨어 인력의 경우 기업에서 막대한 돈을 제시해 영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이 아닌 대구에 위치한 디지스트의 접근성도 우수 인력 확보의 걸림돌로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인재가 인도나 해외에 있다면 이들을 만나러 직접 가는 것도 고민 중이다"며 "인공지능 박사학위를 딴 사람의 몸값은 실리콘 밸리 기준으로 100만달러(12억원)에 달하는데, 소프트웨어 인력 문제는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우수한 연구인력 확보는 계속해서 고민할 문제다"며 "학생들한테도 소프트웨어 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디지스트는 대구경북 지역에 위치한 만큼 지자체와의 긴밀한 관계도 이어간다.

국 총장은 "이제는 대구사람이라 생각하고 대구에서 살고 있다"며 "파운드리 서비스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을 갖췄기 때문에 향후 인력이 더 보충된다면 대학이 파운드리 서비스를 해 지역 중소기업들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파운드리는 반도체 생산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어 "연구원들도 정부 사업 분야에서는 지자체 공무원들과 협업하고 있다"며 "권영진 대구시장이 한국뇌연구원에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고 연구원 확장에도 도움을 줬다"고 덧붙였다.

신성철 전 총장에 대한 질문에는 난감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답을 이어갔다.

국 총장은 "사실 (신 전 총장과)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절친하지는 않으며, 동창이라고 해서 감싸준다거나 그런 것은 없다"며 "이미 신 총장에게도 ‘동창이기 전에 공인이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고 말했다.

또 감사 결과에 대해서는 "신성철 전 총장건과 관련해 아직 누구를 징계하라는 결정이 나오지는 않았다"며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