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발전해도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남는다. 디지털로 재현할 수 없는 아날로그만의 힘이 있기에 그렇다. 아날로그 감성에 디지털의 편리함을 더하면 어떨까. 이러한 생각에서 탄생한 제품이 바로 스마트펜이다.

네오랩 컨버전스(이하 네오랩)가 제작한 네오스마트펜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장점을 고루 갖췄다.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 이를 디지털로 변환해 스마트폰, PC에 저장하는 전자펜이다. 필기 데이터를 손쉽게 관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상 등 콘텐츠 제작에도 유용하다.

IT조선은 6일 서울 구로구 네오랩 본사에서 이상규 대표를 만났다. 네오랩은 세계 스마트펜 시장을 주도하는 기업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 100여개 국가에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페이지에 글자를 쓰면 스마트펜이 자동으로 인식한다. 편리하게 저장하되 언제든 공책을 넘기며 메모를 확인할 수도 있다"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장점을 조화롭게 구현했다"고 말했다.

디자인부터 부품 개발까지…"펜다운 펜을 위한 노력"

이 대표는 기술에 대한 이해와 사업 능력을 겸비한 인물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출신의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동료들과 함께 IT기업 네오위즈를 만들었다.

네오위즈 재팬 대표 시절 네오랩 창업을 구상했다. 학습용 게임을 만들던 게 계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대체할 도구를 고민하다가 떠올린 게 펜이다. 그는 "펜은 머릿속 생각을 가장 빠르게 표현하도록 돕는 도구다"며 "스마트펜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상규 네오랩 컨버전스 대표. / 이윤정 기자
이상규 네오랩 컨버전스 대표. / 이윤정 기자
그는 스마트펜에 대한 자신감을 안고 출발했다.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기반으로 전용 디지털 앱도 만들었다. 필기 관리를 지원, 스마트펜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첫 스마트펜인 네오1을 출시해 실패를 경험했다. 제품을 10만개 가량 제작했으나 팔린 것은 300여개 뿐이었다.

이 대표는 "네오랩은 당시 스마트펜 시장에서 후발주자였다. 기존 시장에 나와 있던 스마트펜 제품을 따라갔다"며 "실패 후 ‘펜다운 펜’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스마트펜에 탑재돼 있던 디스플레이, 전원 버튼 등을 없애는 식이다. 별도 조작 없이 바로 뚜껑을 열어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투박한 디자인을 개선해 일반 펜처럼 날렵한 느낌을 냈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네오랩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광학 센서 등 부품까지 자체 개발한다. 고성능을 유지하되 얇고 가벼운 스마트펜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 대표는 "배터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전용 칩까지 직접 만들었다"며 "70억~80억원 가량을 투자했다"고 밝혔다.

네오랩은 매출 증가율 50% 이상을 기록하는 1위 스마트펜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8년에는 약 3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펜, 종이, 앱의 하모니

이 대표는 네오랩의 핵심축은 펜, 종이, 앱이라고 강조했다. 네오랩이 보유한 특허 기술은 100여 건이 넘는다. 스마트펜 외에도 전용 종이와 앱 개발에 많은 공을 들였다.

네오랩 공책은 겉보기엔 일반 공책과 다름없지만 그 속에 여러 기술이 담겼다. 종이에 새겨진 작은 코드, 아이콘이 대표적이다. 스마트펜은 이 코드와 아이콘을 광학 센서로 읽고 처리해 내용을 디지털로 옮긴다.

이상규 네오랩 컨버전스 대표가 네오스마트펜 ‘디모'를 사용하고 있다. / 이윤정 기자
이상규 네오랩 컨버전스 대표가 네오스마트펜 ‘디모'를 사용하고 있다. / 이윤정 기자
이 대표는 "종이 위 위치 정보, 페이지 등 정보를 담은 엔코드(Ncode)와 PUI(Paper User Interface)라고 부르는 종이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며 "종이에 새겨진 편지 모양 아이콘을 펜으로 건드리면 해당 페이지를 즉각 이메일로 전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용 종이에 대한 사용자의 부담을 덜기 위한 노력도 했다. 1000원짜리 공책 한 권도 무료로 배송하고, 엔코드를 원하는 곳 어디에나 인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그는 "일반 펜을 쓰는 소비자들도 사용할 수 있는 양질의 공책을 만들었다"며 "360도 펼쳐지는 스위스 바인딩 제본 기술 등을 1000원짜리 공책에도 적용했다"고 밝혔다.

앱 개발도 한창이다. 네오랩은 최근 네오스튜디오라는 신규 앱을 런칭했다. GIF 및 동영상 파일 저장, 공유 기능이 특징이다. 필기 과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해 하나의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영상 촬영을 지원하는 페이퍼튜브 앱은 강의 제작 등에 유용하다.

이 대표는 "웹툰작가, 선생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네오스마트펜을 사용한다"며 "스마트펜과 앱을 함께 사용하면 콘텐츠를 손쉽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펜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

스마트펜 활용법은 무궁무진하다. 필기 전과정이 기록되기에 필기하는 방식, 순서, 속도 등 다양한 정보가 함께 쌓인다. 빅데이터를 사용하면 의료·교육 분야 혁신도 가능하다.

이 대표는 "교육에 적용하면 유형노트 제작이 가능하다"며 "어떤 문제를 먼저 풀었는지, 문제 당 푸는 속도는 각각 얼마인지 측정해 취약한 부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분야에서는 치매 진단을 돕는다. 종이에 아날로그 시계를 그리도록 하는 진단법이 있다. 정확한 검사를 위해선 검사가 진행되는 30분가량 의사가 옆에서 지켜봐야만 한다. 하지만 스마트펜을 활용하면 관찰자 없이도 검사가 가능하다.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이상규 네오랩 컨버전스 대표. / 이윤정 기자
이상규 네오랩 컨버전스 대표. / 이윤정 기자
이외에도 스마트펜은 일상생활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네오랩은 스마트펜 대중화에 앞장 설 계획이다. 신제품 ‘디모’가 출발점이다.

네오랩은 디모 출고가를 4만9500원으로 책정했다. 10만원대인 기존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다. 필기구업체 라미가 보급형 제품을 출시해 만년필 대중화를 이끈 것처럼 스마트펜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는 목표다.

이 대표는 "제품 가격을 낮추면 회사 매출에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었다"며 "하지만 디모를 통해 누구나 부담없이 스마트펜을 사용하길 바랐다"고 언급했다.

프리미엄 제품도 준비 중이다. 2020년 하반기 무렵 ‘믹스(Mix) 펜(가칭)’을 출시할 예정이다. 종이뿐 아니라 전자 기기 화면에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이 대표는 "‘우리가 원래 목표로 삼았던 것이 무엇인가’ 자주 되묻곤 한다"며 "펜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목표를 잊지 않고 다양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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