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정을 빠르고 편안히 즐길 수 있어야 진정한 GT다. 고성능과 편안함의 양립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GT에서 자동차 제조사의 실력이 가감없이 드러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급감과 역동성의 대명사 BMW가 20년만에 8시리즈 부활을 알렸다. 전북 전주와 전남 영광 일대에서 BMW 840d 그란 쿠페 x드라이브를 체험했다.
쿠페를 두고 흔히 ‘아찔한 지붕선'이라는 표현을 쓴다. 8시리즈의 디자인은 BMW가 생각한 쿠페의 정답이 아닐까 싶다. 세련되면서 과장되지 않고, 도로 위의 풍경과 잘 녹아들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차 크기는 길이 5075㎜, 너비 1930㎜, 높이 1410㎜, 휠베이스 3032㎜ 등이다. 길이만 5m가 넘는 상당한 크기지만, 밖에서 바라본 840d 그란 쿠페는 제원표상 숫자만큼 커보이지 않는다. 특유의 낮고 넓은 비례감 덕분이다. BMW는 8시리즈 그란 쿠페를 ‘4도어 스포츠카'라고 설명한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3미터가 넘는 널찍한 실내공간을 품은 모습에서 BMW의 패키징 실력을 새삼 느낀다.
쿠페의 맛은 지붕에서 난다. 후면으로 스르륵 미끌어지는 듯한 지붕선은 클래식 스포츠카에서 보게 되는 ‘더블 버블' 스타일이다. 뒷좌석 승객을 고려한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도 기본 적용했다.
실내는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럽다. 손과 등에 닿는 질감이 상당히 좋다. 고급 소재를 적재적소에 아낌 없이 배치한 덕분이다. 두툼한 스티어링 휠도 쥐는 맛이 좋다. 여성 운전자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인데, 장거리 주행 시 든든함을 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강한 심장과 탄탄한 차체의 균형감각
840d 그란 쿠페 x드라이브는 세그먼트 최초로 디젤엔진을 탑재했다. 최고출력 320마력, 최대토크 69.3㎏·m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변속기는 8단 스텝트로닉 자동변속기다. 0→100㎞/h 도달 시간은 5.1초, 연료효율은 복합 리터당 10.9㎞다.
차의 반응부터 엔진음, 배기음까지 편안하면서도 운전의 즐거움을 짐짓 자극한다. 달릴 준비가 되었다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실력을 뽐낸다. 840d는 디젤차지만 GT 특유의 요트를 탄 듯 매끄러운(세일링) 감각도 제법 느낄 수 있다. 쭉쭉 치고 나가는 맛에 가속페달을 더 깊게 밟고 싶은 욕심이 난다. 그러나 체감하는 속도보다 계기판의 숫자에 시승 중 종종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 사이의 변화도 꽤 극적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에서는 컴포트, 혼자 오롯이 운전을 즐기고 싶다면 스포츠 모드가 제격이다. 그러나 어떤 모드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정교하면서도 날렵한 몸놀림이다. 차선을 급히 바꾸거나, 고속도로 나들목을 통과할 때 평소보다 높은 속도에서도 부담이 없었다. 840d는 눈 뿐만 아니라 운전감각으로도 큰 덩치가 의식되지 않는 차다.
브레이크 제동력은 정확하다. 고성능차는 잘 달리는 것 이상으로 잘 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제동감이 너무 강력하다면 GT로서의 매력도 반감될 것이다. 브레이크 성능까지 균형을 잡은 점이 인상 깊다.
풍성한 편의·안전품목도 GT로서 840d의 성격을 강하게 드러낸다. 막다른 골목을 스스로 되짚어 후진하는 ‘후진 어시스턴트', 실시간 교통정보 서비스 기능을 포함한 BMW 라이브 콕핏 프로페셔널 등은 편안한 운전을 돕는다.
8시리즈, GT 시장에 등장한 강력한 도전자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다. 4도어 GT 시장 이야기다. 2009년 등장한 포르쉐 파나메라가 시장을 석권하는 동안 경쟁사들은 칼을 갈았다. 벤츠는 고성능 AMG GT를 전면에 내세웠다. BMW가 20년만에 8시리즈의 부활을 결정한 것도 4도어 GT 시장이 무르익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