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모든 사회적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과하다. 기업은 연구 개발과 새로운 트렌드를 쫓아가도록 몰입하게 도와줘야 한다. 기업가정신은 회사가 커지고 강해지도록 하는 것인데, 그 자체가 부도덕하다고 한다면 국가와 기업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겠느냐."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GIO(Global Investment Officer)가 5년 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해 기업 규제 관련 소신 발언을 했다. 그는 18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호텔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디지털 G2시대, 우리의 선택과 미래 경쟁력' 심포지엄 대담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등장한 그는 네이버 창업 배경과 경험담, 그리고 기업 경영 환경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네이버 제공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네이버 제공
◇ "네이버, 거대 대기업 사이에서 꿋꿋이 저항하는 다윗"

이날 이 GIO는 네이버를 창업한 이유로 ‘한글을 사용하는 검색 엔진이 필요하다는 사명감’을 꼽았다. 그는 네이버를 ‘99% 거대 기업에 끝까지 저항해 살아남은 다윗'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구글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이 로컬 시장도 점유한 것과 달리 한국 시장은 네이버가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해진 GIO는 "한글 기반 검색엔진이 한국에서 주된 플랫폼으로 이용되는 것은 데이터 주권을 지킨다는 차원에서 자부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네이버가 유럽 기업에 투자를 적극 이어가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했다. 유럽도 미국계 인터넷 기업 몇 군데가 인터넷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는 "네이버가 만든 유럽 펀드 이름이 코렐리아캐피탈인데, 영화 ‘스타워즈’에서 연합군 베이스캠프 이름에서 따온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글 등이 점령한) 인터넷 제국주의 시기에 연합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유럽과 잘 협력해 인터넷 시장 다양성을 지켜나가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이버가 국내 인터넷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이 GIO는 "인터넷에서 네이버 비판하는 글도 많이 보고 있다"며 "앞에서 대놓고 자기는 구글만 쓴다고 하는 이들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글은 구글대로 장점이 있고, 네이버도 네이버대로 기능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 시장엔 다양한 검색 엔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각자 자국 언어 기반 검색엔진이 있어야 그 나라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에는 구글뿐 아니라 네이버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18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심포지엄 대담에 참석한 모습./ 네이버 제공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18일 서울 중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심포지엄 대담에 참석한 모습./ 네이버 제공
◇ "나 은둔자 아냐"
이날 이 GIO는 네이버와 자신을 둘러싼 이야기에 자신의 생각을 소탈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 GIO는 자신에게 붙은 ‘은둔자'라는 별명에 "왜 은둔자라고 붙었는지 모르겠다"며 "남들하고 똑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근하는데 이상하게 저에게만 이상한 별명이 붙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도 자신을 못 알아본다며 "네이버에 저랑 비슷하게 생긴 개발자들이 워낙 많다"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네이버를 경영하며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묻는 질문에 이 GIO는 2011년 일본 현지에서 대지진을 겪었던 때를 꼽았다.

일본 시장 진출 이후 아직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못한 때라, 사업부서를 철수하면 다시 기반을 쌓아올릴 수 있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여진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곳에 직원들을 남아있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이 GIO는 "결정을 내리기 너무 힘들어 사무실에서 혼자 펑펑 울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결국 직원들에게 각자 판단하라고 했고, 반은 한국으로 돌아갔으며 반은 남았다"며 "남은 직원들이 만든게 지금의 라인이다"라고 설명했다.

네이버는 그렇게 15년 간 꾸준히 일본 라인에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글로벌 메신저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 GIO는 네이버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한 발 뒤로 물러서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기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자회사들이 속속 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이 GIO는 네이버 향후 목표를 묻는 질문에 ‘네이버가 잊혀지는 것’라고 답했다. 그는 라인과 네이버웹툰을 언급하며 "네이버가 만들어낸 자회사가 네이버보다 크게 성장해, 그 회사들을 언급할 때 ‘작은’ 네이버에서 출발했었다고 기억에 남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