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OOO는 누구?', '차기회장 유력 후보는?’ KT 회장 임기 만료가 다가오거나, 정권이 바뀌면 반복해 나오는 뉴스 제목이다. 최근 KT가 회장 후보자를 공모하자 이런 추측성 보도가 어김없이 쏟아졌다.

KT 출신 ‘올드보이(OB)’는 물론이고 정보통신부 출신 고위 관료, 전직 국회의원 등이 입에 오르내린다. 현직 장관급이 ‘낙하산’으로 차출될 것이란 소문도 있다. 공모 마감 전인데도 지배구조위원회가 유력후보군을 추렸다는 얘기까지 아무런 근거없이 나돈다. 오죽했으면 지배구조위원회가 ‘하마평에 오른 인물 중 실제로 거론된 사람이 없다’는 해명 아닌 해명까지 했을까.

자의든 타의든 거론된 인물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KT도 부담스럽다. 거론된 인물을 후보자군에 넣든 말든, 나중에 외압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다. 후보자군을 심사하는 지배구조위원회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일각엔 외풍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10여년간 쌓인 학습효과다. 마치 외압에 휘둘리는 게 당연한 것처럼 부추기기도 한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다. 입 버릇처럼 외압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차기 회장을 뽑아야 한다고 하면서도 외압을 조장하는 듯한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인다.

공기업이던 KT는 2002년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완전 민영화를 이뤘다. 100% 순수 민간기업이다. 하지만 ‘주인 없는 회사’라는 한계가 늘 KT의 발목을 잡았다. 눈에 띄는 대주주가 없다보니 CEO 선임 때 정치권을 비롯한 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렇게 선임된 CEO는 뭘 해도 ‘보은’ 성격의 경영으로 받아들여졌다. 급변하는 디지털 경영 환경 속에 갈 길 바쁜 KT가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계속 제자리 걸음을 하게 만들었다.

민영화 이후 첫 CEO인 8대 이용경 사장은 노무현 정권 출범 후 연임에 실패했다. 9대 남중수 사장은 2007년 말 정권교체 후로 예정된 주총을 인위적으로 앞당겨 연임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당시 구속과 함께 불명예 퇴진을 했다. 이후 취임한 이석채 11대 회장은 12대까지 연임에 성공했지만, 박근혜 정권 때 검찰 수사를 받자마자 일주일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정권마다 KT 회장 선임 개입을 부정했지만 업계는 이를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다.

반면 황창규 회장은 민영 KT 역사상 처음 연임 임기 만료를 눈앞에 뒀다. 큰 변수가 없다면 2020년 3월까지인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모처럼 KT의 새 역사를 쓰는 중이다.

KT는 차기 회장 선임에 ‘외풍 흑역사’를 벗어나려는 첫걸음을 시작했다. 2018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정관 개정을 통해 회장 선임 프로세스를 지배구조위원회, 회장후보심사위원회, 이사회, 주주총회 등 단계화했다. 외압 의혹이 끊기지 않았던 회장 선임 과정에 공정을 기하기 위함이다.

KT는 11월 5일까지 외부 공모 및 전문기관 추천을 완료하고, 11월 말 또는 12월 초까지 지배구조위원회 차원의 사내·외 후보자군을 심사한다. 회장후보심사위원회는 연내 새 회장 후보를 1~3명으로 압축해 2020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KT 차기 회장을 최종 선임한다.

KT는 불난 집이다. 한국 통신 역사를 같이 한 이 기업은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과 유선을 비롯한 기존 사업의 수익성 악화 속에 신음한다. 세계를 선도한 ‘정보통신 코리아’가 최근 동유럽 등 후발 국가들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배경엔 KT의 위축도 있다. 한국 대표 통신사업자를 제대로 뛰게 만들 리더 영입과 경영구조 안착이 절실하다. 그 출발점은 바로 아무런 외압 없이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새 회장을 뽑는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외부의 부채질부터 멈춰야 한다. 특정 세력이나 개인 이해관계에 치우친 사람들이 불난 집을 들쑤셔선 10년 넘게 이어진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무엇보다 한푼의 투자도, 애정어린 응원도 없이 KT 회장 자리를 마치 공기관장과 같은 ‘정권의 전리품’처럼 여기는 구태를 더이상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현 정권이 KT 회장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곧 통신 분야 큰 업적을 만들 것"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정치권은 새겨들어야 한다. 최근 외풍과 부채질이 그쪽에서 부쩍 많이 나오기에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