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주52시간제 안착 핵심은 '업무 생산성 증대'와 '패러다임 전환'

김평화 기자
입력 2019.10.08 06:00
중소기업 확대 적용 2개월 남았는데 대부분 무방비
정부와 국회 대책도 시기 조절에만 초점, 안착엔 무관심
잘하고도 객관적 증거 남기지 않아 처벌받을 가능성 높아
‘근무시간 단축’보다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 증대’ 관점 절실
메신저·협업툴·근태시간관리 솔루션 등 기술 도움도 받아야
"솔루션은 거들 뿐, 슛은 조직문화가" 노무사들 한목소리

# 소규모 회사인 A는 근로기준법 맞는 인사·노무 체계를 구축하고자 100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노무사에게 지급했다. 법 준수를 위해 힘썼지만 정작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생겼다. 업무가 몰렸을 당시 한 명의 직원에게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못했는데, 향후 법적 다툼을 낳는 씨앗이 됐다.

# 직원이 10명 남짓인 병원 B는 근로계약서 작성 시 주당 48시간 근무를 전제로 기본급만 명시하고 연장근로수당을 정하지 않았다. 직원이 문제를 제기했고, 법원은 3년분 임금 체불액인 1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B에 내렸다. 병원 규모를 생각하면 상당한 금액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확대를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내년부터 300인 미만의 사업장에도 시행되지만 영세 사업장일수록 이를 대비할 여력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다. A와 B의 경우처럼 법에 상응하는 시스템 구축과 법 준수에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근무 시간 단축이 아닌 ‘업무 생산성 증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산업이 발달하면서 기업의 업무 평가와 근태 관리, 업무 효율 등 다양한 차원에서 변화가 요구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무제 안착을 위해 업무 생산성을 증대할 방법과 기술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가 9월 25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관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들을 초청, 중소기업계의 주 52시간제 시행 애로사항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간담회를 열었다. (왼쪽부터)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 조선비즈DB
중소기업 절반이 주 52시간 근무제 준비 부족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이 2개월 남짓 남았다. 2020년 1월부터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도 해당 제도 시행이 확대된다. 2021년에는 5인 이상의 사업장까지 대상이다.

시행을 앞둔 중소기업의 대응 역량은 제각각이다. 회사 분야별로, 규모별로 천차만별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심지어 일부 사업장은 제도 시행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1300곳의 중소기업을 조사한 결과 10곳 중 4곳(39%)이 주 52시간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분야별로 보면 제조업(33.4%), 숙박음식점(24.9%), 수도·하수·폐기물 처리업(16.2%), 정보통신업(16.2%) 순으로 대응 역량이 부족했다.

중소기업계는 실제 현장에 가면 정부 조사 결과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강조한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4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절반이 주 52시간 근무제에 대응할 준비가 안 됐다"며 "노동부 조사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확대와 관련해 보완책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했다.

이같은 요청에 정부와 국회는 각각 대응책을 내놓은 상태다. 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차원에서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답변을 제시했다. 국회도 8월 300인 미만 사업장에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을 미루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통과 여부는 불확실하다.

문제는 이러한 대안도 제도 시행의 속도 조절 논의만 있을 뿐 제도 안착을 위한 실질적인 대응이 부재한 점이다.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무제 안착을 ‘어떻게’ 돕겠다는 방안이 없어 업계 혼란만 가중하는 상황이다.

대응 역량 부족할수록 위법 기로에 놓여

중소기업계가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맞닥뜨리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노무사들은 촘촘한 대비 없이 중소기업이 위법적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특히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대처가 미흡해 피해가 커진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전병옥 공인노무사는 "요즘 연장근로수당과 주휴수당 미지급 문제 등이 자주 발생한다"며 "단순히 한 가지 사안으로 위법이 논해지는 게 아니라 여러 사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수당 미지급과 함께 성희롱과 근로계약서 미교부, 직장 내 갑질이 합해져 위법의 정도가 심각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어 "근로기준법은 민사가 아닌 형사법에 기초하기에 법을 어길 시 형량이 구형된다"며 "특정 위법 사항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지 않아 기업이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일컫는다.

근로계약서 미교부나 근로시간 위반의 경우 반의사불벌죄 범위를 벗어난다. 휴게시간 보장도 노동자의 기본권이기에 이를 어길시 피해자 의사와 상관없이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4인 이하 사업장에도 적용될 정도로 강력한 법이다.

특히 휴게시간 보장의 경우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위법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김균도 공인노무사는 "사업장이 작을수록 특정 인력 공백 시 대체할 인력이 적어 휴게시간 보장에서 위법 사항이 많이 발견된다"며 "법적으로 끌고 갈 경우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휴가를 보장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증명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가 작을수록 업무 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위반에 따른 처벌이 연속성을 지닌 것도 중소기업이 경각심을 높일 이유다. 특정 직원에게 체불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날 경우 다른 직원에게까지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해 보상 범위가 커질 확률이 높다. 판례가 한 번 굳어질 시 또 다른 상황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 필요성을 설명하는 고용노동부 자료. / 고용노동부 제공
주 52시간 근무제, 업무 패러다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주 52시간 근무제가 중소기업에 안착하려면 업계 인식 전환이 필수라는 의견이 나온다. 법과 제도의 정립, 다양한 지원과 더불어 업계 변화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도입 시기는 미룰 수 있으나 도입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게 노무사들의 시각이다.

