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는 ‘춘추전국시대’다. 우리 정부도 제2벤처붐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피땀어린 노력으로 창업한 이들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기업)으로 도약을 준비하고 글로벌 시장을 평정하기 위해 오늘도 노력한다. IT조선은 글로벌 유니콘을 꿈꾸며 날개를 펼치는 기업을 집중 탐구한다. [편집자주]

7월 29일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쿠엔즈버킷(QUEENS Bucket) 참기름 공장 1층에 들어섰다. 전통시장 참기름 방앗간에서 맡았던 진득하게 고소한 향기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기름 냄새는 잔잔하게 풍겨왔다.

쿠엔즈버킷은 프리미엄 참기름과 들기름을 내걸고 2012년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참기름과 들기름 판매로만 2018년 한 해 매출액 1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초 스파크랩스와 기술보증기금, KDB인프라 등으로부터 총 20억원 규모 시리즈A 투자도 유치했다. 국내 주요 백화점을 포함해 미국 미슐랭 레스토랑과 싱가포르와 홍콩 등지 프리미엄 매장에 납품한다.

쿠엔즈버킷의 쿠엔즈(QUEENS)는 ‘Qualified Unaltered food Enables Eco Nutrition Saver’의 약자다. 질좋으면서도 자연 그대로의 식품으로 환경과 영양을 지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알파벳 약자에 담은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퀸즈가 아닌 쿠엔즈로 읽는다. 그런 식품이 소비자 장바구니(Bucket)에 담기도록 하겠다는 포부도 포함됐다.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는 "기존 방앗간 참기름은 고온으로 깨를 볶다보니 화학 작용이 일어나 향이 더 진해진다"고 설명했다.

높은 열로 깨를 볶으면 탄화하면서 보존성은 높아지고 향이 진해진다. 짜낼 수 있는 기름 양도 많아진다. 참깨 한 말에 기름 6~7병이 나온다. 깨가 귀하던 시절에는 한 병이라도 더 많이 나오는 착유 방식을 선호했다. 국내서 판매되는 참기름 제조 기계는 거의 대부분 고온에서 볶는 방식을 쓰는 이유다.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
박정용 쿠엔즈버킷 대표
◇ "낮은 온도로 볶아야 좋은 성분이 그대로"

진한 향은 참기름 제조 공정 과정에 참깨가 아닌 다른 깨나 값싼 수입산 참깨를 넣어도 쉽게 티가 안 나도록 한다. 전통시장에서는 흔히 참기름 방앗간 옆에 서서 기름 짜는 것을 지켜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참깨를 들고 가도 중간에 빼돌리고 다른 질 낮은 참깨를 넣고 볶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언제 짠 기름인지도 모른 채 구매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벤조피렌 같은 유해 물질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저온에서 볶으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짜낼 수 있는 기름 양도 적다. 다만 참깨가 가진 건강한 성분은 그대로 남아있다. 박 대표가 저온 방식으로 볶은 참기름을 아이디어로 2012년 창업에 나선 이유기도 하다.

박 대표는 "참기름 시장은 철저하게 공급자 중심으로 구성됐다"며 "소비자가 제대로 된 참기름을 만드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옆에서 짜는 걸 지켜보는 것 밖엔 없다는 현실에서 착안해 시작한 사업이다"라고 말했다.

저온 추출 방식은 갓 짜낸 기름에 떠다니는 부유물과 짜는 과정에서 남은 부산물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 부산물은 현재 가축 사료용으로 쓰인다. 박 대표는 "어느 한 쪽 이해관계로 발생했던 불편함을 해소하니 유해물질도 줄고 자연친화적인 기름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쿠엔즈버킷의 2층 기름 공정
쿠엔즈버킷의 2층 기름 공정
◇건물 전체가 공장, 참깨 세척부터 착유까지

쿠엔즈버킷은 올해 4월 동대문에 도심형 방앗간을 만들었다. 총 5층 규모로, 건물 전체가 공장이다. 소비자가 직접 참기름 제조 공정을 보고 갓 짜낸 기름을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했다. 일본과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하루 최대 20팀 정도 관광객이 방문한다.

1층과 지하 1층은 카페다. 지하 2층은 참깨를 보관하는 창고로 쓰고 있다. 리프트에 참깨를 싣고 3층으로 올리면서 참기름 제조 작업은 시작된다. 각 층은 리프트와 함께, 각종 재료를 실어 올릴 파이프로 연결됐다. 3층부터 2층까지의 공정은 참깨를 씻고, 저온으로 볶아 착유 작업을 거친 뒤, 필요한 물질만 걸러 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저온으로 볶다보니 4시간이나 걸린다.

저온 공정 과정은 박 대표가 직접 만들었다. 실제로 동대문 방앗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박 대표 설명에 따르면 대형 공장으로 만드려다보니 화학적 용매 사용이나 추출과정이 쉽지 않았다. 공장을 작게 만들되, 전문화된 시스템으로 제공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하 2층 창고도 당장 볶기 직전의 참깨만 소량 보관하고 있다.

마침 2층에서 갓 나온, 필터링이 안된 참기름을 맛볼 수 있었다. 박 대표는 크루드 오일(Crude Oil)이라고 불렀다. 고온으로 추출한 참기름 속 부유물은 새카맣게 타버려 걸러내야 한다. 반면 저온 추출 방식 참기름 부유물은 먹을 수 있다. 미숫가루 색의 따뜻한 크루드오일에선 땅콩버터 맛이 났다. 쿠엔즈버킷은 이 부유물을 따로 걸러 방문객들이 쿠키와 빵을 만들 수 있도록 4층 부엌을 체험형 공간으로 만들었다.

쿠엔즈버킷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크루드오일.
쿠엔즈버킷 공정 과정에서 나오는 크루드오일.
◇ 흔한 참기름으로 대박…"예상 못했다"

식품 업계에서 잔뼈가 굵었던 그도 창업 초반 어려움을 피할 순 없었다. 흔한 참기름을 아이템으로 내건 탓이다. 초반에는 투자자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소비자 인식을 바꾸는 것도 관건이었다. 소비자에게 여전히 참기름은 프리미엄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존 참기름 특유의 강한 향을 선호하는 소비자도 여전히 많다.

박 대표는 "인공지능 같은 첨단 IT 기술도 아닌 모두가 아는 참기름을 창업 아이템으로 내건 탓에 처음엔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다"며 "소비자에게도 프리미엄 참기름이 가진 장점을 내세우지만 사업 초반에는 코에서 나는 개기름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해외에서는 반응이 좋았다. 해외 시장에서 쿠엔즈버킷 프리미엄 참기름이 성공한 이유는 한국 소비자처럼 참기름에 편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재료 향까지 덮는 강렬한 참기름에 익숙한 한국과 달리, 여러 재료와 한데 섞여 본연의 맛을 살려주는 올리브 오일에 익숙해서다.

박대표는 한국에서도 점차 참깨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참기름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쿠엔즈버킷은 전라북도 익산, 서울 동대문에서 공장을 운영한다. 해외 시장 공략에도 더 박차를 가한다. 현재 진출한 국가 외에 다른 곳으로도 시야를 넓히고 있다. 미국 유기농 식료품 체인인 홀푸드 마켓에 입점도 앞뒀다.

박 대표는 "식품은 사람 입으로 들어가 에너지가 된다"며 "식품이라면 최소한 갖춰야 하는 기준을 충족한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안전함과 기쁨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