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장관이 ‘5G 전도사’로 불렸던 유영민 전 장관 색깔 지우기에 나섰다. 과기정통부는 2019년 5G 상용화, 4차산업혁명 인재양성 등에 힘을 실었지만, 최기영 장관 부임 후인 2020년에는 인공지능(AI) 전략을 전면에 내세웠다.

과기정통부는 14일 과학기술·ICT의 산실로 불리는 대덕단지에 위치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2020년 업무보고를 했다. 과기정통부는 23개 업무보고 대상 기관 중 가장 먼저 업무보고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업무보고 전 과학기술인을 격려하는 간담회와 AI 기술을 접목한 ‘팜스플랜' 시연 행사에 참석했다.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과기정통부 제공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과기정통부 제공
2019년 과기정통부 업부추진 방향은 ‘혁신성장, 안전, 포용을 바탕으로 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실현’이었다. 유영민 전 장관은 2019년 ▲5G 세계 최초 상용화로 글로벌 시장 선점 ▲R&D 20조원 투자로 혁신성장 선도와 삶의 질 제고▲4차산업혁명 인재 4만명 양성 및 맞춤형 지원 강화 등을 3대 전략으로 내세우고 중점 추진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업무보고를 하게 된 최기영 장관은 AI·디지털미디어·연구개발(R&D)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2020년 과기정통부 슬로건은 ‘확실한 변화 대한민국 2020!’, ‘혁신의 DNA, 과학기술’이다. 3대 중점전략으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기초가 튼튼한 과학기술 강국 ▲DNA를 기반으로 혁신을 선도하는 AI 일등 국가 ▲미래 성장을 견인하는 디지털 미디어 강국 등을 내세웠다.

역대 최대 R&D 예산, 어디에 어떻게 쓰이나

과기정통부는 역대 최대 연구개발(R&D) 예산인 24조2000억원을 확보했다. 2019년과 비교해 정부 총지출 증가율(9.1%)의 두 배쯤(18%)으로 늘어난 금액이다. 과기정통부는 바이오헬스·우주·에너지·소재부품, 양자기술 등 경제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5대 핵심분야에 정부 R&D를 집중 투자해 차세대 원천기술 확보 자립화에 나선다.

혁신성장 핵심분야인 바이오헬스·미래차·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범부처 협업을 유도한다. 기술-정책-제도를 패키지로 고려해 예산을 지원하는 등 국가 R&D예산의 전략적 투자를 강화한다.

우주분야는 2월 천리안위성 2B호 발사로 세계 최초 정지궤도에서 미세먼지를 관측하고, 2021년에는 순수 우리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 누리호 발사한다.

젊은 연구자의 자율성과 안정성을 뒷받침 하기 위해, 포닥 연구자(박사후 연구원)가 연구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이동하는 ‘(가칭)세종 과학 펠로우십’을 1000명에게 지원한다. 또 연구자 중심 기초 연구와 신진연구 지원금액을 2019년보다 대폭 확대해 각각 2조원, 2246억원씩 투입한다.

소재부품 분야에서 5년 내 핵심품목 100개 공급 안정화를, 바이오헬스 분야는 신약개발에 2조8000억원을 투자해 수출 18조원 달성(2018~2020년 누적)을 목표로 제시했다.

양자기술에는 2025년까지 1140억원을 투자하며,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에 2029년까지 1조5000억원을 투자해 2030년 신재생에너지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것이 목표다.

‘인공지능 국가전략’ 본격 추진

2019년 데이터·AI경제 활성화 계획, 세계 최초 5G 상용화, 인공지능 기본구상 등으로 플랫폼 구축과 고도화에 집중했다. 2020년은 이를 바탕으로 2019년 12월 마련한 ‘인공지능 국가전략’을 추진해 AI 일등국가로 가는 원년으로 삼는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AI·SW 전문인력 1000명쯤을 양성하고, 전 국민에게 AI·SW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2019년 시작한 AI 대학원 프로그램을 다양화(175억원)하고, SW중심대학(800억원)·이노베이션아카데미를 본격 운영(257억원)하며, 교육부와 협력해 초중등 AI·SW 시범학교를 150개 선정한다.