전병옥 노무사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계기로 장시간 근로에서 발생했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시간 근로가 일상화하면서 피로도에 따른 업무 몰입도가 떨어져 발생하는 저성과와 산재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업무 생산성을 높여 근로 시간을 줄이면 노동자에게 회복과 학습 기회가 돌아가 생산성이 더욱 향상된다"며 "이 경우 근로 시간은 줄지만 회사 수익은 늘어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업무 시간을 줄이는 개념으로만 주 52시간 근무제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산성과 업무 효율을 높이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실제 OECD가 40개 국가를 대상으로 올해 내놓은 일-생활 균형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는 콜롬비아(40위)와 멕시코(39위) 등과 비슷한 수준인 37위를 기록했다. 꼴찌에서 4번째다. 연평균 근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긴 탓이다.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 시간(2024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OECD 국가 평균(1746시간)보다 280시간이나 더 일하는 셈이다.

업무 보상을 노동 시간에만 두는 방식의 변화도 요구됐다. 점차 업무가 고도화하고 발전할수록 노동의 평가와 보상도 발달해야 한다는 논지다. 출퇴근 카드를 찍어 근태 관리를 하거나 성과급 등 일부 보상에 그치는 기존 방식에 혁신이 요구된다.

김균도 노무사는 "주 52시간 근무제는 업무 평가 기반이 생산성이나 효율, 퍼포먼스로 이동한다는 의미다"면서 "제도 설정보다도 이러한 업무 문화를 개선하는 일이 필수다"고 강조했다.

전병옥 노무사도 "노동 시간 측정에서 머물던 근태 관리를 업무 전 부분으로 확장해 효율을 높일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시간 내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관리 활동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기업과 노동자를 도울 다양한 기술이 나온다

이 가운데 기업의 주 52시간 근무제를 안착하도록 도울 다양한 기술적 대안이 나와 눈길을 끈다.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메신저와 협업툴이 그중 하나다. 실리콘밸리를 모태로 탄생한 기업용 메신저 ‘슬랙’은 이미 다양한 국가의 많은 기업에 사용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는 유사 툴로 ‘잔디’와 ‘코노’가 있다.

협업툴도 업무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해 화제를 모은다. 메일과 메신저, 캘린더와 파일 공유 등 업무에 필요한 모든 기능이 통합된 프로그램이다. 한 화면 안에서 문서를 작성하며 동료와 메신저를 나누는 등 협업이 가능하도록 돕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협업툴로는 콜라비팀의 ‘이슈’와 네이버의 ‘라인웍스’가 있다. NHN은 후발주자로 나서며 9월 ‘토스트 워크플레이스’를 내놓은 상태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도 각각 ‘G스위트’와 ‘팀즈’라는 이름의 협업 도구를 선보이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콜라비팀의 협업툴 기능 모습. 한 페이지 안에서 다양한 업무를 볼 수 있다. / 콜라비팀 홈페이지 갈무리
기업의 근태 관리를 돕는 다양한 솔루션도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솔루션 업체 에스원과 시프티는 다양한 업무 환경에 적용할 수 있는 근태 시간 관리 솔루션을 선보였다. 굿인벤트는 주 52시간 근무 시간 관리에 최적화된 솔루션 ‘티트리’를 내놓은 상태다.

KT비즈메카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적합한 솔루션을 내놓으며 다양한 교육과 컨설팅도 진행하는 모습이다. 이촌회계법인과 IT 솔루션 기업인 에이앤티와 협력해 주52시간 근무제를 앞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무료 특강을 제공한다.

안재형 에이앤티 본부장은 "구로디지털단지에서 15일에 무료 특강을 연다"면서 "참가 신청을 받은 지 하루 만에 지원자가 100명이 넘었다"고 밝혔다.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을 앞두고 관련 업계의 관심이 크다는 증거다. 그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중소기업에 잘 정착하도록 일회성 교육을 떠나 종합 관리와 실제 업무 적용까지 돕고자 한다"며 무료 특강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양한 협업툴과 근태 관리 솔루션을 한자리에서 살피고 배울 수 있는 자리도 있다. 23일에 열리는 ‘Future of Work Conference 2019’ 행사다.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업무 환경과 문화 혁신’을 주제로 전병옥·김균도 노무사가 각각 HR 관리 시스템과 근로 시간 관리를 돕는 IT 솔루션을 설명할 예정이다. 네이버와 콜라비팀, 구글도 참여해 각각의 협업툴을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솔루션만이 주 52시간 근무제의 해답은 아니라는 게 노무사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업무 혁신을 이루려는 각 기업의 의지가 있어야 솔루션과 협업툴 등의 기술적 보완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전병옥 노무사는 "솔루션은 거들 뿐, 슛은 조직문화가 한다"며 각 중소기업의 변화 자세가 가장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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