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동시에 케이블TV(SO) M&A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정부 심사 절차 과정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LG유플러스의 ‘인수’보다 SK텔레콤의 ‘합병’의 승인 절차가 더 까다롭다. 인수와 달리 합병 인가 시에는 방송의 지역성 검토 등 방송통신위원회 사전 동의 절차를 포함한다.

20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CJ헬로 지분 인수안 관련 심사보고서를 받으면서 승인을 눈앞에 뒀다. SK텔레콤이 신청한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간 합병 인가 심사작업도 진행 중이다.

LG유플러스는 인가 과정에서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 및 과기정통부의 최다액출자자 등 변경심사와 공익성심사만 받으면 된다. 반면 SK텔레콤은 방통위의 사전 동의를 추가로 받아야 한다. 인수와 합병 모두 경영권을 실질 지배하기 위한 도구지만, 결과적으로 LG유플러스만 심사시간과 일정 등 규제 리스크를 줄일수 있는 셈이다.

7월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방송통신기업 인수합병 토론회 모습. / 류은주 기자
7월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방송통신기업 인수합병 토론회 모습. / 류은주 기자
당초 인수(최다액출자자 변경)는 합병(케이블TV 변경허가)과 마찬가지로 허가 사항이었다. 2006년 최다액출자자 변경 조항을 별도로 분리한 방송법 개정 이후에도 승인 사항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2013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 및 방통위로 정부조직 분리에 따른 법 정비 과정에서 인수와 합병간 ‘방통위 사전 동의’라는 절차적 차이가 생겼다. 지역성 이슈가 방송의 영역임에도 인수 절차에서 만큼은 방통위가 살펴볼 권한이 없어진 것이다. 결과적으로 1위 SO를 인수하는 과정인데도 지역성에 대해 논의할 시간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계는 전국 사업자가 지역채널을 보유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지역성 약화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왔다. 통신사의 케이블TV 인수가 지역일자리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김진억 민주노총 희망연대노동조합 나눔연대국장은 7월 30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방송통신기업 인수합병 토론회’에서 "인수합병을 발표한 CJ헬로와 티브로드는 현재 영업에 소극적이고 가입자가 상당수 줄어들고 있다"며 "통신사가 케이블방송을 인수하면 지역성 문제는 물론 지역 일자리에 대한 실질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토론자로 나선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도 "2013년 정부 조직 분리가 긴박하게 진행됐고, 급하게 방송법 등 관련 법안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입법 불비가 발생했다"며 "실제 주식을 인수해 최다액 출자자를 변경(방송법 제15조의2)하는 것과 두 기업이 합병하는 것(방송법 제9조 제2항)의 효과는 큰 차이가 없음에도 사전동의제를 동시에 적용하는 부분을 놓친 게 문제가 됐다"고 주장했다.

20일 오전 10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지역방송을 중심으로 정책 세미나’에서도 같은 취지의 주장이 제기됐다.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실장은 발제를 통해 "현재 유료방송 인수는 방통위 또는 방송의 공적영역(지역성)을 배제한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돼 문제다"라며 "인수 과정에서 지역채널에 대한 논의가 지역미디어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범부처적인 정책과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경 MBC 정책위원도 "IPTV사업자는 M&A 를 앞두고 지역방송발전 대책을 내놓고 과기정통부는 이를 방통위는 물론 지역방송사업자들과 상의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일각에서는 입법의 취지 및 연혁을 고려할 때 법 조항을 기계적으로 해석해 인수 시에 방통위 심사를 생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향후 유료방송 M&A에서 이같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효과를 노려 악용할 수 있는 사례가 나와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김태오 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이와 관련 "규제형평을 추구하고 규제회피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법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며 "법 해석적용에 있어 구체적 타당성과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려면 중점적인 심사기준 등은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과 번경허가가 동일해야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방통위 내부에서도 이런 문제를 지적한다. 한상혁 방통위원장이 그동안 강조해 온 정책관할부처 일원화 이슈와도 일맥상통한다.

양한열 방통위 방송정책국장은 "LG유플러스 사례처럼 인수 시 방통위 사전 동의 절차가 없는 것은 입법 미비가 맞다"며 "향후 방송법 개정을 통해 보완해야한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지역성 문제에 대해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법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현회 부회장도 7월 17일 사내성과 공유회에서 CJ헬로 인수 후 고용승계, 케이블TV 지역성 강화, 콘텐츠 투자 확대 등을 언급한 바 있다. 지역채널 독립성을 유지하고 지역 밀착 콘텐츠 제작을 늘리기 위해 인수 후에도 IPTV와 케이블TV 양대 플랫폼을 독자 운영하는 방식으로 케이블TV 다양성을 지키겠다는 약속이다.

LG유플러스 한 관계자는 "지역성 검증은 과기정통부에서도 충분히 살펴보고 있고 이와 관련, 추가 견해를 듣고 보완 절차도 거쳤다"며 "인수 절차에서 법적으로 문제될 부분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법 미비 문제에 대해 기업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다"며 "인수와 합병의 장단점이 있는데 단순히 방통위 사전 동의 절차를 피하기 위해 인수를 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