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을 잡기 위해 배터리 업체들이 해외 생산 거점과 능력 확대 경쟁을 벌인다. LG화학은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GM과 합작사 설립 계약을 체결, 배터리 생산 능력 확대와 안정적인 납품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른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앞세워 합작사와 중국 내 배터리 공장을 건설, 생산능력 확대를 모색했다.

하지만 배터리 회사들은 한국 생산라인을 증설할 계획은 없다. 현대기아차 등 자동차 제조사들의 국내 전기차 생산물량이 배터리 증산을 고려할 수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환경차 수요 진작과 생산 활성화 정책이 없으면 전기차는 물론 핵심 부품까지 생산기지가 다 해외로 빠져나갈 것으로 우려됐다. 이대로 가면 자칫 ‘친환경차 생산 공동화 현상’(해외 직접 투자 증가로 국내 생산 기지 여건이 나빠져 지역과 수출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현상)’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울한 관측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 / IT조선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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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중국 이어 미국 생산 강화…‘GM’과 합작법인 설립해 ‘생산능력’과 ‘납품처’ 동시 확보

LG화학은 5일(현지시각) 미국 자동차 제조업체 ‘GM’과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법인 설립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 합작법인을 통해 ‘30GWh’ 이상 생산능력을 확보할 계획이다.

양사는 각각 1조원을 전기차 배터리셀 합작법인에 우선 출자한다. 추후 단계적인 투자를 단행, 총 2조7000억원을 생산능력 확보를 위해 투자할 계획이다.

공장 부지는 오하이오(Ohio)주 로즈타운(Lordstown)이다. 2020년 중순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 공장에서 양산할 배터리셀을 GM의 차세대 전기차에 공급한다.

LG화학은 "이번 합작으로 미국 시장내 확실한 수요처를 확보했으며 GM은 높은 품질의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 받게 됐다"면서 "지난 10년간 양사가 맺은 공고한 협력관계의 결실"이라고 밝혔다.

LG화학은 GM이 2009년 내놓은 세계 최초 양산형 전기차 쉐보레 볼트(Volt)의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선정된 바 있다.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생산거점 현황 / LG화학 제공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생산거점 현황 / LG화학 제공
LG화학은 지난 2012년부터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을 본격 가동한 후 증설을 지속, 약 5GWh의 생산능력을 갖췄다. 이번 오하이오주 합작법인 설립으로 미국에서만 두 곳의 생산기지를 확보하게 됐다.

LG화학 관계자는 "글로벌 전기차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폴란드 공장 증설 계획도 있다"며 "물량에 따라 대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른 공장 증설도 필요한 상황이라면 투자를 단행할 수 있으나 아직 결정한 추가 투자나 공장 건설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LG화학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생산 능력은 약 70GWh 수준으로 2020년까지 약 100GWh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2024년 전기차 배터리를 중심으로 전체 배터리 사업에서 매출 30조원 이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세웠다"고 설명했다.

SK이노, 中 창저우 공장 발판 삼아 2025년 ‘100GWh’ 생산 능력 목표

SK이노베이션은 지난 5일 중국 장쑤성 창저우시 금탄경제개발구에서 배터리 셀 공장 ‘BEST’ 준공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중국과 생산적으로 협력해 함께 성장한다는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의 첫 결실이라고도 덧붙였다. SK이노베이션은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합작해 이번 공장을 건설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013년 총 10억위안(1690억원)을 투자해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BESK’를 설립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합작법인을 통해 베이징 공장에 배터리 팩 제조라인을 구축했다.

신설 BEST 공장은 약 16만8000㎡(5만평) 부지에 전극라인 2개, 조립라인 4개, 화성라인 4개를 갖췄다. 연간 전기차 약 15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7.5GWh 생산 규모로 건설됐다.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생산거점 현황 /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 전기차 배터리 생산거점 현황 /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은 이 공장 준공으로 서산 배터리공장의 4.7GWh 생산량을 포함해 연간 전기차 약 25만대에 공급 가능한 12.2GWh 생산 능력을 갖췄다.

이 회사는 헝가리 코마롬 제2공장과 미국 조지아 공장 등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2025년 ‘100GWh’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기준 생산능력은 38.5GWh지만 공격적인 투자로 미국과 중국, 유럽 등에 투자해 2025년 ‘100GWh’ 생산 능력을 확보할 계획"이고 밝혔다.
한국 생산라인 추가 투자 계획 전무…커지는 생산 공동화 우려

한국 자동차 업계도 친환경차 비중을 매년 늘리는 추세다. 그러나 배터리 업계는 국내 증설을 고려하지 않는다. 증산을 고려할 정도로 친환경차 생산이 급증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SK이노베이션은 2018년 서산 공장을 증설한 바 있으나 추가 증설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재까지 결정한 한국 투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2011년 4월 충북 오창에 배터리 공장을 세워 운영 중인 LG화학 역시 "한국 내 투자 계획은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10월 국내 생산 완성차는 326만6698대다. 이중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배터리전기차(BEV), 수소차 등 국산 친환경차는 29만2779대로 전체에서 8.9%를 차지한다. 차종별 성장률은 두 자릿수, 수소차의 경우 같은 기간 6배 가까이 성장했지만, 여전히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엔 적은 숫자다.

여기에 현대기아차 등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의 친환경차 전략이 해외 현지생산으로 선회했다. 현대차는 2025년까지 배터리전기차 56만대 등 전동화 차량 판매를 연간 67만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중 상당수를 미국, 유럽, 중국 등 현지생산에 배정할 전망이다.

이 영향을 배터리를 비롯한 핵심 부품업체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완성차 업체를 좇아 해외로 따라가야 할 상황이다. 자칫 친환경차 부문의 국내 생산 공동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는 "내연기관에서 전동화차량으로 자동차 시장이 변화하며 필요 부품 수가 60% 이상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라며 "여기에 최근 수익성 강화를 이유로 자동차 제조사들이 국내 생산보다 해외 현지생산에 힘을 싣는다. 자구책만으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부품업계에 팽배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