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우리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예술 분야도 피해 갈 수 없다. AI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시대다. 저명한 인간 작가보다 AI 화가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며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AI ART’ 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인간의 창작 세계를 넓히는 데 AI가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AI 창작으로 예술 분야의 가치와 영향력이 커진다는 주장도 있다. 예술계에 부는 새로운 AI 바람을 [AI ART 예술의 의미를 묻다] 시리즈로 인사들의 기고를 준비했다. [편집자주]


➈주송현 아트디렉터 "예술하는 인공지능, AI아트와 그 가치"

인공지능(AI)은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기술로 자리 잡았다. 금융, 의료, 법률, 보안 분야 등 일상 깊숙이 침투한 AI는 우리가 살고 일하는 방식을 보다 편리하게 해줄 기술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위협으로도 여겨진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이후 AI에 대체될 직업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이를 이해하고 대비하기 위한 코딩 교육이나 창의 교육의 붐이 조성되기도 했다.

심미주의적 전통 아래 예술은 인간의 창의적인 결정체이기에 기계가 결코 따라올 수 없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창작 활동을 모방하는 AI가 등장하고 AI가 만든 그림이 세계적인 미술품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면서 더 이상 AI 창작물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없게 됐다. 단순한 미술 도구에서 예술적 주체로 진화하는 AI를 예술가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새로운 예술을 어떻게 비평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AI 아트’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해결돼야 할 선결 과제이다.

1세대 컴퓨터 예술가인 가와노 히로시는 기계 예술의 존재 이유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인간 예술은 두뇌의 한계에 갇혀 낡은 것만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손과 머리를 사용하지 않고 컴퓨터에 맡겨도 되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령 인간이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도 컴퓨터는 몇 분 만에 할 수 있지 않은가?"

오늘날 AI는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등 적극적으로 창작에 개입한다. 예술가 스스로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동력이자 매체로 발전하는 모습이다. 따라서 가와노 히로시의 말처럼 인간 화가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서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AI 예술의 존재 이유이다.

일례로 11월 28일 AI와 인간의 협업을 뜻하는 ‘AI×HUMAN’을 모토로 설립된 복합예술 플랫폼 ‘AI아트 갤러리 아이아’는 AI 화가가 인간 화가의 상상력을 높이는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실험하는 전시 프리뷰2를 선보였다.

해당 전시는 인간 화가 5인이 전달하는 특정 키워드를 AI 화가가 학습해 추상적인 밑그림을 그려낸 후 인간 화가가 상상과 창의를 더해 작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전시에서 진행된 ‘작가와의 대화’에서 AI 기술을 경험한 작가의 생생한 후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수 참여 작가는 "밑그림으로 만난 AI 화가는 새로운 예술 주체가 될 정도의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높은 단계의 자동화가 이뤄진다면 작가의 창의성을 확장하고 작업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AI 예술이 예술가의 생존을 위협하거나 동시대 미술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영역을 구축함으로써 예술의 다양화를 이루는 계기가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과학과 예술의 만남은 최근 갑작스럽게 등장한 혁명적 움직임이 아니다. 예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창조와 창의력을 근간으로 제작되는 과학과 예술은 상호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다. 19세기 이후 변화된 산업화 시대는 인쇄술의 발달과 사진 발명으로 인쇄식 이미지를 활용한 기법이 예술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덕분에 ‘찰나의 미학’이라는 고도의 예술성을 획득했다. 점차 생산성과 기계성을 이용한 다다이즘, 팝아트 등의 실험적 예술이 물밀 듯이 등장했다. 대중 매체와 컴퓨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동시대 예술은 기술적 결합으로 개념과 기법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기술 출현은 예술의 변화 속도를 높였다. 예술에 접근하는 수단이 변화하면서 작품의 형태와 의미가 다양해졌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예술을 평가하는 기준과 작품을 통해 얻는 미적 경험도 변화했다. 결국 새로운 기술은 예술의 범위와 의미를 바꾸는 강력한 동인이다. 따라서 AI 아트의 가치를 미리 준비된 평가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측정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새로운 시선으로 다양한 가치의 근원을 탐색하려는 시도를 통해 구축해나가야 한다.

AI 창작 행위는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예술 의지가 아닌 설계자의 결정에 따른다. 여기서 예술가와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수 없는 극명한 차이가 발생한다. 다만 인간 화가가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캔버스에 담아내기까지 그 과정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듯 AI도 학습으로 데이터를 조합하는 과정에서 창의적으로 보이는 결과물을 선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바로 이점이 예술을 하는 AI와 인간 예술가가 유사한 방식으로 자율적 생성 혹은 창의를 만들어낸다고 긍정하는 이유이다.

AI 작품에서 발견되는 미적 가치는 ‘넥스트 렘브란트(렘브란트 특유의 화풍과 스타일을 학습해 작품으로 구현한 AI 화가)’ 그림에서 볼 수 있듯 특정 화풍의 기술적 유사성에 있지 않다. 새로운 창작물의 출현이 핵심이다. AI 화가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고유한 양식을 단기간에 반복 학습해 전에 없던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AI의 창작은 반 고흐,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등 세계적인 작가의 기존 예술 작품에서 느낄 수 없던 경험을 도출해 인간의 창작물을 보완하고 향상한다. 이로써 명화가 가진 아우라를 파괴하지 않고 다른 미디어 형식으로 그 아우라를 개조하면서 작품이 지닌 형식과 깊이를 새로운 시각적 프리즘으로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현시점의 AI 예술은 초보적인 단계이므로 AI가 예술 창작의 주체로 불리는 일은 아직 요원하다. 다만 AI가 창작의 주체가 되는 미래 예술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미래가 과연 유토피아일지 디스토피아일지는 모른다. 분명한 것은 발전하는 기술에 질문을 던지는 비판적인 시각을 키우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AI 아트, 새로운 예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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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송현 AI아트갤러리 아이아 아트디렉터는 8년간 대학에서 예술경영과 미학 등을 강의했다. 아트투게더 AT 갤러리에서 미술시장 관련 강연을 다수 진행하기도 했다. 경제매체에 ‘알면 돈 되는 미술이야기'를 연재한 바 있다. 미술 대중화에 힘쓰고자 강연과 교육, 전시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