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전체 업무량과 근무시간은 줄고 있는 추세지만 올해도 17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해 매우 안타깝습니다. 안전보건 역량을 높이고, 안전보건관리를 전담하는 채용인력을 증원해 우정사업본부가 사망사고 제로 조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강성주 우정사업본부장은 5일 서울 강남우체국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 관리 대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강 본부장은 "인건비 부담으로 우정사업은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당장은 집배원 인력 증원이 어렵다"며 "재정문제를 우선 개선해 노조와 약속한 집배원 2000명 증원이 현실화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2017년 8월 정부 주도로 출범한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은 2018년 10월 집배원 과로사를 막기 위한 권고안을 냈다. 2019~2020년 2년에 걸쳐 정규직 집배원 2000명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우본은 2019년 상반기 400명, 하반기 600명의 증원 계획을 세웠지만 2018년 말 국회에서 증원 예산 통과가 불발되면서 전면 백지화됐다.

5일 서울 강남우체국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 관리 대토론회’ 모습. / 우정사업본부 제공
5일 서울 강남우체국에서 열린 ‘산업안전보건 관리 대토론회’ 모습. / 우정사업본부 제공
토론회는 최근 집배원의 돌연사 등의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집배원의 건강과 산업안전보건을 위한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됐다. 산업안전보건 전문가와 전국우정노동조합,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공무원노동조합 관계자가 참석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교수는 집배원 자살 예방을 위한 게이트키퍼 프로그램이 실효성 있게 작동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시간 노동이 우울증상과 관련이 높다는 연구는 잘 알려진 사실이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노력이 중요하다"며 "사고 경험자, 신규 입사자 등 심리적 지지가 필요한 고위험군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를 위해 산업안전보건 전문가의 비중을 전체 직원의 1% 수준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2만명을 고용한 어떤 제조업체의 경우 안전보건 담당 직원이 200명쯤으로 1% 수준이다"라며 "우본은 이제 1명(간호사)을 채용했는데 갈길이 멀다. 유사업종에서 안전보건 담당 직원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보면 인력 증원은 설득력이 있는 얘기일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강 본부장은 "전체 1% 수준의 전문인력 채용은 가야하는 방향이 맞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본부·청·현업에 전담업무 수행자 증원을 추진하면서 관리감독자를 현장의 팀장급으로 선임하는 등 실효성 있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최문성 노무법인 유앤 팀장은 "안전보건관리자는 외부에 맡기기 보다 직접 선임하는 것이 실효적이다"라며 "집배안전, 재난, 안전보건, 직원건강 등 정책을 체계적, 일관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컨트롤타워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진하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장에서 근무하는 집배원이 실질적인 보건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근무시간 조정 등 업무 유연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2018년 뇌·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한 집배원은 7명에 달했다. 2019년은 5월까지 4명이 사망했다.

윤진하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타 공무원 대비 우본 공무원의 심혈관 질환 유병률은 2.9배로 나타났다"며 "과로와 스트레스가 원인이며 건강검진을 통해 수시로 관리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직종별로 살펴보면 보건관리를 실제로 받는 직원은 대체로 행정업무 등 실내 근무자다"라며 "현장직이 보건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정기적인 시간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 종사자 사망자 현황.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 종사자 사망자 현황. / 우정사업본부 제공
우정사업본부는 5월 산업안전보건 전문가(간호사)를 채용에 이어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지방우정청·우체국에도 산업안전보건 전담업무 수행자를 충원한다. 본부에는 산업안전관리 담당관(8명)을 신설하고, 청에는 전임 담당자(8명), 현업에서는 100인이상 총괄국(57명) 마다 수행자를 둘 계획이다.

집배원 등 우정사업 종사원이 건강검진을 조기에 수검하도록 하고 있으며, 정신 건강 관리를 위해 정신건강 증진·감정노동 보호계획을 3월부터 시행해오고 있다. 1월에는 한국원자력의학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집배원 등 4만명에 달하는 종사원이 방사선의학 특화 진료·검진·상담을 서비스를 받고 있으며, 자살예방 대응반도 운영 중이다.

한편 전국우정노동조합은 근로시간 감축을 수치화 한 우본의 결과물이 실제 현장과 동떨어진 것이라며 현장 인력 증원 및 투명한 노동시간 관리를 요청했다.

박육규 우정노조 사업대책국장은 "집배원뿐 아니라 창구 직원도 화장실에 가지 못해 건강 악화를 호소하고 있는데, 인력 보강이 시급한 현실이다"라며 "예산에 맞춰 초과수당을 지급할 것이 아니라 현장 상황에 맞춰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강 본부장은 "노동시간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고, 일부 지역에서 테스트 중이다"라며 "현재는 상급자가 사전에 근로시간을 지시하고, 초과근무 시간은 별도 인증하는 방식이지만 향후에는 별도 인증이 없더라도 초과근무 시간으로 간주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