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이 또 한 번 노트북 시장의 ‘표준’을 만든다.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CES 2019에서 처음 언급하고, 아시아 최대 ICT 전시회인 컴퓨텍스 2019에서 본격적인 실체를 공개한 ‘아테나 프로젝트(Project Athena)’가 그 주인공이다. 과거 ‘센트리노(Centrino)’와 ‘울트라북(UltraBook)’에 이은 세 번째의 표준 제시다.

아테나 프로젝트의 기본적인 목적은 이전 ‘센트리노’와 ‘울트라북’과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에게 명확한 ‘선택의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증 로고가 붙은 제품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과 기능을 가진 제품이라는 것을 인텔이 보증함으로써 선택의 고민을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인텔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 노트북에 부착되는 ‘모바일 성능을 위한 엔지니어링(Engineered for Mobile Performance)’ 스티커. / 인텔 제공
인텔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 노트북에 부착되는 ‘모바일 성능을 위한 엔지니어링(Engineered for Mobile Performance)’ 스티커. / 인텔 제공
요즘 노트북을 구매하는 대다수 20대~30대 소비자들은 하드웨어 사양 등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낮은 편이다. 하드웨어보다는 디자인, 브랜드, 주요 기능, 사용자 경험 등을 더 중시한다. 아테나 프로젝트가 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즉시 이해하기 힘든 하드웨어 사양을 나열하는 대신, ‘이 노트북은 검증된 성능과 기능, 편의성을 모두 갖춘 제품’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2003년 등장한 ‘센트리노’ 인증은 인텔의 CPU와 칩셋, 와이파이(Wi-Fi, 무선랜) 어댑터를 갖춘 노트북에 붙는 인증이었다. 당시에는 모든 노트북이 와이파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사용자가 외장 카드 형태의 와이파이 어댑터를 따로 구매해야만 무선 인터넷이 가능했다. 센트리노 인증은 ‘구매하자마자 바로 무선 인터넷이 가능한 노트북’을 알리는 보증수표였다.

2011년 등장한 ‘울트라북’ 인증은 이동성에 중점을 뒀다. 저전력 프로세서를 사용해 배터리 사용 시간을 늘리고, 노트북의 두께와 무게를 줄여 이동성을 극대화한 것이 핵심이다. ‘울트라북’ 인증을 받은 제품은 ‘얇고 가벼우며 실외에서 오래 쓰는 노트북’이라는 콘셉트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인텔 아테나 프로젝트의 인포그래픽. / 인텔 제공
인텔 아테나 프로젝트의 인포그래픽. / 인텔 제공
이번 아테나 프로젝트는 기존 센트리노, 울트라북 인증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있다. 다만 추구하는 목표는 좀 더 구체적이고 범위도 확대됐다. ‘연결성’과 ‘이동성’뿐 아니라 ‘생산성’, ‘사용 편의성’ 등 노트북 PC의 핵심 요소를 모두 다룬다.

기존에 제조사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성능 테스트에서는 객관적이고 규격화된 평가 기준이 없었다. 저화질 영상 재생, 화면 밝기를 절반 이하로 낮추기, 화면 해상도 낮추기, 무선랜 및 블루투스 끄기 등 꼼수를 통해 점수를 높이는 방법이 비일비재했다. 실제 구매 후 사용 성능이 광고나 제품 정보와는 다른 모습도 자주 보인다.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 과정은 인텔이 새롭게 만든 ‘핵심 경험 지표(Key Experience Indicators, 이하 KEI)’를 기반으로 진행된다. 대다수 일반 사용자의 노트북 사용 환경과 패턴을 데이터를 통해 구체화, 정형화함으로써 객관적이고 현실에 가까운 평가 기준을 마련했다.

현재 공개한 아테나 프로젝트 1.0 사양은 ▲지문인식, 얼굴 인식 등으로 1초 안에 로그인 가능한 높은 반응성 ▲인텔 코어 i5 및 i7 이상의 프로세서와 8GB(기가바이트) 이상 메모리, 256GB 이상 고성능 NVMe SSD 및 옵테인 메모리 탑재를 통한 고성능 ▲동영상 재생 시 연속 16시간, 일반적인 사용 환경에서 9시간 이상 사용 가능한 긴 배터리 수명 ▲인공지능(AI) 가속 기능 및 AI 기반 인텔리전스 기능 제공 ▲인텔 와이파이 6(Wi-Fi 6 또는 Gig+)와 썬더볼트 3를 통한 유무선 연결성 ▲터치 디스플레이를 포함, 노트북과 태블릿의 경험을 모두 제공하는 2in1 디자인 등으로 구성됐다. 상당히 요구사항이 높은 편이다.

이를 실제 제품에 반영하면 커버를 열거나 전원 버튼을 누르는 즉시 윈도 바탕화면이 열리고, 4개 이상의 멀티 코어와 고속의 저장장치로 어떠한 작업이든 빠르고 쾌적하게 처리하는 성능을 갖춘 노트북이 나온다. 한 번 충전하면 전원 어댑터나 보조전원 없이 온종일 사용할 수 있다. 기가급 속도로 빨라진 무선 인터넷(와이파이)은 고화질 4K 영상도 끊김 없이 스트리밍으로 재생한다. 대용량 영화도 더욱 빠르게 다운받는다.

형태는 태블릿과 일반 노트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 상황에 맞춰 가장 편한 형태로 사용할 수 있다. AI스피커처럼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해 명령을 수행하거나, 안면인식, 제스처 인식, 사용패턴 분석 등 각종 AI 기반 기능을 지원한다.

인텔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을 받은 HP의 엘리트북(EliteBook) x360 830(왼쪽)과 델의 2019년형 XPS 13 2in1 노트북. / 각 제조사 제공
인텔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을 받은 HP의 엘리트북(EliteBook) x360 830(왼쪽)과 델의 2019년형 XPS 13 2in1 노트북. / 각 제조사 제공
결국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을 받은 제품은 ‘당대 최상급 2in1 노트북’을 의미한다. 컴퓨터에 대해 잘 몰라도 ‘최고로 좋은 노트북’을 구매하고 싶다면 아테나 인증 로고가 부착된 제품을 고르면 된다는 의미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아테나 프로젝트는 신제품을 개발하고 디자인하는 데 있어 좋은 기준이 된다. 뚜렷한 목표 없이 무작정 신기술과 최고 사양의 하드웨어를 도입하는 것은 혁신이 아닌 무모한 도전이다. ‘기준점’이 있어야 제품 포트폴리오의 기획과 전개가 편하고, 새로운 목표 설정과 그를 뛰어넘는 혁신도 가능하다.

KEI와 이에 기반한 아테나 프로젝트는 일시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더 좋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나오고, 그에 따른 소비자들의 요구 기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텔은 매년 KEI를 새롭게 설정하고, 제품 테스트 기준을 업데이트한다는 계획이다. 지금의 아테나 프로젝트에 ‘1.0’이라는 버전 명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아테나 프로젝트 1.0 기반 차세대 2in1 노트북은 올해 3분기 이후부터 인텔 8세대~10세대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선보일 전망이다. 최근 HP와 델이 첫 인증 제품을 각각 공개했다. 레노버, 에이서, 에이수스, 삼성전자 등 주요 PC 제조사들도 연말까지 아테나 프로젝트 인증 노트북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