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SEC ‘불법’ 이유로 텔레그램 임시 중단 제재
페이스북 리브라 이어 텔레그램 톤도 미래 불확실해져
기존 금융 벽 넘기 어려울듯

페이스북 리브라 대항마로 꼽히던 텔레그램 암호화폐 개발 프로젝트 ‘톤(TON, Telegram Open Network)’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긴급 ‘임시 중단’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텔레그램이 리브라 노선을 밟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텔레그램 미디엄 캡처
./텔레그램 미디엄 캡처
美 SEC, 신고 안 된 토큰은 ‘불법’

텔레그램은 지난 12일(현지시각) 톤 공식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규제 불확실성 증가로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잠정 중단한다"며 "톤 플랫폼과 텔레그램 자체 암호화폐 ‘그램’ 규제 불확실성이 풀리는대로 프로젝트를 다시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텔레그램에 블록체인 프로젝트 출시와 관련해 긴급 금지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SEC는 텔레그램과 그램 토큰을 발행하는 텔레그램 자회사가 SEC에 사전 등록 없이 17억달러(약 2조162억원) 규모 토큰을 판매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임시 중단 처분을 내렸다.

스테파니 아바키안 SEC 집행부 공동국장은 "텔레그램이 판매한 그램 토큰은 불법이다"라며 "불법인 만큼 텔레그램 디지털 토큰이 미국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위한 조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텔레그램은 투자자들에게 그램 토큰과 관련 사업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페이킨 SEC 집행부 공동국장은 "SEC는 상품 이름을 ‘암호화폐’나 ‘디지털 토큰’이라고 붙인다 해서 연방증권법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며 "텔레그램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고안된 정보공개 의무를 따르지 않으면서 공모의 장점만 취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보안성 앞세운 암호화폐 등장…ICO로 17억달러 조달

텔레그램은 보안 기능이 철저한 글로벌 메신저 앱 서비스다. 높은 보안성 덕분에 월간 사용자수(MAU) 3억명을 확보했다. 가입자는 하루 최대 70만명씩 늘어난다. 텔레그램이 암호화폐 프로젝트에 나선 것도 이런 보안성 덕분이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 이들의 암호화폐 그램은 이 소셜네트워크 안에서 활용된다. 텔레그램에 따르면 메신저 내 전자 지갑에 자신이 산 ‘그램’을 넣어두고, 톤(TON) 안에서 이를 지불 수단으로 사용한다. 새로운 화폐 생태계 구축인 셈이다.

이를 위해 텔레그램은 앞서 지난해부터 그램 토큰을 판매했다. 암호화폐 공개(ICO)도 했다. 2018년 초 미국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VC)과 대기업으로부터 17억달러(약 2조391억원)를 조달했다. 총 판매량은 29억개다. SEC는 이 중 10억개 이상이 SEC 신고없이 미국 투자자에게 판매됐다고 분석했다. SEC는 이 토큰들이 모두 불법이라고 판단했다.

텔레그램은 이달 말(10월 31일) 안으로 자체 암호화폐 프로젝트 ‘톤’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텔레그램은 최근 공식 홈페이지에 자체 토큰을 관리할 수 있는 월렛 앱 서비스 정책을 공지하면서 암호화폐 시장 진출을 가시화했다.

IT기업 토큰 발행…규제당국은 ‘싸늘

업계에서는 SEC의 이러한 조치가 이미 예견됐다고 입을 모은다. 그간 SEC는 사전 신고 없이 암호화폐 또는 디지털토큰을 발행한 업체를 엄밀히 조사하는 등 관련 규제를 강화해 왔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리브라 청문회에서 미국 하원 의원들이 ‘빅테크 금융 배제법(Big Tech Out of Finance Act)’ 초안을 논의한 점도 이유로 꼽힌다. 이 법안은 페이스북과 텔레그램같은 거대 IT기업이 미국 금융기관 역할을 하거나 금융기관과 제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규제 분위기 상 텔레그램 토큰 발행 및 유통을 호락호락하게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 이유다.

여기에 강력한 보안성도 오히려 규제 대상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텔레그램은 그룹 채팅에 참여한 다른 사람 신원이 노출되지 않는다. 제3자 감청도 불가능하다. 이를 이유로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어둠의 세력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즉, 텔레그램이 내놓을 암호화폐는 정체불명의 돈을 쉽게 국경을 넘어 익명 송금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익명성을 강화한 코인들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강력한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텔레그램이 조달한 금액도 문제로 꼽힌다. SEC로부터 퍼블릭 토큰 판매(public token offering)를 허가받은 업체는 현재까지 블록체인 스타트업 ‘유나우’와 ‘블록스택’이다. 이들은 12개월 내 5000만달러(약 588억원) 이하 자금을 모집할 때 주식발행에 준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아도 자금 모집이 허가되는 A+규정에 따라 SEC 승인을 받았다. 텔레그램이 조달한 금액은 해당 규정에서 제시하는 금액 대비 40배 가량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SEC가 제동을 건 만큼 페이스북 리브라에 이어 텔레그램 토큰 미래도 불확실해지는 양상"이라며 "코인베이스와 그램 토큰 상장을 예고한 일부 암호화폐거래소들은 상황을 지켜봐야하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