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유료방송 인수합병(M&A) 승인으로 통신방송 업계가 들뜬 분위기지만, 착잡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기업이 있다. 규제 불확실성으로 발이 묶이거나 시장의 흐름을 관망하는 처지다.

규제 불확실성으로 정부와 국회와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곳은 KT와 딜라이브다. 2016년 한시적으로 도입한 유료방송 합산규제(특수관계자를 포함한 한 유료방송 회사가 전체 가입자의 3분의1을 넘지 말라는 규제)가 일몰됐지만, 국회에서 아직 재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다.

KT는 딜라이브 매입을 서두르지 못하고, 딜라이브 역시 유력한 인수 후보 KT의 결단을 기다린다. 게다가 KT는 차기 회장 선임을 준비 중이다. 일각에서는 KT 회장 선임이 마무리되는 2020년 3월 이후로 인수 관련 결정이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 각 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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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KT 고위 관계자는 "합산규제뿐만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아직 딜라이브 매입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료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2020년 4월 총선이 있으므로 새로운 상임위가 꾸려진 2020년 중반쯤에야 인수 얘기가 본격화될 것이란 얘기도 있다"며 "새로운 회장이 선임된 후 빨리 진행해야 2020년 2분기 쯤일 듯하다"고 말했다.

인수합병 논의가 해를 넘어가는 사이 케이블 업계의 어려움은 심화된다. 가입자당월평균매출(ARPU) 하락과 지상파 재전송료(CPS) 인상 등 여파로 실적하락을 면치 못한다. 유료방송 1위 사업자인 CJ헬로조차 최근 영업이익 등의 수익성 하락을 면치 못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딜라이브는 2018년 연결 기준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017년 대비 7.8% 31.2%씩 하락했으며, 2019년도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최근 투자은행업계에서는 딜라이브 채권단은 M&A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자회사 큐브엔터 매각을 추진해 투자금을 회수하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딜라이브 한 관계자는 "채권단과 큐브엔터 매각은 상관없는 이슈로, 큐브엔터는 오래전부터 매각 논의가 있었다"며 "큐브엔터를 매각하더라도 금액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투자금 회수보다는 딜라이브 매각 대가를 낮추기 위함이라는 얘기가 좀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실적악화 CMB 든든한 뒷배 현대HCN과 온도 차

딜라이브가 M&A를 기다리며 시장을 관망하는 사이, 비슷한 처지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의 향방도 관심사다. 딜라이브는 M&A 이슈로 계속 오르내리지만, 이조차도 없는 씨엠비(CMB)는 생각이 많아진다. 업황은 어려워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돌파구가 없기 때문이다.

김태율 CMB 대표는 "공정위의 발표 이후 어떻게 해야할 지 내부적으로 논의도 해봤지만, 아직까지는 시장을 지켜봐야 할듯하다"라며 "시장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는 것은 받아들여야 겠지만, 오랜 기간 사업을 영위해온 기업에 제도적인 안전장치를 정부에서 마련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고 말했다.

./씨엠비(CMB) 사옥. / CMB 홈페이지 갈무리
./씨엠비(CMB) 사옥. / CMB 홈페이지 갈무리
매각 의향에 대한 질문에는 "매각은 경영주가 따로 있기 때문에 오너의 판단에 맡겨야 할 문제다"며 "아직은 매각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CMB는 2018년 당기순이익이 적자로 전환하고 부채비율이 늘어나는 등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 2018년 계열 PP를 매각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이지만, 자금력이 부족하므로 쉽지 않다.

2019년 실적 역시 먹구름이다. 김 대표는 "지상파 CPS 때문에 케이블사업자는 어려울 수밖에 없어 2019년에도 경영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며 "콘텐츠에 몇백억에 달하는 투자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콘텐츠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 중의 일환으로 채널평가 시 자체제작을 많이 하는 곳에 수신료를 더 지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현대HCN은 M&A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기조를 이어가지만 CMB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서울 등 알짜 권역을 바탕으로 높은 수익을 달성하고 있을 뿐더러, 만약 어려워지더라도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므로 모회사로부터 얼마든지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한 마디로 크게 아쉬울 게 없다.

현대HCN 한 관계자는 "CJ헬로와 티브로드가 인수합병 된다고 해서 케이블 산업 자체가 흡수되는 것은 아니니 공정위의 승인 결정 이후에도 당장 이렇다 할 온도변화가 있진 않다"며 "다만 시장의 변화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보고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