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모빌리티] '자동차=사람이 들어가는 모바일기기'

안효문 기자
입력 2019.10.29 14:04 수정 2019.10.29 15:18
자동차산업이 130여년 만에 혁명적 변화에 직면했다. 기술 융합이 가속화하고 소비 행태가 달라지면서 엔진과 세단 중심의 오랜 자동차 산업 구조와 업계 판도가 뿌리채 흔들린다. 자동차 산업 생태계 역시 요동을 친다.

자율주행차 운행 개념도. / 콘티넨탈 제공
카셰어링을 비롯한 공유경제뿐만 아니라 구독경제까지 자동차산업에 깊숙히 들어왔다. 스스로 움직이고,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바짝 다가왔다. 만화 속에서나 상상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소비자는 즐겁다.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 전기차를 비롯한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에 눈길을 보낸다. 세단 일색에서 벗어나 SUV와 같이 취향과 용도와 맞게 차를 사고 이용한다. 굳이 사지 않고도 이용료만 내면 마음에 맞는대로 자동차를 골라탈 수 있다.

자동차산업계는 잔뜩 긴장했다. 미래 먹거리를 만드는 기회와 함께 자칫 생존을 위협할 위기를 동시에 맞았기 때문이다. 업계는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스마트화하는 것을 넘어 아예 ‘탈제조'까지 선언하는 마당이다.

‘2030 미래차 비전'의 두 축, ‘친환경’과 ‘자율주행’

자동차 강국들은 저마다 미래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바삐 움직인다. 정부와 업계가 힘을 모아 미래 전략을 짠다. 우리나라 정부와 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정부는 이달 중순 미래 자동차 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산업 전반의 성장 방향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천명했다.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에 초점을 맞췄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 안효문 기자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까지 내수 판매 신차 세 대 중 한 대는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등 친환경차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초소형차부터 일반 세단, SUV, 버스, 대형트럭까지 대부분 친환경차로 대체할 것으로 본다. 여기에 두터운 내수를 기반으로 세계 친환경차 시장 점유율 10%에 도전한다.

자율주행차도 미래 전략의 핵심이다. 정부는 2027년께 우리나라 도로에서 완전 자율주행차가 달리는 시대를 연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계획보다 3년을 앞당겼다. 이 일정대로 가면 우리나라가 세계 첫 자율주행차 상용화 국가가 된다.

핵심은 인프라 구축이다. 차와 주변 환경이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협력 지능형 교통체계(C-ITS)를 전국에 깐다. 서울과 제주에서 시범운영한 뒤 2024년 전국 주요 구간에 적용한다. 자율주행차의 길잡이가 될 정밀지도 구축 사업에도 속도가 붙었다. 2024년께 국도 및 전국 주요도로를 포함한 정밀지도를 완성할 계획이다.

하늘을 나는 ‘플라잉카'도 생각보다 빨리 현실화하고 있다. 플라잉카는 ‘드론'과 ‘자율주행’ 기술이 결합한 결정체다. 도심 교통체증을 해결하고 근거리 물류효율을 높일 대안이다. 이미 미국에선 관련 사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국토교통부는 2025년 플라잉카를 운영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손본다.

정부의 ‘2030 미래차 전략’은 ‘지나친 장밋빛 전망’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실행계획이 미흡해 ‘정치적 구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민간보다 느린 정부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만큼 자동차산업 패러다임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자동차=모바일기기’

자동차는 더이상 기계장치가 아니다. 이미 전장부품 비중이 절반에 육박한다. 엔진을 뺀 핵심부품만 보면 그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갖고 다니는 모바일기기다. 그렇다면 자동차는? 사람들이 그 속에 들어가는 모바일기기다. 현대차는 대표 중형 세단 쏘나타에 ‘스마트 디바이스'란 별칭을 붙였다. 스마트폰과 동일 선상으로 차를 바라본다는 의미다.

전장부품은 자동차에 들어간 온갖 전기전자장치를 일컫는다. 이른바 전장화(Electrification)를 할수록 자동차는 더욱 똑똑해진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는 그 완결판이다.

1980년대만 해도 전장부품이 자동차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했다. 2019년 글로벌 업체 대표 차종의 전장부품 비중은 30~40%에 이른다. 전기차라면 그 비중이 70%대로 껑충 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전장 시장 규모가 2021년께 1696억달러(약 195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자동차 전장부품 원가 비중 변화. / Fuji Chimera Rerwarch 제공
성장을 멈춘 전자산업계는 자동차에서 미래 성장동력을 찾는다. IC인사이츠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분기 세계 반도체 시장 총매출은 735억달러(약 85조원)로 전년 동기 대비 16%나 감소했다. 반도체 수요를 이끌었던 컴퓨터, 스마트기기 수요가 포화한 탓이다. 전자부품의 최대 수요처는 앞으로 TV나 PC, 스마트폰이 아니라 자동차로 바뀐다.

