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핵심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기술은 모든 영역에 물 스미듯 퍼진다. 그 파괴력은 인터넷 이상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AI’를 국가전략의 큰 축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글로벌 경쟁국보다 출발이 한참 늦었는데 실행 주체도, 계획도 아직 엉성하다. 자칫 구호에 그칠 수 있다.

AI는 인터넷과 달리 국가 역량과 직결됐다. 한번 뒤처지면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다. IT조선이 ‘AI’를 2020년 연중기획 주제로 잡은 것은 이러한 절박감 때문이다. 어딘가 있을 지름길을 정책당국, 산업계와 함께 찾아보려 한다. 빨리 좇아가려면 같이 뛰어야 한다. [편집자주]

미국 뉴욕에 있는 한 병원은 AI를 활용해 정확한 암 진단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암 진단 시간은 고작 10분이다. 최근 이 짧은 시간에 희귀 백혈병까지 진단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일부 대도시는 2017년부터 안면인식 AI를 활용해 신호를 어기고 길을 건너는 사람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무단횡단시 신호등에 달린 안면인식 AI가 당사자 얼굴을 스캔하고는 이름, 무단횡단 기록 등 관련 정보를 추출한다. 이후 이통사 시스템과 연계해 당사자에게 경고 문자를 날리는 시스템이다.

AI가 일상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2020년이 AI 기술 패권을 잡기 위한 결정적 시기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글로벌 경제와 산업 혁신에서 AI가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불러온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세계 각국서 AI 연구에 박차를 가하며 기술력을 키웠다면 이제는 어느 곳이 먼저 이 기술을 일상생활에 도입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픽사베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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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이 선도하는 AI…한국은?

AI는 산업 구조에 전면적 변화를 가져다줄 전망이다.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생산성이다. AI가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먼 훗날에 새 생산요소로 부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컨설팅기업 PWC는 2030년 세계 GDP(국내총생산)가 114조달러로 추정되는 가운데 AI를 활용하면 GDP가 최대 14%(약 15조7000만달러)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비즈니스 가치가 올라갈 것이란 전망도 있다. 컨설팅 기업 가트너는 AI로 파생되는 글로벌 비즈니스 가치가 올해 2조6000억달러를 넘는 데 이어 2021년에는 3조3460억달러, 2025년은 5조5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생산성이 높고 기업가치와 사업기회를 높여주는 AI를 기업들이 가만 놔둘 리 없다. 도입에 적극적, 경쟁적이다. 자연스레 AI 확산에 가속도가 붙을 수 밖에 없다.


세계 각국도 AI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AI 투자 및 연구개발(R&D)에 가장 열심인 국가는 미국과 중국이다. 한국은 그 뒤를 따르지만 격차가 크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맥킨지가 2018년 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AI 분야에 대해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다. 미국 행정부는 2019년 초 ‘AI 이니셔티브’를 개시하라는 행정 명령을 발표하면서 AI 분야에 강력한 리더십을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AI R&D를 최우선 지원하는 연방 R&D정책도 수립했다.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내놓은 중국에서는 이미 AI가 무서운 속도로 확산 중이다. 안면인식 AI로 지하철과 공항 출입, 횡단보도, 쓰레기 분리배출 관리가 현실화됐다. 교육 개혁도 일어난다. 중국 교육부는 최근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교학과정에서 쓰이는 교재를 리모델링하는 ‘전국 초·중·고·대학 교재 건설 규획(2019~2022년)’을 발표했다. AI와 블록체인 등 영역과 관련한 신규 교재 출간에 역점을 뒀다.

한국은 경쟁국 대비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19년 12월 ‘인공지능 기술활용인재 현황과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낸 ‘지표로 보는 이슈’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AI 기술 수준은 1위 국가인 미국 대비 81.6%수준이다. 중국(미국 대비 88.7%)과 일본(미국 대비 86.1%)보다 낮다.

이는 AI 산업 발전 핵심 역량인 AI 전문 인력이 부족해 나타난 결과로 해석된다. 세계 AI 핵심인재 500명 중 한국 출신은 1.4%다. 미국(14.6%)과 중국(14.6%)의 10분의 1 수준이다.

기업의 AI 활용 수준도 낮다. 2018년 기준 국내 사업체 395만개 중 AI 기술 서비스를 활용하는 사업체는 0.6%에 불과했다. 도입하지 않은 96.5% 기업 중 83% 가량은 AI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AI 인식제고 및 조기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AI를 국가전략으로 선포한 우리나라 정부의 AI 도입 준비도 부족하다. 옥스퍼드 인사이트와 국제개발연구소가 발표한 ‘2019 정부 AI 준비도 지수’ 평가에서 한국은 6.48점으로 세계 26위에 그쳤다. 1위는 싱가포르였다. 영국, 독일이 뒤를 이었다.

맥킨지는 2023년부터 한국의 AI 도입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맥킨지 보고서 갈무리
맥킨지는 2023년부터 한국의 AI 도입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맥킨지 보고서 갈무리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응용소프트웨어(SW)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86.6%로 중국(84.7%)과 일본(86.6%)보다 높거나 비슷하다. 문제는 응용SW 기술을 AI와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둘을 연계해 효과적으로 AI를 확산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부터 한국이 AI 도입률이 가장 높은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맥킨지는 2018년 보고서를 통해 2023년 한국 AI도입 수준이 25%로 상승해 스웨덴(24%)과 미국(23%), 중국(19%)을 능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2030년에는 54%까지 상승하면서 격차를 벌릴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특성상 선도국가를 빠르게 추격해 우위를 차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 "투자, 인재 양성, 협력, 규제완화 이뤄져야"

하루 빨리 격차를 좁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할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AI 연구 인력과 기술 수준을 끌어 올리려면 ▲투자 ▲인재 양성 ▲산·학·관 협력 ▲규제 완화 등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AI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투자를 대폭 확대하는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의 AI 투자 규모가 작다"며 "AI 시대를 주도하려면 AI 기술과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법률 AI 시스템을 개발한 인텔리콘의 임영익 대표는 "AI 전문 대학원 외 인재 양성을 위한 특별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예컨대 (국가에서) 국제 AI 경진대회 출전을 독려 및 지원하고, 국가 차원에서 수상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거나 투자를 지원하면 AI 연구 인력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중국처럼 전면적인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임 대표는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 AI 개념과 관련 코딩 교육을 일찍이 실시해야 한다"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AI 기술에 활용되는 근본적인 수학, 통계학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학·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짙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AI 선도국 중 하나인 중국은 AI 발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 교육이 함께 움직인다"며 "중국 정부는 2017년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3년간 17조원 가량을 투입했는데 함께 움직이는 곳이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IT 공룡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와 가까운 기업이 정부와 발맞춘다면 AI 확산이 훨씬 빨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를 외치던 업계 전문가들은 이제 걱정을 한 시름 덜었다. AI의 기본 재료인 데이터 확보와 활용을 가능케 하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문턱을 넘었기 때문이다. 데이터3법은 개인을 식별할 수 없도록 처리한 가명 정보를 활용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서비스 개발 등에 나설 수 있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데이터 3법이 통과됐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됐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AI 산업 규제가 유독 심하다"며 "규제를 속도감있게 개혁해야만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 적용하고 개인정보보호 등 규제법은 미래지향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만 데이터가 모이고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