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타 맞아 기로에 선 바이오산업계

거침없이 성장할 듯 보였던 바이오산업 성장에 ‘우선멈춤' 신호등이 커졌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부터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품목 허가 취소, 한미약품 기술수출 무효에 이어 신라젠 임상 3상 전면 중단 등 부정적 이슈가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바이오헬스케어산업계 숙원인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첨단바이오법)’이 국회 본회의서 통과됐다. 바이오산업계가 ‘직진' 신호를 받을지, ‘유턴’ 신호를 받을 지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다.

5일 바이오 관련 업계에서는 잇따른 악재로 인해 국내 바이오신약 개발 능력 의구심은 물론 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바이오업계에 모럴헤저드가 만연한 듯한 모양새를 풍긴 것은 가장 시급히 해결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 픽사베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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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 3상 중단 전 자사주 매도…문은상 대표 "펙사벡 임상 결과 알지 못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품목 허가 취소 등이 그 사례다. 여기에 차세대 항암제로 기대를 모았던 ‘펙사벡’ 임상 3상이 전면 중단되면서 바이오업계 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신라젠은 지난 1일 데이터 모니터링 위원회(DMC)와 펙사벡 간암 대상 임상 3상 시험 무용성 평가 미팅서 임상중단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문제는 펙사벡 임상 3상 중단 전 신라젠 주요 임직원이 자사주를 매도했다는 점이다. 임상 실패를 미리 알고 주식을 매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근거다.

문은상 신라젠 대표는 지난해 자사주 156만주(1300억원 규모)를 팔았다. 신현필 신라젠 전무는 임상 3상 중단이 알려지기 불과 한 달 전 4차례에 걸쳐 보통주 16만 7777주를 장내 매도했다. 문 대표는 이에 대해 4일 여의도에서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무용성 평가 결과 유출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글로벌 임상 3상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회사는 임상에 전혀 개입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데이터를 알려고 시도하는 것조차 발각되면 모든 데이터가 무효화된다"며 "지난 주 금요일(1일) 새벽 1시께 무용성평가 결과를 통보받았고, 장 시작 전 공시해 추가적인 주주 피해를 막았다"고 덧붙였다.

문 대표는 추가 주식 매입 계획을 밝히면서 주주 달래기에 나섰다. 그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회사를 빨리 안정시키기 위해 자금을 추가로 빌려와 주식을 매입하겠다"며 "절대로 먼저 발 빼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고 강조했다.

◇신뢰 해결 못하면 결국 추락

이번 사태를 두고 바이오산업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일각에선 첨단바이오법에 희망을 걸지만, 신뢰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법 통과도 ‘말짱 도루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신뢰를 회복해야 바이오 산업이 활기를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이미 펙사벡 글로벌 임상 3상 성공 가능성을 낮게 점친 전문가가 여럿 있었다"며 "(신라젠은) 시장 신뢰를 잃어 다른 임상을 진행하더라도 악영향이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라젠은 신장암과 대장암 대상 펙사백과 면역항암제를 함께 투여하는 병용요법 임상을 지속할 계획이다. 글로벌 임상 3상에 쓰려던 잔여 예산을 면역항암제 병용 임상 및 술전요법에 투입한다는 전략이다. 우수한 임상 데이터를 확보할 경우 기술 수출이 가능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문 대표는 "신장암, 대장암 등 여러 암을 생각할 때 상업화 성공 가능성은 글로벌하게 상위 3위 안에 든다고 자신한다"며 "펙사벡 데이터를 단순히 믿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보고 판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옥석가리기 시작… 첨바법 통과에 "미래 밝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냐"

바이오주 옥석가리기를 시작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진홍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제약바이오주 옥석가리기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며 "올 하반기 임상 결과 발표가 잇따라 예정된 만큼 결과가 성공적으로 나타나면 불안감을 어느 정도 상쇄하면서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3년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첨단바이오법이 악재가 잇따랐던 바이오업계에 얼마간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법 통과로 첨단바이오의약품 전주기 관리가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안전관리 체계화와 인허가 관련 규제 또한 해소됐다. 여러 악재로 침체됐던 업계에 활력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다.

첨단바이오법은 재생의료에 관한 임상연구를 활성화하고 신약 출시 속도를 단축하는 것이 골자다. 줄기세포주와 유전자 관련주가 첨단바이오법 통과로 수혜를 볼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규제 문제로 그림자처럼 제자리를 지키기만 하던 줄기세포 및 유전자 관련 업체들의 신약 개발이 월등히 빨라질 수 있다.

다만 첨단바이오법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제약·바이오 산업이 신뢰도 하락을 반전시키려면 실질적인 신약 개발과 같은 획기적인 발표가 있어야 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수출과 같이 큰 이슈에도 최근 투자자들이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며 "가시적 성과가 있는 치료제가 나와야 하는데 그때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