전자업체들 전장사업에 공격적 투자

전자업체들의 자동차 분야 진출이 활발하다. 삼성과 LG, 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최근 전장부품 사업에서 보폭을 넓혀간다.

삼성은 4대 미래 성장 사업으로 자동차 전장부품 분야를 꼽고 전방위적으로 투자한다. 삼성전자는 2016년 미국 대형 전장회사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2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M&A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SDI는 자동차용 배터리 투자를 확대한다. 전장용적층세라믹콘덴서(MLCC)를 앞세운 삼성전기 등을 통해 전장 사업을 강화한다.

LG는 전통적인 자동차용 오디오와 디스플레이 등으로 일찌감치 자동차 업계와 연을 맺었다. 최근 계열사 투자 확대와 조직개편 등으로 자동차 분야 경쟁력 강화에 속도를 낸다. 주력 계열사들이 실적 개선을 위해 자동차에 ‘올인'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8년 오스트리아 자동차 헤드램프 기업 ZKW을 인수했다. 이스라엘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 바야비전과 미국 차량용 센서 업체 에이아이에도 투자했다.

SK 역시 전장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16년 오토모티브 전략팀을 신설하고 메모리반도체 기반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 공략 준비를 마쳤다. SK이노베이션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 시설 확대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 등 배터리 공장 증설에 쏟아붓는 금액이 2조4000억원 이상이다.

기술기업과 자동차 제조사의 합종연횡…생존을 위한 ‘적과의 동침'

자동차업계는 한때 기술기업의 시장 진출을 ‘큰 위협’으로 여겼다. 자동차업계는 특히 기술 대기업을 경계했다. 이들이 자동차 운영 플랫폼 시장을 장악하면 자동차 회사들은 껍데기만 만드는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이랬던 자동차업계가 다시 자신감을 회복했다. 테슬라의 위협 극복이 주효했다. 기술 기업들도 전통적인 자동차 업계의 저력을 인정한다. 서로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공유경제와 플랫폼 사업까지 이제 자동차업체와 기술기업이 협업해 일굴 새 텃밭으로 보기 시작했다.

일본 도요타는 세계 1위 차량 호출업체 우버와 2018년 8월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미국 포드는 독일 폭스바겐과 자율주행차 기술을 공동 개발한다. 미국 GM은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 크루즈를 인수했다. 여기에 일본 소프트뱅크와 혼다도 자본을 투입했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제품 개발 및 생산시스템을 갖춰야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완성차와 기술업체의 협력, 고부가가치 스타트업 육성 등 국내에 안정적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자동차 소비 변화 키워드는 SUV·공유경제

세계 자동차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신차 수요가 줄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해외 주요 자동차 시장 및 정책동향’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해외 주요 7개 시장 승용차 판매가 3117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5.6% 감소했다. 최대 신흥시장인 중국과 인도에서 각각 11.0%, 10.3% 급감했다. 선진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1.9%와 3.1%씩 판매가 줄었다.

2019년 상반기 글로벌 주요 자동차 시장 증감율. /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제공
판매 감소에도 맹위를 떨치는 차종이 있다. 실용성과 안전성을 갖춘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 즉 SUV(sport utility vehicle)다. 험한 길에서 일반 도로로 내려와 생활 속 차량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9월 국내 자동차 시장 최초로 SUV 판매 대수가 세단을 앞섰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가 구매한 SUV는 4만7997대, 세단은 4만6812대였다. 10년전인 2009년엔 세단이 SUV보다 다섯 배 이상 많이 팔렸다. 10년만에 SUV가 역전한 셈이다.

자동차를 굳이 사지 않고 빌려타거나 공유하는 문화도 우리나라에서 확산 추세다. 시간 단위로 차를 빌려 타는 ‘카셰어링’이 자리 잡았다. 1만2000대의 카셰어링 차량이 도로 위를 누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동킥보드와 전기자전거 등 개인 이동수단을 품은 모빌리티 플랫폼 사업도 활발하다. 라임, 빔 모빌리티 등 글로벌 선두 업체도 이미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최근 자동차 환경 변화와 관련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발언을 주목할 만하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앞으로 자동차 기업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모할 것"이라며 "자동차와 PAV(개인형 비행 이동수단), 로보틱스가 융합하는 이동 생태계에서 사람들의 만남을 안전하고 즐겁게 주선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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