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대기업들이 혁신 스타트업과 상생 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스타트업이 가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자사 비즈니스를 넘어 산업계 전체에 혁신 물꼬를 트기 위해서다. 반면 국내에서는 해외 만큼 활발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외부 기관과 협력에 소극적이고 폐쇄형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다.

18일 스타트업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헬스케어,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 산업계가 스타트업과 적극 협력하거나 투자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들 업계는 신기술 개발이 필요하거나 기존과 다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산업분야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과 협업해 혁신적 아이디어와 인재를 흡수할 수 있다.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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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스타트업이면 드루와~"

특히 글로벌 대기업일수록 스타트업과 협력에 유연한 모습이다. 미국 유력 경제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글로벌 500대 기업 54.2%는 세계 스타트업들과 기술 자문, 제품·서비스 공유, 인큐베이터 운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하는 걸로 나타났다.

바이오헬스 분야 대기업은 특히 스타트업에 관심이 높다. 글로벌 엑셀러레이터 500스타트업(startup) 2016년 분석에 따르면 가장 스타트업과 연계가 높은 분야가 의약품이다. 전체 기업 중 94.1%가 스타트업에 기술을 자문하거나 사업 지원 등 활동을 한다. R&D분야의 막대한 비용을 줄이고 신약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독일 바이엘이 바이오헬스 분야 대표 사례로 꼽힌다. 스타트업에 오피스 공간을 제공하는 한편 자사 전문가 코칭지원 프로그램인 콜라보레이터(CoLaborator)를 운영한다. 또 그랜츠포앱스(Grants4Apps)라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으로 세계 100개국, 1800여개 헬스케어 스타트업을 지원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를 잡기 위한 아이디어 구상 전략으로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지원을 이어가는 사례도 있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명품 소비재 기업 LVMH(Moët Hennessy Louis Vuitton)는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벤처기업을 만들고 매년 50개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특히 LVMH는 새로운 럭셔리 브랜드를 만들기보다는 신흥 럭셔리 브랜드를 꾸준히 인수하는 전략을 취한다. 프랑스 화장품 기업인 로레알 역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자신만의 향수를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실라지스 파리스(Sillages Paris)’를 인수했다.

스타트업 인수합병(M&A)은 향후 시장 상황 변화에 빠르게 발 맞추는 방법으로도 쓰인다. 2012년 페이스북이 직원 13명에 불과한 작은 사진 앱 서비스 스타트업이던 인스타그램을 1조1400억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덕에 웹 기반 서비스였던 페이스북은 모바일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한국 오픈 이노베이션은 ‘칸막이'…상생협력은 ‘남 일’

세계적으로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맞손을 잡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활발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여전히 제품공정이나 혁신, 연구개발 등을 기업 혼자만 진행하는 ‘칸막이'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발간한 ‘글로벌 대기업과 스타트업 오픈 이노베이션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제조업체 대상 제품 혁신 주체를 묻는 질문에 '자체 개발'이라는 응답이 83.0%에 달했다. 서비스업도 제품 혁신과 공정 혁신을 자체 해결한다는 응답 비율이 각각 68.0%와 79.2%로 집계됐다.

국내 대기업과 스타트업 업계는 여전히 상생 협력이 낯설은 분위기다. 한국 대기업 특유의 공채 문화와 호봉제 등 동질성을 강조하는 조직문화가 한 몫하고 있다. 외부 조직과 연계활동에 익숙지 않은 이유다. 국내 스타트업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아 혁신을 꾀하기엔 불만족스럽다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반면 스타트업 업계는 대기업의 자사서비스 베끼기와 단가 후려치기 등 피해를 입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대상 소프트웨어 납품 단가는 저울로 잰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라며 "무형 서비스를 사실상 대기업에 제값받고 납품하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내 오픈 이노베이션을 독려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플랫폼 모델론이 꼽힌다. 상시로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만나 혁신과제와 해법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을 투명하게 열어두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박필재 무역협회 스타트업글로벌지원실 팀장은 "우리 기업은 대기업이 산업 현장에 관한 과제를 제시하면 전세계 스타트업이 해결책을 제안하는 독일 온라인 이노베이션 플랫폼 ‘비욘드 컨벤션(Beyond Convention)'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