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바이오 업계가 인재 확보로 돌파구를 찾는다. 상장 폐지와 임상 실패, 임원진 발빼기 의혹 등으로 인한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이참에 고급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미래에 대비하자는 움직임이다.

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과 GC녹십자, 한국콜마, 메디톡스 등 일부 바이오 기업은 신규·경력 인력 채용에 나섰다. 특히 신약개발 R&D(연구개발)쪽으로 채용 공고가 몰렸다.

제약바이오, 인재 확보 팔 걷어부쳐

바이오 업계는 끊임없는 악재에도 불구 위축보다는 인재 확보로 새로운 시장 성장 동력을 모색하려는 모습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한국 바이오산업 채용박람회에 참석하는 업체는 한미약품과 GC녹십자, 한국콜마, 메디톡스 등 99곳이다. 이 외에도 9월께 하반기 공채를 따로 계획하는 업체도 다수다.

가장 적극적으로 인재 확보에 나선 곳은 한미약품과 GC녹십자다. 2019년 상반기 184명을 채용한 한미약품은 올 하반기 바이오신약과 합성신약, 약리연구, 독성평가 등 신약 R&D 부문에서 인재 모시기에 나섰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이번에 신약 R&D 부문 채용을 대거 늘리는 이유에 대해선 말을 아끼면서도 "공식 채용은 9월 말부터 진행되며 부서별 수요가 있을 땐 탄력적으로 채용한다"고 말했다.

오는 2020년 혈액제제 ‘IVIG-SN’으로 미국시장 문을 두드릴 GC녹십자 행보도 눈여겨 볼만 하다. IVIG-SN은 면역계 질환 치료에 쓰이는 정맥 주사제다.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함유 농도에 따라 5%와 10% 제품으로 나뉜다. 미국 허가 신청 대상은 10% 제품이다.

증권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허가에 앞서 전략적으로 연구개발 생산성을 높이려는 행보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실제 GC녹십자는 면역진단과 유전체 분석과 관련해 R&D인력을 대거 채용할 계획이다. GC녹십자 관계자는 "R&D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인력을 대거 확보해왔다"며 "특히 올해 관련 인력을 조금 더 뽑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상장 폐지로 시장에서 몸살을 앓은 코오롱생명과학도 알음알음 경력직 채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코오롱생명과학이 R&D와 홍보 쪽으로 소수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 3상 승인에 사활을 거는 만큼, 노련한 인재를 영입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장은 채용 예정이 없다"며 부인했다.

깊어지는 바이오산업 인력난

제약바이오 업계가 인재확보에 적극 나서는 이유는 갈수록 인력난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리 인재를 확보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앞서 정부가 5월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 전략을 발표하며 그 핵심으로 인재를 꼽은 이유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국내 바이오산업 인력난은 2017년부터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진단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간한 ‘우리나라 산업기술인력 수급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기술 인력 부족률은 3.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12대 주력산업 중 개발자난으로 4.1%를 기록한 소프트웨어 분야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제약 바이오 산업에 인재가 부족한 것은 국내 바이오산업이 비교적 짧은 기간에 빠르게 성장한 탓이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양상을 보인 셈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대기업이 생산시설을 키우면서 대규모 수요가 발생했다"며 "지금부터 당장 3년 후인 2022년에는 8000명 가량, 2027년에는 2만명 가량이 부족할 전망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론 중심의 대학 교육과 산업 현장의 미스매치를 문제로 연결된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발달이 느리다 보니, 대학 교육이 이론 중심으로 흘러갔고 실제 쓸만한 인재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가 2018년 공개한 바이오의약산업 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31곳 중 39.5%는 직무수행을 위한 자질(학력, 자격 등)이 적합한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이어 30.2%가 인력의 잦은 퇴직이나 이직, 18.6%가 해당 직무의 전공자 공급 부족, 9.3%가 구직지원자 수가 적음 등으로 응답했다.

바이오의약산업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인력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경험있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 셈이다. 특히 대기업은 직무수행에 적합한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중소·벤처기업은 잦은 이직과 퇴직을 가장 큰 이유로 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인력난은 개발자 인력난에 시달리는 블록체인 등 일부 IT 산업과 궤를 함께 한다"며 "적합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찾지 못해 채용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요는 큰데 공급은 ‘경험 부족’으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