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암호화폐 거래소 자전거래 만연"
업비트 9차 공판서 억울함 호소
규제당국은 가이드라인 요청에 묵묵부답
"업비트, 자전거래·유동성 공급 없었어도 성공"
암호화폐 관련 법규 부재로 불법 여부도 불명료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암암리에 자전거래(Cross Trading)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자전거래는 동일한 사람 또는 사전합의를 거친 이들이 같은 가격과 수량으로 각각 매수·매도 주문을 내 상호체결 시키는 것이다. 실질 소유권 이전 없이 거래량을 부풀리는 수단이다. 주식 시장에서는 자건거래가 거래량 급변동을 가져와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법으로 금지한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이런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정부기관의 명확한 입장이나 법원 판례도 없다. 주요 쟁점들에 합법성 여부 등이 매우 불투명한 상황이다. 국내 거래소들이 암암리에 자전거래를 하는 이유다.

지난해 블록체인 투명성 기구(BTI, Blockchain Transparency Institute)에 따르면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거래량의 60% 이상이 자전거래다. 코인마켓캡 기준 상위 25개 비트코인(BTC) 쌍 거래량 중에서는 80% 이상으로 알려졌다. 국내서는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다만 많은 국내 거래소가 자전거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580억원 상당의 해킹 사태를 겪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9차 공판이 열렸다. 업비트 공판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국내에서 암암리에 이뤄지는 자전거래와 관련해 국내 4대 대형 거래소 중 한 곳이 법정에 섰기 때문이다. 관련 법령이 없는 상태에서 법정다툼이 벌어지고 있어 해석이 분분하다.

./IT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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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 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사전자기록 위작,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두나무 송모씨 등을 상대로 9차 공판이 열렸다. 두나무는 업비트 운영사다.

이번 공판은 검찰이 두나무에서 가장매매와 허수주문으로 1491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행위가 발생했다고 보고 관련자들을 기소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에 따르면 두나무는 2017년 10월부터 12월까지 ID8이라는 임의계정을 생성해 실물자산 1221억여원을 가진 것처럼 전산을 조작했다. 이 아이디를 통해 일반회원과 암호화폐 35종을 거래하면서 거래량과 거래액을 부풀렸다. 이를 통해 비트코인 1만1550개를 2만명 이상 회원에게 팔아 1491억원을 챙겼다.

자전거래, ‘금융권은 상상 못해’ vs ‘안하면 못살아 남아’

이날 검찰은 자전거래를 통해 업비트가 잘 운영되는 것처럼 꾸민게 아니냐며 송모씨를 몰아세웠다. 이에 송모씨는 "당시 거래소 대부분이 자전거래를 돌리고 있었다"며 "업비트를 위해 모든 직원이 열심히 준비했다. 초반 거래량이 없어 보일 수 있어 (자전거래를) 돌리자고 제안했다"고 답했다.

송모씨에 따르면 자전거래는 4조원 규모로 진행됐다. 이는 업비트 원화거래대금의 3% 규모다. 또 그는 전체 거래량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미미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특정 암호화폐 A가 자전거래를 통해 2017년 11월 25일까지 28~64%까지 오름세를 보였다고 주장했다. 특정 암호화폐 B는 같은 해 11월 13일부터 12월 10일까지 최대 95%가량 올랐다고 밝혔다. 또 대다수 종목에서 자전거래 비중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에 송모씨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자전거래 규모는 항상 균일했다"며 "상장 초반 전체 거래대금이 적고 각각의 암호화폐가 초기 유저 거래량이 적어 동일 금액을 넣고 자전거래를 돌리더라도 분모가 작아 퍼센티지가 커질 수 있다"고 답했다. 유저 거래량에 따라 비율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증권법에 자전거래 금지를 이유로 "거래량이 아무리 없더라도 자전거래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니냐"고 질문했다.

송모씨는 "다른 거래소도 모두 돌리고 있었다"며 "방어 차원에서라도 안돌릴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17년 12월 중순부터는 자전거래를 하지 않았고 거래량을 외부로 공표한 시점도 2018년 1월부터이기 때문에 거래소 거래량 순위 사이트에는 자전거래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검찰은 2017년 11월부터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는데도 자전거래를 멈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송모씨는 "제 불찰이다"라며 "당시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회원가입과 원화입금을 막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1초에 영화 10편을 보는 양의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해 이룬 조치다"라고 덧붙였다.

늘어난 트래픽을 감당하기 바빴기 때문에 자전거래를 돌리는 점은 신경쓰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12월부터는 자전거래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법 없다는 점에서 의견 갈려

검찰과 송모씨 사이에서 쟁점은 이익을 편취했는지 여부다. 검찰은 업비트가 2017년 9월 24일부터 12월 11일까지 회사 법인 계정(ID8)으로 거래량을 부풀리고 이를 통해 이익을 착취했다고 봤다.

송모씨는 이를 부인한다. 해당 계정은 유동성 공급용이며 출금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이익 편취는 말도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특히 암호화폐 거래소가 유동성 공급을 하면 안된다는 법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계에서 암호화폐 거래소 유동성 공급을 합법화한 국가가 있느냐는 판사의 질문에 송모씨는 "인도네시아는 암호화폐 산업 제도화가 잘 이뤄져 있어 암호화폐 거래소를 정의할 때 거래소 자체 명의로 매매하거나 고객이 매매하는 것을 승인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인도네시아 금융 규제 당국으로부터 거래소 유동성 공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2017년도 당시 암호화폐 거래소는 통신판매업자로 분류됐다"며 "된다 안된다 수준이 아니라 규제 당국은 관련 법이나 가이드라인을 제시해달라는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실제 법조계는 관련 법이 없는 상태에서 거래소 자전거래와 유동성 공급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봤다. 기존 자본시장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

"업비트, 자전거래·유동성 공급 안했어도 성공했다"

송모씨는 공판 도중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업비트 허수주문 규모가 254조원으로 집계된다는 검찰 지적에 송모씨는 "주문을 내고 취소한 것까지 포함한 전체 금액이 254조원이다"라며 "카카오스탁 등 금융권에서 일하면서 그런 합산 방식은 본 적 없다. 주문금액을 합산할 게 아니라 스냅샷(특정 시점 주문 금액)을 봐야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업비트가 유동성 공급과 자전거래를 돌리지 않았더라도 성공했을 것이라는 점을 피력하기도 했다.

송모씨는 "업비트는 차별화된 강점이 많다"며 "자전거래를 돌리더라도 빗썸 대비 거래량이 10분의 1에 불과했다. 카카오톡 로그인과 카카오페이 인증 절차, 100개 이상 암호화폐 거래 가능, 모바일 앱을 통한 24시간 휴대성 등 장점이 타 거래소 대비 많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