9일 국회를 통과한 데이터3법 효과가 현장에 착근되도록 정책지원에 나선다. 빅데이터 플랫폼 고도화‧개방 확대 (2019년 1458종→2020년 3094종), 데이터 지도 구축 (2020년), 데이터 바우처 지원 (2020년 575억원)으로 국내 데이터 산업 규모를 10조원까지 확대한다. 비식별화 등 개인정보 보호기술 개발도 추진한다.

2020년 업무보고 사전브리핑 중인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 과기정통부 제공
2020년 업무보고 사전브리핑 중인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 과기정통부 제공
AI 핵심기술인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분야 기술개발에 본격 착수하고, 신개념 AI반도체(PIM), 딥러닝 고 도화 등 차세대 AI 분야 연구개발을 추진한다.

또 AI 전용펀드 조성(3000억원), 컴퓨팅 파워 지원기관 확대(2019년 200개 → 2020년 800개), AI집적단지 조성(광주) 등을 통해 중소·벤처기업의 성장을 지원한다.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닥터앤서'와 같은 AI 융합과제도 발굴하고, 다양한 산업에 AI를 융합하는 프로젝트 ‘AI+X’ 추진으로 경제·사회 전 분야에 AI 활용을 확산한다.

국민과 AI가 안전하게 공존하는 시대를 만들기 위해 AI 윤리 기준을 확립하고, AI 기반 사이버위협 대응시스템을 구축한다. 상반기에는 고령층 등 정보취약계층의 접근성 강화전략도 수립한다.

5G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5G 트워크 고도화를 위해 3대 패키지(망투자 세액공제, 주파수 이용대가 통합, 5G 기지국 등록면허세 원화)를 지원한다. 5G 관련 융복합 서비스의 발전을 위해 민관합동으로 30조원을 투자한다.

비중 높지만 알맹이 부족한 디지털미디어 전략

과기정통부는 한국이 지닌 단말기(스마트폰), 네트워크(5G 세계최초 상용화), 콘텐츠(한류 드라마) 분야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을 내놨다. 2019년 업무보고에서 디지털미디어 관련 정책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던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막상 내놓은 계획에는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방송콘텐츠분야 현업인 교육 강화 42억원,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 제작 37억원 등은 디지털미디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투자금이라기엔 액수가 크지 않다. 또 수출전략형 콘텐츠 육성 및 글로벌 진출 지원 등은 이미 기존 정책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새로운 것은 ‘최소규제 원칙’을 약속한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국내 미디어 플랫폼이 글로벌 기업 넷플릭스, 유튜브 등 처럼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도록 최소규제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유료방송 시장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도약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다.

현재 구성·운영 중인 범부처 TF를 통해 콘텐츠·플랫폼·네트워크 선순환 생태계 조성 방안(가칭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 방안’)을 3월까지 수립해 발표한다. 범부처TF는 국조실(단장), 과기정통부(지원단장), 기재부, 방통위, 금융위, 고용부, 문체부, 공정위 등이 함께한다.

이태희 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실장은 "2019년 6차례 정도 만남을 가졌으며, 한달 전에도 모였다"며 "유료방송만 하더라도 IPTV는 과기정통부, 지상파는 방통위, 콘텐츠는 문체부가 담당하는 등 각 부처마다 담당하는 것이 달라 종합적인 미디어 발전방안을 논의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어 "국무총리실 차관이 단장이 되고 과기정통부 2차관이 지원단장 역할을 맡아 8개부처가 협의해 미디어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며 "규제 완화의 구체적인 예로는 유료방송 요금제 승인제를 신고제로 완화하는 것을 검토 중이며 다른 자세한 내용은 3월에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업무보고 브리핑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규제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최기영 장관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지 않도록 규제를 가능한 배제할 것이다"며 "OTT의 경우 유료방송 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있으면 최소한의 규제만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규제도 규제’라는 일부 사업자들의 우려에 대해 이태희 네트워크정책실장은 "새로운 규제도입은 신중히하고, 기존 규제는 과감히 폐지하자는 것이 과기정통부의 기본 입장이다"고 말했다.

2019년과 달리 미디어 정책을 강조한 배경에 대해 최기영 장관은 "디지털미디어 산업의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며 "향후 OTT 등 새로운 플랫폼 기반 미디어 시장이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새롭게 시작하는 기회를 잡으려 한다"고 설명했다.