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계가 중국과 홍콩 이슈로 떠들썩하다. 블리자드는 8일(현지시각) 대회 생중계 중 홍콩의 자유에 관한 퍼포먼스를 벌인 하스스톤 선수 ‘블리츠청(Blitzchung)’을 제재했다. 이 탓에 일부 게임 팬, 블리자드 직원, 심지어는 미국 정치권까지 블리자드를 비판하고 나섰다.

일부 이용자가 트위터에서 '보이콧블리자드(#BoycottBlizzard)' 해시태그를 붙이며 시작한 블리자드 거부 운동은 점점 거세지는 분위기다. ‘모든 의견은 소중하다(Every Voice Matters)’는 블리자드의 슬로건을 ‘모든 돈은 중요하다(Every Dollar Matters)’라고 비꼬는 등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중국 편을 들었다는 것이다.

중국 국기(좌)와 블리자드 로고(우). /블리자드 제공(우)
중국 국기(좌)와 블리자드 로고(우). /블리자드 제공(우)
물론, 게임 업계에서 중국은 무시할 수 없는 고객이다. 시장 조사 업체 뉴주는 2018년 8월, 중국 게임 이용자의 수가 6억6950만명쯤이며, 이들의 한해 지출은 379억달러(45조원)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다.

블리자드도 마찬가지다. 중국 시장은 중요하다. 이 회사는 2019년 상반기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매출의 12%(4700억원)을 벌었는데, 많은 부분이 중국 매출이었다.

블리자드는 2008년 중국 게임 업체 넷이즈와 손잡고 워크래프트2 배틀넷을 도입했다. 이후 중국 현지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하스스톤, 오버워치,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디아블로3 등 게임을 꾸준히 서비스한다.

두 회사는 2016년에 게임 서비스 계약 기간을 2020년까지 늘렸다. 이에 더해 블리자드의 유력 지식재산권(IP) ‘디아블로’ 시리즈의 차기 모바일 게임 ‘디아블로 이모탈’의 제작을 넷이즈가 맡을 정도로 서로에게 우호적이다.

2016년에는 중국이 영화 ‘워크래프트’를 구했다. 이 영화는 개막 첫 주에 미국에서 2400만달러(287억원)를 벌었다. 워크래프트는 제작비가 1억6000만달러(1900억원) 규모였기 때문에 이는 다소 실망스러운 기록이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워크래프트는 영화 개봉 매출 기록을 갈아치우며 개봉 첫 주에 1억5500만달러(1850억원)를 벌었다. 당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가렌 코스프레를 하고 극장에 나타난 관람객이 심각하게 폭행당했을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중국에서 영화 ‘워크래프트’ 상영관에 ‘가렌’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고 왔다가 폭행당한 한 이용자의 모습. /웨이보 갈무리
중국에서 영화 ‘워크래프트’ 상영관에 ‘가렌’ 캐릭터 코스프레를 하고 왔다가 폭행당한 한 이용자의 모습. /웨이보 갈무리
다만 중국이 블리자드의 주요 고객 중 하나라고 해서 회사가 중국 편을 들었는지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다. 게임사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내세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객관적으로 봐도 이익보다 손해가 크다.

블리자드가 블리츠청을 제재할 때 근거로 든 조항에는 ‘공공의 평판을 떨어뜨리거나, 일부나 그룹을 불쾌하게 하거나, 블리자드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모든 행위에 참여하면’이라는 내용이 있다.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대회는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말하는 자리는 확실히 아니었다. 제재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은 갖춘 셈이다.

실제로 카드게임 전문가이자 하스스톤 해설자인 브라이언 키블러는 성명서에서 블리자드의 행동도 충분히 일리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블리자드는 선수가 공식 게임 방송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홍보했기 때문에 제재했다"며 "선수는 행동에 규칙에 동의했지만 이를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블리츠청 선수의 행동은 아주 용감했다"며 "블리자드의 조치가 다소 과하긴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 결승 해설 자리에서 하차했다.

미국 정치권 일부에서도 블리자드의 행동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론 와이든 상원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블리자드가 중국을 기쁘게 하기 위해 기꺼이 ‘굴복’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과 홍콩의 대결에서 중국 공산당의 편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블리자드가 정말 중국에 ‘굴복’한 것일까. 굴복의 기준이 모호하다. 블리자드는 다른 게임사처럼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해 중립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 회사가 공식 게임 대회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치적 발언을 홍보하는 행위를 용인할 이유는 없다. 선례가 남으면 이후에는 비슷한 사례를 제재하기 훨씬 어려워진다.

블리자드 한 관계자는 "선수 제재는 규칙에 따라 이뤄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증기평태 로고. /밸브 제공
증기평태 로고. /밸브 제공
단지 중국 공산당에게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서 ‘굴복’이라고 한다면, 밸브가 중국 게임사 완미시공과 손잡고 글로벌 서비스와는 별개로 스팀의 중국 버전인 ‘증기평태(蒸汽平台)’를 운영하겠다고 밝힌 것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중국 정부의 입김이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과거에도 스팀에서 서비스하던 게임 다수를 갑자기 판매 금지하며 스팀에 입김을 미치려 노력했다.

밸브에게도 중국 시장은 중요하다. 스팀은 한 주 동안 미국 이용자에게 65 페타바이트, 중국 이용자에게 60.8 페타바이트쯤의 게임을 제공한다. 시장조사업체 니코파트너스에 따르면 2017년 1500만명이었던 중국 스팀 이용자의 수는 2018년 3000만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밸브가 중국 정부에 ‘굴복’했다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는 포트나이트 프로게이머가 홍콩 지지 발언을 하더라도 제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위터 갈무리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는 포트나이트 프로게이머가 홍콩 지지 발언을 하더라도 제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트위터 갈무리
블리자드에 반중 정서 이용자가 분노하는 사이 중국은 회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홍보하는 기업도 있다. 에픽게임즈는 이번 사태가 커지자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가 직접 "포트나이트 프로게이머의 홍콩 지지 발언을 제재하지 않을 것이다"고 밝히며 오히려 틈새 홍보에 나섰다. 게임 이용자의 반중 정서를 희석해보려는 의도로 해석해볼 수 있다.

중국 게임 기업 텐센트가 에픽게임즈의 지분을 48.4%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에픽게임즈는 반중 정서 게임 이용자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에픽게임즈 스토어가 이용자 개인 정보를 탈취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팀 스위니는 에픽게임즈의 의사 결정은 전적으로 자신이 있는 미국 본사에서 내린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는 블리자드의 행동이 적합했는지 여부를 떠나서 이미 게임계 최대 화두 중 하나가 됐다. 앞으로 블리자드의 행동에 게임 업계의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