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백 KAIST 화학과 교수의 도발적 발언
일본산 포토레지스트 무조건 뛰어난 것 아냐
원천소재 기술 기업과 학계가 뛰놀 환경 조성부터
EUV 노광장비 구축에 정부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 대학교수가 아베 일본 총리가 포토레지스트와 같은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다시 막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 기업, 학계가 마음 먹고 연구개발에 매진하면 오히려 기술 자립을 빠르게 이룰 수 있다며 일본 정부 조치를 비꼰 도발적 발언이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학계가 원천 소재기술 확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의 파격적인 투자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김진백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 교수는 17일 IT조선 기자를 만나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우리 제조업체가 마음먹고 (개발에) 달려들면 포토레지스트 대체품을 금방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며 "(우리나라) 원천기술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아베 총리가 이 제품의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고 비꼬았다.

김진백 KAIST 화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9 화이트리스트 배제 대응 기술을 중심으로 한 KAIST 핵심 기술이전 설명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김진백 KAIST 화학과 교수가 1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9 화이트리스트 배제 대응 기술을 중심으로 한 KAIST 핵심 기술이전 설명회'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 이광영 기자
일본 정부는 7월 초 수출 규제 3개 품목에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를 포함했다. EUV 포토레지스트는 삼성전자의 차세대 먹거리인 파운드리 사업에 필요한 핵심소재다. 당시 이 소재를 생산할 수 있는 국내업체가 없어 삼성전자의 차세대 시스템 반도체 사업이 발목을 잡힐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일본은 규제 강화 한달 만인 8월 7일 EUV 포토레지스트에 대해서만 수출을 허가했다. 삼성전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를 계기로 소재 분야 기술 자립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학계에서도 원천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김 교수는 1975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해 1977년 카이스트 석사, 1985년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1980년까지 코오롱 선임연구원, 1988년까지 IBM 연구원, 1992년까지 LG화학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1992년부터 KAIST 교수를 역임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고분자화학 ▲고분자합성 ▲ArF 포토레지스트 ▲EUV 포토레지스트▲리소그래피 등이다.

그는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포토레지스트 기술 연구개발에만 35년의 시간을 쏟았다. 특히 그가 개발한 ‘고해상도 포토레지스트’는 2000년부터 20년쯤 연구해온 기술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존 일본에서 수입한 포지티브 타입 포토레지스트는 네거티브 타입 포토레지스트에 비해 해상도가 30% 떨어진다. 매트릭스 레진, 광산발생제, 염기성 물질 등이 혼합돼 있어 불균일한 포토레지스트막을 형성할 수 있다. 광선의 확산에 따른 해상도 저하 문제도 있다.

김 교수가 개발한 고해상도 포토레지스트는 네거티브 타입이다. 포지티브 포토레지스트 대비 해상도가 30% 높다. 단일 물질이기 때문에 균일한 포토레지스트막을 형성할 수 있다. 광선의 확산에 따른 해상도 저하 문제도 없으며, 노광기 렌즈의 오염 및 부피 축소에 따른 패턴 프로파일의 변형을 피할 수 있다.

해상도가 30% 높아지면 집적도가 4배쯤 늘어난다. 1GB 용량의 반도체칩이 4GB 용량으로 바뀔 수 있는 셈이다. 제품의 불량률을 높인 패턴 프로파일의 변형도 해상도의 향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이 기술은 불화아르곤(ArF), ArF 이머전, EUV 노광기를 이용한 고밀도 반도체 제조에 응용할 수 있다. 분자구조 디자인 과정을 거치는 등 최적화를 하면 EUV 포토레지스트에 적용 가능하다.

김 교수는 "고해상도 기술을 EUV에 적용할 경우 어느정도 향상할지에 대해 좀 더 연구가 필요하지만 기존 포토레지스트 적용 대비 성능 개선을 확신한다"며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기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천소재기술 확보에 힘을 받으려면 포토레지스트 기업과 학계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용 EUV 노광 장비를 나노종합기술원(나노팹)에도 도입하자는 것이다.

EUV 노광 장비는 네덜란드 장비회사 ASML이 독점 생산하며 한대 가격이 1500억~2000억원에 달한다. 나노팹은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R&D 지원 예산 450억원을 투입해 반도체 테스트베드를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EUV 노광 장비를 들이기엔 부족한 규모다.

김 교수는 "EUV 노광 장비를 나노팹에 마련해주면 대학의 연구활동은 물론 영세한 포토레지스트 기업의 제품 테스트가 용이해진다"며 "이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원천기술을 빠르게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