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애호가들 중 ‘벤츠는 심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균형감은 좋지만 역동성이 아쉽다는 이야기다. 벤츠의 고성능 브랜드 AMG는 이런 일부의 아쉬움을 잠재우기 충분한 다양한 제품군을 시장에 내놓는다. 1967년 다임러-벤츠 연구소에서 일하던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흐트와 에르하르트 메르허가 세운 작은 튜닝회사 AMG는 오늘날 벤츠의 고성능 부문 담당하는 자회사가 됐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AMG는 2009년 걸윙도어와 강력한 성능으로 주목 받은 SLS AMG를 시작으로 자체개발한 차를 속속 선보인다. 이들의 세 번째 도전은 메르세데스-AMG GT 4도어 쿠페다. 고급 자동차 제조사들의 격전지인 GT(그랜드 투어러) 시장을 정조준했다. ‘도로 위의 레이스카'라는 설명에 걸맞은 성능, 고급 세단에 걸맞은 승차감과 실내공간을 겸비한 신차다. 경기도 용인 AMG 스피드웨이에서 메르세데스-AMG GT 4매틱 4도어 쿠페를 시승했다.

한계 모르는 강력한 힘, 날렵한 몸놀림도 일품

AMG GT 4도어는 2종의 파워트레인을 탑재한다. 서킷에서 만난 차는 V8 터보 엔진을 탑재한 최상위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다. V8 4.0리터 바이터보 가솔린 엔진은 최고 출력 639마력, 최대 토크 91.7㎏·m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엔진.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엔진.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숙련된 기술자 한 사람이 엔진 한 개의 조립을 책임지는 ‘원 맨-원 엔진' 철학은 신형 엔진에서 한층 무르익었다. 일상 주행을 고려, 엔진 회전수가 낮은 구간에서는 실린더의 절반만 사용하는 실린더 매니지먼트 기능을 탑재했다. 여기에 주행 상황에 따라 지능적으로 반응하는 엔진 마운트 시스템, 터보레그(터보 엔진이 제 성능에 올라오기 전까지 지연시간)를 최소화한 터보 시스템 등은 숫자 이상의 성능을 체감케한다.

인스트럭터의 안내에 따라 서킷에 올랐다. 가속페달을 밟는 답력과 차의 반응 사이에 적응이 필요할 정도로 힘이 넘쳤다. 인스트럭터의 선행 주행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 즈음 직선구간에 돌입했다. 페달을 깊이 밟을 새도 없이 몸이 뒤로 쏠릴 정도의 힘을 뿜어냈다. 시승하는 내내 어떤 상황에서도 여력을 충분히 남기고 달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킷 아닌 일반 도로 위에서 이 차의 온 힘을 다 쏟아낼 상황은 매우 드물 것이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제원표상 차 길이가 5m를 넘는다. 대형 세단에 준하는 크기다. 한 덩치 하는 차가 서킷에서 전혀 둔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헤어핀 구간을 유려하게 돌아가고, 고저차가 높은 회전 구간에서도 접지력(트랙션)이 충분하다. 평소 같으면 무리한 상황일텐데,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상황조차 연출하기 어려웠다.

차체가 단단하고 서스펜션 세팅이 훌륭하다는 증거다. AMG GT 4도어 쿠페는 벤츠 CLS와 기본 차체는 공유하지만, 고성능에 버틸 수 있도록 보강재를 곳곳에 더했다. 여기에 GT 63 S에는 멀티 챔버 에어 서스펜션 ‘AMG 라이드 컨트롤 플러스)’를 적용했다. 주행 속도와 도로상황에 따라 몸놀림을 영리하게 추스린다.

후륜 기반 지능형 사륜구동 시스템 ‘AMG 퍼포먼스 4매틱 플러스' 역시 차와 궁합이 좋다. 앞뒤축에 필요한 힘을 실시간으로 배분해 안정감을 더한다. 고속주행이나 코너링 상황에서는 액티브 리어 액슬 스티어링 시스템과 리어 액슬 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이 한쪽 바퀴가 과도하게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돕는다. 주행속도에 따라 뒷바퀴도 조금씩 방향을 바꿔 매끄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기술이다.

쿠페 특유의 유려한 디자인, 곳곳에 역동성 담아

차 크기는 길이 5050㎜, 너비 1955㎜, 높이 1455㎜다. GT 63 S 4도어는 4인승, 트렁크에 골프백 4개가 들어갈 정도로 실용성을 강조했다. 스포츠카의 성능을 갖췄지만 일상 생활에서 패밀리카로 손색 없도록 한 제품 구성이다.

제원표 상 숫자만큼 차가 커보이진 않는다. 낮고 유려하게 흐르는 지붕선, 앞으로 길게 뺀 보닛 등이 주는 날렵한 인상 때문이다. 전면부의 커다란 그릴에는 고성능을 짐작케 하는 장치가 숨어있다. 주행 상황에 따라 자동으로 여닫히는 액티브 에어패널이 숨겨져있다. 엔진에 들어가는 공기의 양을 조절하고, 공기저항을 제어한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차의 성격을 짐작케 하는 기능 중 하나가 액티브 리어 윙이다. 트렁크에 부착된 일종의 가동형 날개다. 일반적으로 리어윙은 고성능 차에서 다운포스를 만들어 안정성을 높이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GT 63 S 4도어의 리어윙은 최대 다섯 단계로 각도를 조정, 다운포스 외에도 제동거리를 줄이도록 에어 브레이크의 기능까지 수행한다. 공기역학에 대한 AMG의 노하우가 느껴지는 선택지다.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실내.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메르세데스-AMG GT 63 S 4매틱 4도어 쿠페 실내. /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제공
실내 역시 주행 감성을 자극하는 구성이다. 센터콘솔 구성은 V8 엔진을 형상화 했다. D컷 스티어링 휠에는 다양한 주행모드를 선택할 수 있는 조그 다이얼이 추가됐다. 계기판과 디스플레이는 두 개의 12.3인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경계 없이 이어진 ‘와이드 콕핏' 콘셉트다.

4도어 GT 시장에 등장한 강력한 도전자

‘쿠페 = 2도어' 라는 공식은 오랜 시간 자동차 업계의 불문율이었다. 유려한 지붕선을 만들며 뒷좌석 거주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서다. 그래서 벤츠 CLS가 등장하기 전까지 4도어와 쿠페의 조합은 생각치 못했던 것이었다.

고성능에 실용성을 겸비한 GT 시장에서 포르쉐 파나메라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파나메라가 4도어 패스트백의 원조처럼 여겨지는 현실이 벤츠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도 있겠다. AMG가 독자 개발한 세 번째 신차가 4도어 GT라는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도전자' 벤츠가 내놓은 4도어 쿠페가 시장에 어떤 반향을 일으킬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